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화된 대학 서열 체제를 무너뜨려야..."

[인터뷰] 전남대 철학과 강단에 서는 김상봉 교수

등록 2005.07.19 09:19수정 2005.07.1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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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철학자 김상봉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 학벌없는 사회 운영위원이기도 한 그가 올 2학기부터 전남대 철학과 교수로 강단에 선다. 전남대와는 특별한 연고가 없는 그가 학과 교수들의 전원 찬성으로 교수에 특채된 것은 지연과 학연이 강조되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99년 그리스도신학대에서 재임용 탈락 이후 7년 만에 전남대에서 강의를 하게 된 '길거리의 철학자' 김상봉 교수를 지난 18일 서울 인사동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강의실에서 만났다. 아래는 김상봉 교수와의 일문일답.

"전남대 초빙 제안에 나도 놀랐다"

김상봉 교수(자료 사진)
김상봉 교수(자료 사진)서상일
- 2학기부터 전남대 강단에 서게 된 것에 대해 스스로 한국 대학 사회 '초유의 일'이라고 하셨다는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전남대에서 저를 초빙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무런 연고가 없었으니까…. 제안을 받고 참 놀랍고 고마웠습니다. 이런 일이 저 혼자만의 '예외'가 아니라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당연한 '일상'의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교수님은 역사 속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체험을 함께 나누느냐에 따라 '우리'가 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남대에서 어떤 체험을 함께 나누어갈지 궁금합니다.
"우선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고, 제대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자기 시대에 뿌리 박은 한국 철학을 모색하고, 정립해 가는 것이 학문적 과제라고 봅니다. 삶과 현실의 자기 반성 위에서 우리의 언어와 시각으로 돌이켜 보며 이론과 개념을 형상화할 생각입니다. 자기 시대의 본질적 체험을 마음에 품고 반추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뿌리의 역사적 체험은 5·18의 정신에 있습니다.

광주에 가서 동학혁명에서부터 항일운동,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진보적인 정신사를 철학적으로 정교하게 다듬고 보편화할 작정입니다. 광주와 정면으로 만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 서울대 입시안 문제 등 교육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의 '좋은 원자재' 발언과 '교육의 목적은 솎아 내는 것' '고교 평준화 재고' 등의 발언도 문제지만 이번 사건은 정부의 교육정책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꼭대기에 한 개, 그 아래에 두 개, 그 밑으로... 극단화된 대학 서열 체제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교육이 자기 실현 과정이 되지 못하고, 교육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린 것도 이 대학 서열화에서 기인합니다.


지금 공교육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맹목적 입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형국입니다. 기득권을 지닌 학벌 집단은 그 기득권을 놓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서울대 총장과 교수들이 보여 주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교육적 책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시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 뽑아 가겠다는 것이 상류 학벌 집단이 가진 의지의 핵심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교육은 창궐하고, 공교육은 죽겠지요.

철학도, 원칙도, 의지도 없는 참여정부, 교육인적자원부, 서울대, 그밖의 세칭 일류대의 이해 관계와 암묵적 합의 하에서 이렇게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육부총리는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손 놓고 뒤로 앉은 채 '대학은 산업이다, 대학도 시장이다'만 외치고 있습니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학 총장과 힘 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으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입니까?


시스템도, 계통도, 체계도 없는 '오합지졸', 이것이 교육인적자원부의 현주소입니다. 책임 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는 교육부총리를 왜 그 자리에 앉혀둡니까? 교육부총리는 스스로 물러나거나, 해임해야 마땅합니다."

대학서열 없애려면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 만들어야

- 서울대 출신은 왕족, 연고대 출신은 귀족, 대학 안 나오면 천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벌과 학력에 따라 극단적으로 사람을 차별하기도 합니다. 이런 학벌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대학 서열을 철폐하고 학벌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해 대학을 '평준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대학이 사립대학인 우리 현실에서 대학 평준화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때문에 일차적으로 국립대를 중심으로 대학 평준화가 추진돼야 하지요.

모든 국립대가 신입생을 공동 전형, 공동 선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국립대학이 한꺼번에 공동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국립대 사이의 장벽을 제거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 학교, 저 학교로 이동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서울대는 학부는 한시적으로 문을 닫고 '대학원 대학'으로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부는 지방 국립대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서울대와 다른 국립대 사이의 격차를 없애야 하고, 국립대가 한국 대학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 올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학 평준화는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고, 학벌 집단의 권력 점유를 제도적으로 균등하게 만들 때에만 제대로 달성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위 공직에서 특정 학벌에 의한 권력 독점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학벌 타파를 위해서는 교육 주체들이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누가 대신해서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어 주겠습니까?"

- 교육 주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우선 교사들에게 말하자면 학벌 체제를 이대로 두고서는 더 이상 공교육이 설 땅이 없습니다. 이제는 교육 근본 이념에도 맞지 않는 시험을 위한 입시 교육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잘못된 입시 위주 교육을 근본에서부터 바로잡는 학벌 체제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당당히 나서길 바랍니다. 아울러 학생들에게 '교육에 의한 인간의 차별'은 불의임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학부모들에게는 '하면 된다'가 만능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해도 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어른들의 왜곡된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맹목적인 입시 지옥으로 몰고 가는 것이 온당한가요? 입시 지옥에서 상처 입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현재의 입시 경쟁이 의미 있는 경쟁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항할 수 있어야 해요. 입시에 얽매이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저항입니다. 일류대학이 목적이 아님을 알아야 해요. 학생들에게는 그때마다 읽어야 할 책도 있고, 나이에 맞는 경험도 해야 하고, 사랑도, 우정도 나누어 봐야 합니다. 그것이 미래를 위한 진정한 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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