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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일을 하다가 땡볕에 숨이 막혀 사랑방에서 늘어지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마당 가득 한 떼의 아이들이 몰려왔습니다.
"어떻게…?"
"놀러왔어요."
아이들 틈에 두 명의 젊은 청년도 보였습니다. '어라? 평일인디? 벌써 여름 방학에 접어든 학교가 있남?' 싶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7월 중순, 방학은 아직 일렀습니다.
두 청년과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와르르 웃고 있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가슴팍에 안겨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가만히 살펴보니까 흥분된 눈빛과 풀어진 입이 따로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방과는 상관없이 어떤 목적의식으로 채워진 눈빛들. 그 눈빛들은 자신들의 웃음조차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골루 놀러 왔나비네."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는 모두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요즘 한창 장맛비로 집 옆댕이 개울에 맑은 물이 철철 넘치게 흘러가고 있어 거기서 신나게 놀게 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개울에 가재가 엄청 많다고 말하려는데 젊은 청년이 흥분된 어조로 불쑥 내게 물었습니다.
"교회 다니세요?"
"교회?"
"예, 교회요."
"우리 형제들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디, 나는 뭐라구 해야 하나, 교횔 가기도 하구 또 절에도 다니는디?"
"야, 이 아저씨 참 재밌으시네."
두 청년은 교회 전도사들이 분명했습니다. 전도사의 말투를 비꼬아 들으면 상대를 내리 깔아 보는 그런 말투였습니다. 하지만 전도사 청년의 인상은 말투와는 달리 착해 보였습니다. '이 양반이 시골 구석에서 글줄이나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인가' 식으로 날 얕잡아 보는 것 같긴 했지만 악의는 없어 보였습니다. '하느님의 든든한 빽' 때문인지는 몰라도 느닷없이 '할렐루야!'라고 소리칠 것 같은 그런 자신감 넘치는 전도사였습니다.
사실 젊은 전도사가 나를 그렇게 대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내 책임도 있었습니다. 내 몰골은 늘 그렇듯이 다 떨어진 검정 고무신에 누더기 옷차림, 박박 머리에서 갓 벗어난 밤송이머리에 낮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부시시 일어난 듯한 덥수룩한 턱수염, 거기다가 백주 대낮에 사랑방 신세를 지고 있으니 시골에서도 별 볼일 없는 밥충이 쯤으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젊은 청년이 한 아이를 내 앞에 내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뭔가 얘기를 들려주겠다며 다짜고짜 '예수님께서…'로 시작하는 이야기보따리를 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는 무슨 퍼즐 맞추기처럼 생긴 것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부지런히 설명했습니다. 이야기를 워낙 빨리 해서 뭔 소리인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대충, 예수님이 태어나서 십자가에 매달리고 부활하는 과정을 말하는 듯 했습니다. 결론은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무슨 오 엑스 퀴즈를 풀 때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질문으로 나를 몰아 붙였습니다.
"예수님 믿으실 거죠? 그럼 천국에 갈수 있어요?"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그 아이에게 되물었습니다.
"예수님 안 미드믄 워떡케 되는겨?"
"지옥에 가지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무조건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을 선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간단명료한 질문은 마치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사형수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60년대 말. 크리스마스 때마다 교회에 가서 신발을 잃어버리곤 했던 그 시절, 똑같은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예숫님 미드믄 천국 가는 거구, 믿지 않으믄 지옥행인디, 어떤 길을 선택 할겨?'라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질문을 받곤 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나 지금이나 전도사들이 말하는 천국은 별로 매력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이라는 게 전설 속에 나오는 무슨 불로초 같았습니다. 먹기만 하면 천년이고 만년이고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불로초처럼 다가왔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믿음은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니들은 천국이 뭐고 지옥이 뭔지나 아는겨?"
"예 알아요, 예수님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요."
아이들의 대답은 무조건 천국 아니면 지옥이었습니다. 누가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싶어 화가 났습니다. 누군가가 아이들을 극단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유의지가 뭔가를 알기 이전에 재빨리 자신들의 잘 짜여진 틀 속에 아이들을 가둬 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마음 상태가 뒤틀려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천국이라는 물건을 팔게 하는 앵벌이로 내세우고 있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나는 지옥갈려고 환장한 놈처럼 전도사들을 몰아 세웠습니다.
"두 사람은 전도사님들인 거 같은디, 왜 아이들에게 이런 걸 시키는 거지, 예수님 말씀 중에 얼마든지 좋은 말씀들이 많은디, 왜 하필이면 지옥과 천국만 강조하는 거지?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말을 전도하구 다니라고 했나? 내가 알기로는 사랑을 강조하신 걸로 알고 있는디."
"아, 잘 알고 계시네요. 교회 다니셨죠? 그렇죠? 맞습니다. 맞아요. 사랑을 베풀라 하셨죠."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말하자 물 만난 고기처럼 젊은 전도사는 무척이나 흥분이 되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전도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베풀고 있는 거죠."
"그 사랑도 결국 전도가 목적이 아닌가?"
"아닙니다. 이렇게 사랑이 담긴 선물도 나눠드리고 있잖아요."
전도사와 아이들은 내게 뭔가를 내밀었습니다. 립스틱이었습니다.
"그럼 이 물건은 사랑을 베풀기 위한 것인겨, 아니면, 전도 목적으루다 주는 것인겨?"
나 또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답형으로 전도사를 몰아 붙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많은 사랑을 베풀고 있죠, 북한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쪽 못 사는 나라에도 구호 물품을 많이 보내주고 있어요. 종교 단체들 중에서 가장 많이 보내 주고 있을껄요."
"베풀면 좋지, 얼마나 좋겠어, 자꾸만 배배 꼬인 말만 해서 미안한데, 그 구호물품들이 전도 목적이 아닌 순수한 사랑으로 보내진다면 더 좋겠지."
전도사들과 함께 찾아온 아이들은 가까운 공주나 대전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 멀리 경기도에서 왔다고 합니다. 학교 수업까지 접어두고 현장학습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아내는 수박을 내놓았습니다. 나는 그 먼 곳에서 천국과 지옥을 전도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안타까워 자꾸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생각은 말여, 니들이 그런 식으로 지옥 간다고 말하면 교회 가지 않는 사람들은 기분이 엄청 나쁠 거 같다. 안 그렇겠어?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니들에게 자신들의 종교를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니? 그래서 싸움이 생기고 전쟁이 일어나는 거여. 니들이 정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면 지옥 아니면 천국 간다는 말을 싹 빼놓고 할머니들 일할 때 무거운 거 들어주고 또 니들이 도시에 가서 생활할 때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별 탈 없이 잘 계시는지, 안부 전화 한 통 하는 게 진짜로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아저씨 생각은 그려 그냥…."
"아저씨는 착하게 살고 있다고 봐요?"
내 잘난 맛에 이런 저런 말들을 주어 지껄여대고 있자 젊은 전도사가 이번에는 내 허를 찔렀습니다.
"글쎄? 내 나름대로 착하게 살려고 하지. 일주일 내내 예수님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가 일요일이 돌아오면 천국에 가갔다고 예수님 믿사옵니다. 기도하는 그런 생활은 하지 않으려 하고 있지."
젊은 전도사는 모 신학대학의 대학원에 다닌다고 합니다. 그 역시 성경뿐만 아니라 사서삼경, 노자, 장자 부처님 말씀이 담긴 불경 등 온갖 경전을 다 읽어봤다고 합니다. 다들 예수님 말씀 이상으로 좋은 말씀들을 하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좋은 말씀은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전도사들은 계속해서 천국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며 지옥과 천국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착하게 살아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들이 다니는 교회가 교인들 머리 숫자를 늘리는 그렇고 그런 단체쯤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놓고 간 교회 안내문을 통해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대전에서 알아주는 큰 교회의 전도사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전도사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전도하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게 되신다면 예수님께서 참 안타까워하셨을 것이다'했더니 젊은 전도사는 내가 더 안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답답해했습니다. 그 젊은 전도사 입장에서는 나만큼 불쌍한 인간은 없겠지요. 교회에 나가 믿기만 하면 천국행 티켓을 얻을 수 있는데 지옥에 갈 것을 빤히 알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곁에 있으셨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아이들과 전도사들을 무척이나 대견스러워하셨을까? 나는 어려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다들 바쁜 사람들이니 이제 그만들 하시지."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말다툼을 하고 있는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아내가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나이 살을 먹을 만큼 먹은 중년사내가 어린아이들과 뒤섞여 푼수처럼 천국이니 지옥이니 따져가며 결론이 빤한 말다툼을 하고 있었으니 어지간히도 한심스러웠겠죠.
돌아갈 채비를 하며 젊은 전도사가 내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길래 밭농사도 짓고 글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해줬습니다.
"아, 글 쓰는 사람? 그래서 아는 게 많으셨구나, 그럼 인터넷 하시겠네요? 이메일 좀 알려 주세요."
적당히 얼버무려 넘어가려 했더니 이메일 주소를 재차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는 송성영이라고 말해줬습니다.
"성영, 이름 좋으시네요."
아마 내 이름에서 찬송가 중에 '성령이 오셨네' 할 때의 그 '성령'을 떠올렸나 봅니다.
나는 집 밖으로 우르르 몰려 나가는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집 옆에 조기, 맑은 개울에, 가재도 많이 살고 작은 물고기도 사니께, 있다가 놀러 와라. 잉. 이따가 와서 물장난하고 놀아라!"
"예!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아이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옳다고 떠들어댔지만 아이들이나 전도사는 오히려 그런 나를 불쌍히 여겼을 것입니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함부로 주절거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쌍한 중생, 쓰잘데기 없는 잔머리는 그만 굴리고 밭이나 제대로 갈 것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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