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에서

40에 도전했던 백두대간 연속종주

등록 2005.07.23 16:21수정 2005.07.2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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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덕유산 이정표

덕유산 이정표 ⓒ 정성필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선다. 덕유산이다. 오늘이 일요일이다. 사람들이 많이 올라온다. 유명한 산답다. 지금까지 백두대간 중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산에서 만난 게 흔하지 않다. 남덕유를 넘어 삿갈골 대피소까지 간다. 대피소에서 파는 컵라면을 산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라면이다. 라면을 먹고 버리려 하니 버릴 곳이 없다. 그렇다고 계속 가지고 다닐 수 없어, 사정이야기 하고 관리인에게 놓고 간다 말하려 관리인을 찾았다.

나오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관리인과 대화하는 조그만 창 앞에 컵라면 그릇을 놓고 간다. 버리고 간 것을 보고, 약았다. 못됐다, 라고 욕하겠지만 할 수 없다고, 합리화 한다. 쓰레기 문제는 백두대간 연속종주자에게는 큰 문제다. 대게 음식물 쓰레기일 경우는 땅을 파고 묻지만, 비닐과 깡통쓰레기는 처치 곤란이다. 할 수 없이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다 버린다. 처음엔 그랬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버린다. 그러니 더 나쁘다.


하지만 산을 내려가야 쓰레기를 버리는데, 산을 내려갈 기회가 거의 없으니 할 수 없다. 배낭 무게를 줄이려면 부피를 줄이려면 버리는 수밖에 없다. 사실 삿갓골재 대피소 관리인에게 허락 받고 버리려 했지만 없어서 몰래 놓고 온 컵라면 용기는 너무 했다 싶지만, 한 편으로는 국립공원에서 돈 받고 사람들 통제를 하면 이정도 수고는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처음 얼마간은 나의 쓰레기 버리기는 양심에 커튼을 쳤다. 하지만 대간 중간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주우며 다녔다.

a 삿갓골재 대피소

삿갓골재 대피소 ⓒ 정성필

태백산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재마다 고개마다 마을이나 민박집이 있어 쓰레기를 버릴 수 있게 되어 마음의 여유가 생긴 듯하다. 또 백두대간이 쓰레기 대간이 된다 생각하면 끔찍하다. 산에서 쓰레기에 대한 나의 태도는 처음엔 합리화로 나중엔 백두대간을 지켜야한다는 의무감으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

덕유평전을 걷다가, 나물 하는 아주머니들을 만난다. 나물을 배우고 싶어 간간히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실습까지 하면서 배우기는 처음이다. 네 분의 아주머니들이 슬리퍼에 운동화를 신고 덕유산을 누빈다. 신기하다. 등산화에 지팡이를 잡고 다녀도 힘든데 나물꾼 아주머니들은 집에서 입던 티셔츠에 슬리퍼 신고 산더미 같은 나물짐을 지고 자유자재 산을 누빈다. 기가 막힌다. 어쩌면 저리 산을 잘 다니는지 부럽기만 하다. 나는 배낭도 벗어 놓은 채 아주머니들을 따라 나물을 배우러 다닌다.

a 무룡산정상

무룡산정상 ⓒ 정성필

취나물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직접 먹을 수 있는 취와 삶아서 떡 할 때나 먹는 수리취가 있다. 먹을 수 있는 취에는 잎이 둥그스름하면서도 잎 가장자리가 톱날 같은 곰취가 있다. 곰취로 삼겹살을 싸먹는다면 최고의 진가를 발휘한다. 취를 구분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취나물 잎을 받치고 있는 줄기 색으로 구분하는 방법. 줄기가 자색을 띄는 것은 자옥, 청색을 뜨면 청옥으로 나뉜다. 자옥이 청옥보다 더 맛있다. 그 외에 몇 가지 취가 더 있다는 데 그 정도면 나에겐 취나물 공부는 충분하다. 게다가 참나물과 고추나물.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풀을 배웠다. 그것도 실습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 후로 나는 대간 내내 목마르면 취나물 참나물을 뜯어 해갈했고, 배고프면 나물을 뜯어 옷에 아무렇게나 쓱쓱 문지른 다음 생으로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나물을 배운 후부터는 물을 찾으러 마루금을 함부로 내려가는 일이 적어졌다. 나물과 풀이 갈증을 해결해주었고, 반찬이 되었고 때론 식량이 되었다.

a 뒤돌아 보면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이 보인다

뒤돌아 보면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이 보인다 ⓒ 정성필

나물꾼 아주머니들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아주머니들이 백두대간, 꼭 끝까지 잘하라고 당신들이 가지고 올라온 쌈장을 주신다. 나물 뜯어 먹을 때 찍어먹으라고 주고 간다. 게다가 당신들 먹으려고 가지고 온 참외하고 몇 가지 반찬을 더 준다. 나는 나물꾼 아주머니들이 준 소중한 것을 받아들면서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정, 뜨거운 정을 느낀다.


처음 백두대간을 시작할 때 단지 도전하고 싶다는 단 한 가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이었다. 하지만 백두대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기대하고 격려해주고 자신의 것을 툴툴 털어 주며 힘을 내라하는 모습에서 나는 백두대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다만 아주 작은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밟았는데, 이제는 사명감까지 가지게 된다.

a 동엽령에서

동엽령에서 ⓒ 정성필

그래 가야한다. 반드시 가서 끝까지 가서 도착했을 때의 그 감정을 기대해보자. 다짐해본다.


덕유산 주능선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내 배낭을 보고 물어본다. 백두대간 중이라 하면 놀라면서도 반드시 끝까지 가라 격려해준다. 격려를 받을 때마다 몸 어딘가에 감추어졌던 나 이외의 타인을 보게 된다.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동생들과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그 얼굴들. 나는 용서 했지만 나를 용서하지 못했을 얼굴들.

내가 나를 몰라 상대를 아프게 만들었던 그 상황들. 수도 없이 떠오른다. 알면서도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들, 가슴속 깊이 감추어 놓았던 나만의 부끄러운 것들이 생각난다. 괴롭다. 견딜 수 없다. 견딜 수 없어서 걷는다. 걸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땀과 눈물이 섞여 걸음걸음마다 발등으로 툭툭 떨어진다. 걸음마다 아프다. 아픈 만큼 눈물이 짜다.

a 동엽령에서 본 남덕유산

동엽령에서 본 남덕유산 ⓒ 정성필

덧붙이는 글 | 2004년 5월 16일 부터 7월 4일까지의 백두대간 무지원 단독 종주기

덧붙이는 글 2004년 5월 16일 부터 7월 4일까지의 백두대간 무지원 단독 종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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