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한겨레 주최 전국 논술 모의고사, 오해는 없을까

등록 2005.07.14 06:55수정 2005.07.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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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주말(16일, 17일)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제1회 전국 논술 모의고사가 시행된다. 전국 고등학생 전 학년과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며, 유형은 언어논술과 수리논술 두 가지다. 권위 있는 대학교수님들이 함께 한다는 광고 문구는 사뭇 진지하다.

첨삭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한겨레논술모의고사는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이 첨삭을 하지 않고, 출제평가교수위원들의 지도를 받아 초암아카데미(주관 학원)의 선생님들이 직접 첨삭을 합니다"라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a 한겨레의 논술모의고사 광고

한겨레의 논술모의고사 광고 ⓒ 한겨레

한겨레는 어떤 취지에서 이런 행사를 주최하는 것일까. 한겨레에 실린 홍세화 기획위원의 칼럼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논술이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문화적 소양을 높이고 인문정신과 비판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술은 그 자체로는 옳은 방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현재의 교육구조와 대학 서열 체제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한겨레신문사는 논술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출간한 바 있고 청소년을 위한 논술 공간 '예컨대'를 운영하며 청소년의 논술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한겨레신문사가 정체성과 모순을 일으키면서 수익창출만을 위해 논술 모의고사를 개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최근 서울대 입시안이 논란이 될 때 논술 열풍 부는 대치동 학원가에 대한 르포기사로 서울대 안을 비판한 바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한겨레의 의도가 순수하더라도 이번 전국 모의고사는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다. 우선 모의고사가 최근 논란이 되는 통합형 논술과 확연히 구분된다고 볼 수 없다. 이미 상당수 대학은 통합형 논술을 실시하고 있고 이는 본고사 수준의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가령 대학 논술에서, 영어 지문 3개를 제시한 뒤 각각 요약하고 제시문의 공통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라는 문제, 과학 이론을 다룬 영어 지문 3개를 제시하고 수식을 이용해 분자량의 비를 구하는 문제 등은 단순 서술을 요구하는 논술과는 구분된다. 지난해 고려대가 도입했던 수리논술도 사실상 수학문제 풀이와 다를 바 없었다는 지적이 있다.

논술 모의고사를 주최까지 하면서 현재 대학의 출제 현실을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한겨레도 "논술모의고사는 2008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강화될 대학별 고사를 대비하는 최선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이러한 모의고사가 공교육을 지원하기보다는 사교육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응시료는 2만5천, 4만5천으로 비교적 저렴하다고 볼 수 있으나 이것은 단순히 금액으로 판가름할 문제는 아니다. 온라인과 학교에서도 응시는 가능하게 되어 있으나 광고에 등장하는 원서접수 및 응시 장소 목록에는 모두 학원이 적혀 있다.

대치동에 있는 학원을 필두에 전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학원에서 접수를 하고 시험을 보도록 되어 있다. 사교육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학원 인프라와 시스템에 의존해서 붕괴된 공교육을 살리자고 주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한겨레의 모의고사 실시가 크게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과 입시제도하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는 사소한 정보에도 크게 요동치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한 불안감과 욕구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고 다시 그러한 수요를 조장해 악순환을 유도하는 세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겨레는 책임 있는 언론사로서 그러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업으로 인해 교육정책에 대한 언론으로서의 날카로운 견제와 비판의 날이 무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이러한 걱정이 기우에 그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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