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생님은 항상 아이들에게 져야 하지?"

선생님도 가끔은 짜증이 납니다

등록 2005.07.13 07:59수정 2005.07.1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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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무덥다. 여름이니까 무더운 것은 당연하다. 만약 무더운 여름이 없다면, 여름이 여름답지 않다면 풍성한 가을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그 쓰디쓴 잔을 사양하고 싶은 그런 날들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대자연의 여름과 겹칠 때가 많다. 문제는 그 고통의 시간들이 대자연의 여름처럼 생산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 그런 날은 선풍기조차 더운 바람을 내뿜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여름에 쓴 시 한 편이 이렇게나 짧다.

너도 괴롭겠구나.

한 자락 새로운 것 없이
묵은 바람만 불어대고 있으니.

-시, '선풍기' 모두


a 수상 훈련 중인 아이들

수상 훈련 중인 아이들 ⓒ 안준철

완도로 수련회를 다녀온 다음 날(6월 23일), 나는 평소의 습관대로 눈을 뜨자마자 속옷 차림으로 거실에 나가 기도를 했다. 오늘 하루 아이들 앞에서 절대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도록 해달라는 기도였다.

짜증의 이중주라고나 할까? 좁고 무더운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이 동시에 짜증을 내면 교실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하겠는가. 해서 어느 한 쪽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드린 기도였다. 거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수련회 마지막 날이었다. 수련회 기간 동안 아이들과 별일 없이 잘 지냈는데 한 순간 화를 참지 못하여 한 아이와 감정을 상하고 말았다.

"선생님, 짜증나요. 돈을 오만팔천 원이나 냈는데 왜 남의 반에 끼어서 가야 해요?"
"올 때는 우리 반끼리 편하게 왔잖아. 갈 때는 우리가 양보해야지."
"그냥 차를 반에 한 대씩 타면 되잖아요."
"그러면 돈을 더 걷어야 되거든. 그러니 네가 이해하고 짜증내지 마라."
"짜증이 나는 걸 어떡해요?"
"짜증내면 너만 손해잖아."
"짜증내고 손해 볼 거예요. 돈을 오만팔천 원이나 냈는데…."
"(핏대를 올리며) 너 금방 선생님이 말한 거 이해가 안된 거냐? 반에 한 대씩 타고 가면 돈을 더 걷어야 한다고 했잖아."
"(퉁명스럽게) 알았어요."
"허허. 말버릇이 그게 뭐야. 선생님이 네 친구야?"
"알았다니까요?"


대화의 내용을 보면 교사는 잘못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에게 먼저 사과를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감정의 문제를 논리로 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 만약 이렇게 대화를 풀어나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돈을 오만팔천 원이나 냈는데…"
"내 생각에도 수련회비가 좀 비싸긴 하더라.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훈련을 받는
건데 절반쯤은 국가에서 보태 주면 좋은데 말이야. 학교에서도 너희들 부담을 덜어 주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야. 네가 이해해라."

그런 식으로 대화를 풀지 못한 것은 물론 교사로서의 나의 미숙함 때문이겠지만, 그 아이가 평소에 버릇없이 구는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일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이런 심리였다.

'너까지 날 속상하게 할 거야?'

학교에 출근해 직원 조회를 마치고 교실에 들어서자 책상에 엎드려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나는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어폰을 빼고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말을 했다.

아이는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이어폰을 빼어냈을 뿐, 자세를 바르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주의를 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버럭 화를 내버릴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결국 그래서 일을 그르친 것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내가 먼저 사과를 했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화가 안 풀리지 않다니? 교사가 먼저 사과를 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도 버릇없이 군 아이에게 언성을 높여 꾸지람을 준 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그렇다면 지금 저 아이는 나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 걸까?

다른 아이들의 짜증은 잘 받아 주면서 말썽 한 번 피우지 않고 잘 하고 있는 자신에게는 버럭 화를 내버린 것이 섭섭했을까? 생각이 복잡하지면서 나는 서글퍼졌다. 왜 나만 이해하고, 나만 용서하고, 나만 사과해야 하는가? 그 역할이 가끔은 뒤바뀔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야 참고 기다려온 보람도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자꾸만 슬픔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기도의 효험이었을까? 어느 순간 나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지어졌다.

"부부싸움을 하면 누가 먼저 사과할 것 같습니까?"

난데없는 질문을 받고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답을 가르쳐 주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정답은 나오지 않을 테니까.

"성숙한 사람이 먼저 사과를 하지요. 우린 어땠나요? 언제나 선생님이 먼저 사과를 했지요? 그럼 선생님이 더 성숙한 거네요.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먼저 선생님께 사과하세요. 그래야 여러분이 더 성숙한 사람이 되니까요. 선생님이 성숙한 것보다 여러분이 성숙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이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여러분이니까요. 선생님은 여러분의 성숙을 돕기 위해 있는 사람이니까요."

a 밀어내기

밀어내기 ⓒ 안준철

말을 마칠 무렵, 마치 어둑한 초저녁 거리에 수은등이 켜지듯 교실 이쪽저쪽에서 눈동자들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아이의 눈이 유난히 빛나더니 무어라고 내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다가 많은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이내 알아들었다. 이 말이었다.

"선생님, 머리 위에 나비 앉았어요!"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내 머리 정수리 부분에 앉아 있는 나비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머리쪽으로 손을 갖다 대자 나비는 내 손을 건듯 스치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날 오후, 나와 말다툼을 한 그 아이는 내게 다가와 사과의 말 대신 환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 웃음이 내겐 생명수처럼 달고 시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지 <사과나무>에 기고한 글을 깁고 보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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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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