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매미의 날개분리 수술을 하다

(시와 함께 살다 31) 내 손바닥 위의 매미

등록 2005.07.25 06:47수정 2005.07.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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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나는 작년의 매미가
올 여름에도 그냥 울어주는 줄 알았다
강가에 오니
강마을은 흔적 없이 사라졌는데
물 속에 반쯤 잠긴 미류나무
그 가지에 매달려 철 놓고 매미가 운다
스무 날을 울기 위하여
칠 년을 바꿔 산 오랜 穴居를 헤치고
승천하듯 깨어나 매미는
무엇에 놀란 듯 자지러지게 울어대지만
이 마을의 사라진 일생은
어느 羽化에 맞닿아 물 밑
긴 터널로 가고 있는지
댐 물은 발치에까지 밀려와 출렁거린다
저 세월 온몸으로 기지 않고서는 건너지 못한다는 것을
매미 울음으로 문득 깨닫는다
어느 여름도 공짜가 없다는 것을
철 놓친 매미가 귀 따갑게 귀 따갑게 일러준다

-세계사 시인선 21 김명인 시집 <물 건너는 사람>에서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있다. 초원을 가로질러 가파른 해안 절벽을 내려가면 울창한 해변 숲이 나오고 이 숲을 통과하면 한적한 작은 바닷가로 이어지는 아주 멋진 산책로다. 지난 여름에는 아내와 함께 주말마다 이 산책로를 다녀오는 즐거움으로 지냈다.

30여분을 걸어 도착한 바닷가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세필로 그려놓은 듯한 갈매기의 눈동자를 바라보기도 하고 가까운 해변 숲에서 들려오는 자지러지는 매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배에서 꼬로록, 하고 기별이 오면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어 먹었다.

그렇게 여름의 주말을 바닷가에서 한가롭게 즐기던 어느 날,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은 후 주변의 조개껍질 더미들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던 아내가 연두색의 작은 곤충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매미였다. 막 돋아난 신록처럼 여릿여릿한 연두색 몸을 조개껍질에 딱 붙인 채 붉은 기가 도는 겹눈을 반짝거리며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내 팔을 타고 기어오르는 어린 매미. 연두색의 몸통과 퉁방울처럼 튀어나온 붉은색 눈이 귀엽다.
내 팔을 타고 기어오르는 어린 매미. 연두색의 몸통과 퉁방울처럼 튀어나온 붉은색 눈이 귀엽다.정철용
막 터지기 직전의 풍선껌처럼 아슬아슬하고 하늘하늘한 두 쌍의 날개에 보이는 섬세한 그물맥에도 연두색이 도는 것을 보면 날개돋이를 마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매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작은 뒷날개 한 쌍은 온전히 펴졌는데 큰 앞날개 한 쌍은 끝 부분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하, 그래서 날아가지 못하고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거구나. 매미가 애벌레의 허물을 벗고 날개돋이를 하는 것은 주로 밤부터 새벽 사이이고, 그러고 나서 보통 두세 시간이 지난 아침녘에야 날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어린 매미는 정오가 훨씬 지났는데도 끝이 붙어버린 앞날개를 펴지 못해 날아가지를 못하고 바닷가 조개껍질 더미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린 매미에게 검지손가락을 살짝 갖다댔다. 놈이 손가락을 타고 내 손바닥 안으로 기어올랐다. 어리긴 해도 그 발끝에는 갈고리가 있어 까슬까슬한 촉감이 느껴졌다. 눈 가까이 들어 올려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살아 있는 매미를 이렇게 가까이 보기는 처음이었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놈은 조금 당황했는지 내 손바닥 위를 분주하게 기어다녔다.

나는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놈의 모습을 찍었다. 커다란 렌즈가 자신에게 다가갈 때마다 방향을 돌리는 탓에 조금 애를 먹었지만 놈의 모습을 몇 장 담았다. 귀찮게 구는 내가 견디기 어려웠던지 놈은 마침내 비행을 시도해 본다. 그러나 날아오르지 못한다. 작은 뒷날개만 빠르게 움직일 뿐, 큰 앞날개는 꼼짝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애처로웠다.

내 손바닥 위의 매미. 앞날개의 끝부분이 서로 붙어서 날아가지를 못했다.
내 손바닥 위의 매미. 앞날개의 끝부분이 서로 붙어서 날아가지를 못했다.정철용
아마도 날개돋이할 때 무슨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앞날개가 쫙 펴지지 않고 저렇게 샴쌍둥이처럼 끝이 서로 붙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나는 날개분리 외과 수술을 시술하기로 했다.

양쪽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매미의 앞날개를 각각 하나씩 살짝 쥐었다. 순간 놈이 몸을 움직였지만 양 날개가 내 손가락에 잡혀 있기 때문에 달아나지 못했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날개의 양쪽을 잡아당겨 펼쳤다. 어린 매미의 생명이 달려있는 매우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붙어있던 날개의 끝이 갈라지는 순간 놈이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휴, 성공이다! 나는 놈을 놓아준다. 한 순간 비틀거리는 듯하더니 놈은 다시 균형을 잡고 날아오른다. 첫 비상이다. 2초도 안 되어 놈이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어린 매미가 사라진 하늘에는 흰 구름이 눈부시다.

잘 가라, 매미야. 땅 속에서 수 년 동안을 기다려서 네가 살아보는 이 지상에서의 삶은 고작 2∼3주 밖에 안 되겠지만, 저 넓은 하늘과 환한 햇빛이 약속하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서 마음껏 네 삶을 누리거라, 매미야.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목청껏 구애의 노래를 부르고 좋은 짝 만나 사랑하고 알도 많이 낳거라.

나는 하늘 어디쯤 날아가고 있을 어린 매미에게 내 마음을 실어 보냈다. 그러나 어린 매미를 떠나 보내고 난 내 손바닥은 조금 허전했다. 아직도 펼치지 못한 내 날개는 과연 언제쯤 펴질 것인가. 내 빈 손바닥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자문해 보았다.

그래, 김명인 시인이 말한 대로, 내가 꿈꾸는 우화(羽化)의 세월 역시 '온몸으로 기지 않고서는 건너지 못' 하는 것이리라. '어느 여름도 공짜가 없'듯이 내가 꿈꾸는 여름 역시 끊임없는 내 날갯짓의 노동으로 불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리라.

허전한 내 손바닥을 아내의 손바닥과 포개고 돌아오는 길, 매미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목청 좋은 매미 울음소리 속에서 작지만 또렷하게 들려 오는 내 날갯짓 소리를 나는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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