시민기자는 주5일 근무 안 하는 거야?

꾸물거리다 놓쳐버린 수제비 기사를 보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열정을 느꼈습니다

등록 2005.07.11 11:42수정 2005.07.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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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10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남편이 뭔가에 놀란 듯 설거지를 하던 저를 소리쳐 불렀습니다.


“복희엄마! 어서 이리 좀 와봐?”
“왜 호떡집에 불났대?”

“자기 한 발 늦었는데. 수제비 기사 벌써 올랐는데.”
“어머! 정말이네. 에이 한 발 늦었다. 거 봐. 빨리 올려야 된다고 했잖아.”

“아니 이 사람이 왜 나한테 트집이야.”
“아까 자기가 컴퓨터 쓰는 바람에 내가 글 못 올린 거 아냐.”

“그럼 내 견적서가 중요해? 자기 기사가 중요해?”
“그건, 하긴 자기 견적서가 중요하긴 하지.”


저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다시 주방으로 가 하던 설거지를 계속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그놈의 노트북을 사든지 해야지….’

어제 점심 무렵(10일).


“오늘 낮에 우리 수제비 해먹자. 날씨도 꿉꿉한데….”
“그럼 반죽은 자기가 좀 해줄래?”
“그래. 오늘은 내가 봉사한다. 그럼 장모님께 점심 하시지 말라고 해.”


친정어머니께 말을 전하기 위해 친정집 문을 여니 어머니도 아버지도 한창 낮잠에 빠져 계셨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평화스러운지 한참 동안 두 분의 주무시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집으로 와보니 남편은 수제비 반죽을 얼굴로 하는지 온 얼굴에 밀가루 칠갑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죽을 하는 남편 곁에서 저는 굵은 멸치와 마른 새우를 넣고 국물을 만들고 또 감자를 깎았습니다.

그리곤 남편과 사이좋게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수제비를 떠 넣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식구가 먹을 수제비를 혼자서 떠 넣으려면 한참이 걸리는데도, 남편과 어깨를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수제비를 떠 넣다보니 순식간에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건 또 색다른 재미였습니다. 시간으로 따지면야 아주 잠깐이지만 남편과 다정하게 이야길 나누며 무얼 함께 한다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습니다.

한참이 지나 구수한 냄새가 구미를 확 끌어당기는 수제비를 드디어 상 위에 놓자, 꿀맛 같은 낮잠에서 깨신 아버지, 어머니가 구수한 냄새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수제비를 놀라운 듯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때 남편이 말합니다.

김정혜
“카메라 어디 있어?”
“카메라는 왜?”
“이거 사진 찍어야지. 자기 기사감으로 좋지 않냐? 기사제목으로 ‘남편과 함께 만든 수제비!’어때?”


부창부수라고, 요즘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기사감이라며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해대는 마누라를 어느새 우리 남편도 닮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을 찍느라 남편이 수선을 떨어대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덩달아 수저도 들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잠시 후. 남편이 사진을 다 찍고 나자 마치 기다리고나 계셨던 듯 아버지께서 얼른 수저를 드셨습니다.

“수제비 하려면 엄마 깨우지. 이거 혼자 떠 넣으려면 시간 많이 걸렸을 텐데….”
“엄마! 이거 엄마 사위가 한 거야. 엄마 딸이 아무래도 시집은 잘 간 거 같아.”
“그건 그렇지만. 행여나 시댁에 가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친정엄마는 사위가 주방에 들락거리면 예뻐 보이고, 시어머니는 아들이 주방에 들락거리면 미워 보이는 거야. 그게 바로 사람 마음이라는 거지.”
“아유. 우리 시어머님은 안 그러셔. 당신께서 그렇게 못 살았다고 이 사람한테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살라고 늘 말씀 하시는데 뭐.”
“시어머님께서 그러실수록 네가 더 조심해야 하는 거야.”


잠시. 어머니와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아버지도 남편도 어느새 수제비를 두 그릇이나 비우고 있었습니다. 국물까지 말끔하게 비우고 수저를 내려놓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엔 행복한 웃음이 번져 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남편이 반죽을 하고 또 함께 수제비를 떠 넣었단 제 말에 당신들 딸자식의 행복을 들여다 본 것 같았습니다. 설거지를 끝내고 기사를 올리기 위해 막 컴퓨터 앞에 앉으려는데,

“잠깐만. 아직 견적서 다 못 만들었는데. 기사 나중에 올리면 안돼?”
“뭐야. 아직도야. 어제 저녁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더니. 그럼 빨리 해. 기사의 생명은 신속이거든.”
“아이구. 우리 마누라 이제 기자 다 됐네. 그런데 <오마이뉴스>는 주 5일제 근무 안 하는 거야?”
“주 5일제 근무? 그거 좋지. 그런데 기자야 주5일제 하고 싶어도 기사거리가 주5일제를 안하잖아.”
“아유. 그러셔요. 정말 대단한 기자십니다. 제가 빨리 컴퓨터 내어 드리겠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으며 견적서 작성에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견적서 작성에 뭔가 어려움이 따르는지 남편은 결국 저녁밥 먹기 전까지 컴퓨터를 제게 내어주지 못했습니다.

저녁 설거지를 하는 사이 남편이 견적서 작성을 마무리하면서 아마도 <오마이뉴스>를 클릭 했던가 봅니다. 그런데 메인 화면에 떠억하니 수제비 사진과 수제비 기사가 올려져 있는 걸 보고선 호떡집에 불 난 것 마냥 주방에 있는 저를 소리쳐 불렀던 겁니다.

아마도 남편은 하루 종일 컴퓨터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거니와 수제비 하나도 놓치지 않는 시민기자의 열성적인 기자정신에 무척 놀랐던 모양입니다. 설거지를 끝내고 그때서야 제 차지가 된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인화면에 떠억 버티고 있는 이기원 기자님의 ‘비 오는 날 수제비 한 그릇 어때요?’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낮에 기사를 안 올린 게 정말 다행스러웠습니다. 수제비 한 그릇에도 그 옛날 초가집 낙숫물까지 거슬러 올라간 이기원 기자님의 감성에 고개가 숙여졌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우리 남편 말마따나 주5일제 근무도 마다 않는 시민기자들의 그 열성. 또 수제비 한 그릇에도 그렇게 훌륭한 기사를 만들어내는 시민기자들의 놀라운 감성이 그 순간 제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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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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