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김포공항 아시아나항공 탑승수속 창구에 사과 안내문이 붙어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닷새째 계속되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의 파업으로 20일 국내외 항공편의 결항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노-노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사내 인트라넷 '텔레피아'에 '나의 제언'이라는 자유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파업 조종사들의 '무리한 요구'를 성토하고 업무복귀를 종용하는 직원들의 의견이 수백 건씩 올라오고 있다.
파업 초기에는 조종사들을 비난하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면, 파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업무에 복귀한 조종사들을 격려하고 회사의 영업상황을 걱정하는 직원들의 의견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파업 조종사들 요구를 성토하는 글 수백건
납득하기 힘든 조종사들의 일부 요구사항에 분노하는 여론에 대해서는 항공사 직원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반응을 보였다.
나이가 많은 일부 조종사들을 고려해 승진시험시 토익점수 630점 이상의 기준을 폐지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 한 직원은 "요즘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900점은 기본으로 넘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겨우 들어가도 월 200만원을 받기 힘든 세상인데, 운전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냐"고 비난했다.
또다른 직원은 "소위 '안전운항'을 운운하는 집단이 왜 안전운항의 기본이 되는 영어시험은 기피하려고 하나? 토익 630점이라면 자존심이 상해서 더 기준을 올려야 한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륙 전 음주체크를 하지 말라는 노조의 요구사항에 대해 "비행 전 음주측정 거부하게 해달라고 회사에 압력넣냐? 왜 술깨는 시간 벌려고? 내 눈에 술집에서 기어나오는 꼴만 보여봐라, 비행전 음주 신고 할테니까"라고 으름장 놓는 직원도 있었다.
노조가 여자 조종사가 출산할 시 2년간 비행휴(병가의 일종)를 보장하고 급여를 100%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데 대해 "2년 동안 일도 안 하고 월급만 받겠다는 건데 차라리 임신 못하는 남조종사만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점점 불만 쌓이는 다른 직원들
인천 새마을 연수원에서 농성하는 조종사들을 대신해 공항에서 승객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직원들의 불만도 누적되고 있다.
한 직원은 "조종사님들은 편한 곳에서 투쟁하시고 공항직원들은 실컷 욕이나 먹으면서 얻을 것도 없는데 얼굴 붉혀가면서 일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대한항공으로 손님이 몰리는 공항 카운터에 나와보라"고 주문했다.
또다른 직원은 "운항승무원들은 공항·영업·정비·캐빈·본사·화물 등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 없냐? 동료들은 지금 여러분 때문에 밤을 세워가면서 일에 치이고, 손님들에게 욕을 먹어가면서 곧 쓰러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파업이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위의 동료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켜야 하냐"고 항변했다.
한 직원은 "전 직원의 50%가 넘게 찬성한다면 몰라도 4%도 되지 않는 250명 정도의 인원이 7000명의 직원들을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가 있냐"며 "이번 일을 계기로 노동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81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파업에 들어간 항공관제사 1만1천여 명을 해고하고 정부 및 관련기관에 재취업 할 수 없도록 한 전례를 거론하며 파업에 가담한 조종사들을 엄중 징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성조종사 윤희준씨가 하루 5번 이착륙하는 '5레그 비행'의 고충을 호소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대해서도 반론이 있었다. 사내 사정을 잘 아는 한 직원은 <오마이뉴스>에 이메일을 보내 "윤씨의 경우 5레그 비행은 7개월 동안 2차례 밖에 없었는데 그런 정황 설명 없이 나간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며 "그리고 5레그 비행은 불법 운항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직원은 "조종사노조의 주장대로 교대근무를 마치고 퍼스트클래스(퍼스트클래스가 만석이면 비지니스클래스)에 탑승해 승객 자격으로 돌아오는 것까지 근무시간에 포함시키면, 한 달에 LA를 두 차례 정도 왕복하면 조종사의 한 달 근무가 다 끝난다"며 "이번 파업으로 인해 일반직 직원들의 박탈감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와중에 조종사 파업의 쟁점사항을 정리한 운항부문 직원의 글이 사내 인트라넷에 떠돌며 직원들로부터 커다란 공감을 얻고 있다. 글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