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까지만 해도 시장에선 이런 말이 횡행했다. “좀 더 넓고 환경 좋은 곳에서 살겠다는 소망이 잘못된 건가?” 강남의 중대평형 아파트 선호 현상을 두고 이런 주장을 펴던 사람들은 “따라서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은 잘못됐다”며 공세를 폈다.
하지만 이달 들어 이런 주장은 쏙 들어갔다. 국세청이 지난 1일, 강남 수요의 상당부분이 투기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를 내놓은 후 나타난 현상이다. 국세청이 2000년부터 올해 6월말까지 서울의 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9개 아파트 단지 거래내역을 분석한 결과 전체 거래량 2만 6821건 중 3주택 이상 보유자의 취득건수가 1만 5761건에 달한다고 발표하자 ‘웰빙 수요’를 주장하던 이들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닫았다.
전세는 역전됐다. 국세청 발표 이후 정부는 대대적인 부동산 투기조사에 들어가는 한편 부동산 종합대책 수립에 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7일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부동산 거래로 투기 소득은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이해찬 총리는 어제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사람은 3만-5만명”이라며 강도 높은 투기 대책을 예고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모색하고 있는 투기 차단책은 세제 강화다. 종합부동산세 상한제를 폐지하는 방안이 흘러나오고 있고, 양도소득세의 실거래가 과세를 앞당기는 한편 투기지역의 양도소득세율을 최대 82.5%까지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정부여당이 세제 강화를 통해 제압하고자 하는 곳이 서울 강남지역임은 분명하다. 언론 보도처럼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국세청 기준시가 9억원 초과에서 6억원 초과로 낮출 경우 강남지역 30평형대 이상 아파트는 대부분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 된다.
정부여당이 부동산 문제의 본질을 투기로 규정하고 올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우선 ‘어쩔 수 없는 절박성’ 때문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부가 한곳으로 집중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은 폭탄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강남 대 강북, 중대평형 대 소형평형, 다주택자 대 무주택자의 대립구도가 점철되는 곳이 바로 부동산 시장이다.
따라서 정부여당 입장에서 부동산을 잡으면 중산층과 서민층을 잡는 것이고, 못 잡는다면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의 말처럼 “사망 또는 중상”에 이를 수밖에 없다. 손 대기 싫어도 손을 대야만 하는 게 바로 부동산인 것이다. 민생을 파악한다면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조를 짜 당 민원실 전화 받기 운동을 펼친 결과, 걸려오는 전화 10통 가운데 9통이 부동산 정책을 질타하는 것이었던 점을 돌이켜보면 궁지에 몰린 정부여당의 처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여당이 ‘의무 방어전’을 치르고 있다고 보는 건 단견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옛말처럼 “이왕 건드릴 거면 정치적 이득도 최대한 챙기자”는 구상을 한 흔적이 곳곳에서 배어나온다.
정부여당이 양수겸장을 노리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정부여당이 제시한 동일한 자료에서 추출할 수 있다. 국세청이 발표한 2000년부터 올해 6월까지의 서울 강남지역 4개 구의 아파트 거래건수 중 45%를 차지한 1만 1천건의 거래는 3주택 이상 보유자가 아닌 사람들이 행한 것이다. 다시 말해 전체 거래건수의 45%는 실수요자에 의한 거래라는 얘기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정부여당의 대책은 투기 차단에만 집중돼 있다. ‘종합 대책’에 ‘전선 긋기’의 성격을, 처방에 싸움을 가미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정부여당의 이런 의도가 일사천리로 먹혀들 것이라고 보는 건 무리다. 정부여당이 ‘싸움’의 성격을 가미했다면 그에 견제하고자 하는 세력도 있게 마련이다. 오늘자 <동아일보>의 1면 머릿기사는 그 예다.
<동아일보>는 이해찬 총리가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 2주 전부터는 내가 직접 챙긴다”고 말한 사실을 전하면서 이해찬 총리가 경제 총리냐고 묻고 있다. 또 한덕수 경제 부총리팀이 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과세를 중장기 세제개편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청와대가 이를 뒤집었다면서 경제 부총리가 힘을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가 지향하는 바가 뭔지는 분명하다. <동아일보>는 기사 말미에서 재경부 고위 관료의 입을 빌려 “비전문가들의 간섭이 많아지면서 정책의 효율성과 집행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의 예가 ‘외부에서의 견제'라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엇박자는 ‘내부 혼선’을 보여주는 예다.
노 대통령은 지난 7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의 간담회에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의 경우 처음에는 내가 원론적인 입장에서 반대했는데 열린우리당 공약이기도 해서 당정간 협의해 결정하라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정책을 총괄하는 원혜영 정책위의장은 어제 “공영개발 등 공공역할 확대를 통해 부동산 원가를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이 곁들여지기 때문에 별도로 원가공개를 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공공역할 확대 기조가 유지되면 분양원가를 공개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것이다.
견제 세력이 몸을 풀기 시작한 상태에서 정부여당 안에서는 혼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싸움’이 단기전, 그리고 일방전의 성격을 띠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목소리를 높이기 이전에 방비부터 튼튼히 해야하는 게 정부여당의 지금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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