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는 사람들, 말릴 수 있나요?

바람과 별 그리고 삼겹살이 함께 하는 여름휴가

등록 2005.07.23 02:10수정 2005.07.2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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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김포구! 어떤 시민기자님께서 내가 살고 있는 김포를 그렇게 말씀하셨다. 서울과 김포가 지척이라는 이유로. 맞다. 아주 넉넉하게 잡아도 족히 한 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할 수 있는 김포는 서울과 아주 가까운 이웃 도시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내가 사는 이곳은 도시와 시골을 함께 공유한 어쩌면 참 이상적인 삶의 터전인지도 모르겠다.


이곳 시골에서의 생활이 횟수로 4년째를 맞고 있으며 4번째의 여름이며 여름휴가라는 걸 3번쯤 잊고 살았다. 아니 여름휴가라는 걸 잊고 살았다는 표현보단, 여름휴가를 빼앗겨 버렸다고 말하는 게 어쩌면 맞는 표현인 듯싶다.

올 여름, 난 또 여름휴가를 빼앗길 것 같다. 나와 사뿐히 라도 곁다리를 걸치고 있는 많은 인연들에게. 하지만 빼앗긴 내 여름휴가는 아주 귀하고 소중한 그 무엇으로 분명히 되돌려 지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즘 난 바쁘다. 내게서 여름휴가를 빼앗아갈 그들로 인해 벌써부터 마음 속 발걸음은 분주하기 그지없다. 속속 나를 찾을 그들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고 편하고 행복하게 해주고자 하는 조급함에 미리 들뜬 마음이다.

첫 해. 내가 사는 곳이 강화도를 인접하고 있다는 이유로 몇몇 지인들이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우리 집을 찾더니 다음해에도 미처 숙박시설을 구하지 못했다는, 또는 숙박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우리 집에서 밤을 보냈다.

지난해. 급기야 그들의 여름휴가 코스가 바뀌어 버렸다. 강화도를 들러 우리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을 들러 강화도나 한 바퀴 돌자는 것으로. 그 이유를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때 그 밤이 최상의 여름휴가였기 때문이라고.


폭발할 것 같은 여름 태양에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진 여름날의 긴 하루 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파고들기 시작하면 남편은 마당 한쪽에서 숯불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고 나는 마당 한가운데 자리를 펴고 저녁상을 차리느라 분주하다.

저녁상이라면 상추, 풋고추, 오이, 쌈장, 그리고 절대 빠뜨려서는 안 될 송송하게 이슬이 맺힌 소주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소소한 들러리일 뿐. 그 밤의 정말 화려한 주인공은 온갖 양념에 오래 잘 재운 삼겹살이다.


양파, 마늘, 생강, 청양 고추, 사과 또는 배를 한 데 넣고 갈아 즙을 낸 것에 청주를 함께 섞은 소스. 그곳에 오래 잘 재운 삼겹살. 굳이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그건 여름밤을 즐기기에 전혀 손색없는 아주 푸짐한 저녁상이 될 수 있다.

마당 한가운데 빙 둘러 앉은 사람들. 그들을 감싸는 서늘한 바람. 가슴 속까지 스며드는 온갖 풀냄새. 구수하게 피어 오르는 모깃불.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몇 개의 별. 그리고 그칠 줄 모르는 행복이 넘쳐나는 웃음들.

김정혜
상 한가운데 숯불에 잘 구운 노릇노릇한 삼겹살이 놓여지면 모두들 입이 터져라 밀어 넣는다. 조용하다. 남편은 잘 구워진 고기를 상으로 나르랴, 다시 숯불에 고기 얹으랴, 자르랴, 정작 남편은 고기 냄새만 맡는다. 급기야 남자들은 소주병을 들고 아예 숯불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쉴 새 없이 부딪히는 소주잔 소리가 경쾌하다.

김정혜
싱그러운 상추 잎에 잘 구운 삼겹살을 얹고 그 위로 마늘과 풋고추와 쌈장이 곁들여진다. 입이 터져 나갈 듯한 여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일상사로 수다를 떨기에 입이 열개라도 부족하다. 접시 깨지는 소리가 연신 들린다.

김정혜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시원한 밤바람 속을 가르며 뛰고 구른다. 숨느라 분주하고 찾느라 바쁘고 찾았다고 좋아한다.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이 여름밤의 허공으로 흩어질 때면 어느새 총총한 별은 마치 쏟아질 듯하다.

김정혜
소름이 돋는 서늘한 바람과 쏟아져 내릴 듯한 총총한 별과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잘 익어가는 숯불위의 삼겹살. 우리 모두에게 하루하루는 참으로 고단한 현실이었다. 오로지 앞만 보고 질주를 했었다. 숨 막히는 삶이었다. 하지만 그 여름밤만은 고단한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고 고개 돌려 옆을 바라 볼 수 있었고 숨통 틔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비록 하루 밤으로 끝날 짧은 행복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남동생 네를 시작으로 이어 시 동생네, 사촌시숙 네, 또 남편의 친구들…. 줄줄이 우리 집을 찾았다. 집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우르르 욕실로 들어가 얼음 같은 차가운 지하수 물로 목욕들을 해댔다. 소름이 돋는다면서도 그들은 욕실에서 나올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들이 욕실에서 나왔을 땐 입술이 새파랬다.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삼겹살이야 뭐 그리 특별한 음식도 아니건만 마당에서 숯불로 구워 먹으니 그게 좋았던 것 같다. 거기에 밤이 새도록 웃고 떠들어도 소음공해를 우려해 이웃들을 염려 할 필요가 없었으니 그 또한 좋았었던 것 같다. 옹기종기 마당에 모여 앉은 건 비단 우리 집만이 아니라 앞집도 뒷집도 온 시골동네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을 필요가 없고, 바리바리 짐을 꾸릴 필요가 없고, 바가지 요금에 인상 쓸 필요가 없고,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 위에서 귀한 시간을 갑갑함에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이 그들이 우리 집을 찾는 이유라고 했다. 더불어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우리 집에서의 하룻밤은 그저 내 집에서 쉬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고 했다.

그들이 떠나고 그들이 남기고간 흔적들을 치우느라 땀으로 멱을 감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린다. 잘 쉬었다 가노라고, 고마웠노라고, 고단했던 일상을 말끔히 지우고 새로운 내일을 위해 충분히 재충전을 했노라고.

하지만 정말 고마운 건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지친 그들에게 보잘 것 없지만 뭔가를 해주었다는 기쁨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내일이 하룻밤의 휴식으로 충분히 재충전 되었다는 건 물론 그들의 인사 치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인사 치레조차도 나는 행복하다. 단지 그들이 우리 집을 찾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꺼이 행복하다.

여름이라는 한 계절 속에 하룻밤이야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 밤에 우린 충분히 정을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충분한 정으로 남은 여름의 타는 듯한 갈증을 또한 충분히 해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이란 건 힘든 세상사 매 순간순간 쓰러지는 누군가를 단번에 벌떡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삶의 힘이기 때문이다.

올 여름. 서늘한 바람과 총총한 별과 구수한 숯불구이 삼겹살로 정을 나누느라 나는 또 많이 행복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작'

덧붙이는 글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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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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