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허화평 띄워주기' 문제 있다

[주장] 전두환·노태우와 대립구도 부각시켜 상대적 미화 가능성

등록 2005.07.16 11:21수정 2005.07.1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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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제5공화국>은 진지한 주제를 일종의 역사적 사명을 지닌 채 고투하고 있다. 의미가 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한 안타까움은 드라마 자체의 문제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 한 가지가 '허화평↔전두환/노태우'의 대척 구도이다. 왜 이런 구도를 설정했는지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본질과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 허화평 역의 이진우
MBC 드라마 '제5공화국' 허화평 역의 이진우iMBC
허화평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배우 이진우는 너무 멋있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개혁적 전략가의 모습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겠다. 실제 인물은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의 핵심 전략통이었음을. 허화평은 육사 17기로 쿠데타 당시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었다. 전두환이 권력을 장악하고 대통령이 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음은 1982년 정무 제1수석비서관을 통한 청와대 입성이 방증한다.

그는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당시의 민주 재야 세력의 다툼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군부가 나서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대통령직을 겨냥한 신군부의 움직임을 그리는 드라마 <제5공화국>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자신들은 처음부터 나오고 싶어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5.16군사 쿠데타군이 했던 말과 같다. 민주 세력의 분열과 혼란이 군부가 나서도록 했다고. 아니, 세계의 대부분 군사 쿠데타군이 그러한 명분을 내세우고 등장해 독재를 해왔다.

헌법에, 더 하위법인 국가조직법에 그러한 상황에서 군부가 권력 장악에 나서야 한다는 법규정이 있던가. 그것도 군의 명령과 지휘 체계를 무시하고 말이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장교들에게 누구도 그러한 임무를 준 적이 없다. 자신들이 알아서 장악했고 이 과정에서 분명 수많은 초헌법적 재량행위들이 나타났다.

더구나 그는 5.18 광주 학살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부작위 때문에 일어난 잘못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들이 주도한 일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서 교묘하게 잘못이 아니라고 책임전가하며 빠져 나간다. 여전히 무책임하다.

드라마 <제5공화국>은 이러한 허화평을 전두환, 노태우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그린다. 전두환(이덕화 분)은 일찍부터 대통령이 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직선제보다는 간선제를 더 선호한다. 그러나 허화평(이진우 분)은 새로운 정부의 명분과 성립 타당성을 위해서는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선제를 하면 국민들이 똑같은 군부세력이라 인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두환은 당장에 대통령 취임 자체가 중요하다고 불쾌해 한다. 여기에 노태우(서인석 분)는 2인자 위치를 굳히기 위해 전두환 편을 든다. 결국 직선제는 묵살된다.

또 한 가지 사례도 허화평을 '멋있게' 만든다. 민정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구 공화당 계열의 인물을 영입하려는 전두환에게 허화평은 절대 반대한다. 구 인물들을 들여오면 개혁적인 이미지가 퇴색하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노태우는 역시 자신의 위치 즉, 다음 대통령 계승자를 염두에 두어서 전두환에게 힘을 실어주고 허화평과 대척점을 이룬다.


생각해보자. 신군부가 국민의 지지를 받은 도덕적 명분, 타당성이 있는 정권이었던가, 아니 개혁적인 정책 혹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가? 민주주의를 완성하고자 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없거니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비유하자면 허화평이든, 노태우-전두환이든 어차피 같은 '조폭'이다. 조폭 안에서 개혁적이든 명분을 찾는 인물이든 그들은 하나의 불법적인 패거리 조직일 뿐이다.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극중 허화평의 설정은 이를 호도하게 만든다.

한편으로 권력을 두고 여러 가지 갈등 상황을 만드는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전두환/노태우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도한 집단에서 개혁, 정당성을 주장하는 인물로 허화평을 내세우고, 상대적으로 노태우 전두환을 권력에 눈이 먼 속물로 대비시키는 것은 어긋난 일이다.


차라리 민주 세력의 한 인물을 전두환/노태우와 대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5공화국>은 민주 세력과의 대척점에서 성립해야 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움직임보다 당시 민주 세력의 움직임과 역사적 행동을 더 모르고 있다.

'허화평↔전두환/노태우'의 구도는 허화평을 미화할 가능성을 앞으로 짙게 하고, 인물 구도에 오해를 줄 소지가 많다. 이미 허화평에 대한 긍정적인 호응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그럴수록 허화평씨는 신군부의 무도한 행위들을 언론을 통해 합리화, 정당화 할 것이다. 잘못은 잘못이다.

덧붙이는 글 | gonews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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