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가처분신청 '전관예우' 노렸나

담당 변호사, 5개월 전까지 관할법원 가처분신청 전담 판사

등록 2005.07.22 12:40수정 2005.07.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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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X파일'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서울남부지방법원 정문.

'X파일'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서울남부지방법원 정문. ⓒ 오마이뉴스 유창재

'X파일' 관련, 삼성측 변호사가 방송금지가처분을 내린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51부 수석부장판사 출신인 것으로 밝혀져 '전관예우' 논란이 일고 있다.

홍석현 주미대사와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본부장은 21일 MBC를 상대로 97년 불법 대선자금 관련 도청내용을 담은 일명 'X파일' 보도에 대해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냈다.

삼성 변호사, 관할재판부 수석부장 출신

이들의 변론을 맡은 사람은 김건일 변호사(49). 김 변호사는 2004년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서울남부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지냈다. 이후 판사를 그만 둔 김 변호사는 지난 3월 관할 지역인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특히 김 변호사는 남부지법 수석부장판사 재직 시절 가처분 사건을 가장 많이 다뤘던 인물. 수석부장이 가처분사건을 주로 맡기 때문이다. 이번 삼성의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담당한 남부지법 민사51부 수석부장실은 바로 김 변호사가 재직했던 곳이자 사건담당 부장판사는 그의 후임이다.

심리가 열렸던 21일 서울 남부지법에서는 법원 직원들이 모두 일어나서 김 변호사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김 변호사가 법조계 관행인 ‘전관예우’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지적과 함께 사건담당 재판부 출신 변호사를 수임한 삼성의 윤리 등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미화 변호사는 "전관예우 문제가 가장 심각한 분야가 신청사건"이라며 "가처분을 요구하는 쪽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상대방 권리행사를 막아 그 자체가 강력한 법률행위가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엄격한 증거에 의해 판결이 내려지는 형사사건 등과 달리 가처분 사건은 소명에 의해 결정이 내려진다"면서 "본안 사건보다 가처분에서 본관이 영향력을 더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처럼 큰 기업일수록 (그 영향력이) 의심될 수 있는 변호사를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또 "변호사들도 직전까지 근무했던 법원에 사건을 들고 들어가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관할 재판부 사건수임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건일 변호사 "재판 영향 미친 것 없다"

그러나 김건일 변호사는 전관예우 논란을 일축했다. 김 변호사는 "전관예우라고 하면 공직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 "그러면 일하다 나온 사람들은 몇 년간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냐"고 반문했다.

그는 법원직원들이 인사한 것과 관련, "인간사회에 있는 예의"라며 "(전관예우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재직시절 삼성 사건을 맡아본 적도 없고, 삼성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서 "불법테이프 내용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삼성이 자신을 선임한 것에 대해 "가처분사건을 많이 담당한 전문가이니까 선임했지 않았겠느냐"며 "어차피 근무했던 지역에 개원을 했으니 (관할)사건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재판을 담당한 판사는 재직시절 같이 근무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편 삼성측은 김건일 변호사 선임배경으로 전문성을 들었다. 삼성의 관계자는 "삼성과 거래하는 법무법인이 40여 군데가 넘는다"며 "사안에 따라 각각 전문성을 가진 법무법인 등과 계약하고 진행한다"고 밝혔다.

또 삼성측은 "법원이 이번에 삼성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그동안 언론보도와 관련한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비율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헌법이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개인 인격권과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다는 판단을 법원이 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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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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