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대사, 미래의 우리 아이들 모습이 아니길

'X파일' 사건으로 우리 교육을 돌아보다

등록 2005.07.25 13:02수정 2005.07.2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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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인을 비난하거나 허물을 들추어내자는 것이 아니다. 그 특정 개인의 일그러진 모습이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 내 자녀의 미래의 그림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 나아가서는 한 나라를 지탱해나갈 어린 꿈나무들의 어둡고 슬픈 미래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교육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성찰해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여기서 '사건'이란 다름 아닌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는 'X파일'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일컬음이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저런 생각이 없을 수 없었지만, 그보다는 미래 세대의 교육을 책임진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의 도덕적 불감증에 대한 깊은 우려와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방송 보도를 통해 'X파일'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내 관심은 재계와 정계 사이에 오고간 검은돈의 심부름꾼 노릇을 자처한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모습을 텔레비전의 화면을 통해 바라보면서 나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을까?'

만약 혼자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내 속내를 내비쳤다면 순진한 사람 다 보겠다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오'로 귀결될 것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반성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도 답이 뻔하다는 점에서 엉뚱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잘못을 알아야 반성을 해도 할 것인데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사람이 무슨 수로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것인가.

세속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성공한 사람이고 잘난 사람이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염원해 마지않는 일류고와 일류대 출신에다가 미국의 명문대에서 수학한 수재이다. 거기에 그의 직업적인 성공도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가 쌓아놓은 업적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는 성실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인간으로서 완전수에 가까운 아흔아홉 가지의 재능과 권력과 부와 명예를 소유한 사람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단 한 가지가 부족해서 추락의 길로 들어섰다.

그 한 가지는 다름 아닌 올바른 가치관이다. 그가 살아오는 동안 그 한 가지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누군가가 끊임없이 일러주거나 어떤 계기를 통해 스스로 깨우쳤다면 그의 지식과 부와 명예가 얼마나 빛이 났을까? 그의 잘난 사람 됨됨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을까? 그로 인해 이 사회의 어둡고 추운 곳들이 얼마나 환해지고 따뜻해졌을까?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 그는 한 가지 소중한 지식을 소홀히 함으로써 개인의 몰락을 자초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세계인들의 눈에 다시 한번 정치적 후진국으로 추락시킨 장본인이 되고 만 것이다. 그가 영향력 있는 메이저 신문사주로서의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여 뿌려놓은 거짓 씨앗들이 발아하여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 막고 왜곡시킨 것까지 따진다면 그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혜량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깊은 우려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지금 우리 교육의 향방을 가늠해보건대 미래의 '그'가 대량으로 양산될 조짐이 보이는 까닭이다. 그가 소홀히 했던 한 가지를 지금 우리 아이들도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아이들이 그것을 소홀히 하도록 어른들이 조장하거나 방치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결국 입시교육의 해악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데,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빨간 신호등에서는 멈추고 파란 신호등이 켜지면 길을 건너야한다는 것을 시험답안에 제대로 쓰게 하는 것이 좋은 교육일까? 아니면 그것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교육일까?"

누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전자가 정답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가 신호등을 지키지 않을망정 시험 답안에는 바른 답을 쓰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 부모가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 결과는 '어린이 교통사고율 세계 1위'라는 끔찍하고 부끄러운 통계수치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입시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그가 배운 지식을 실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시험 답안에 정답으로 써넣기만 하면 그만이다. 심지어는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해 읽어야하는 책도 입시교육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는 점수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지금은 청와대 교육담당 비서관이 된 김진경 선생의 저서 <미래로부터의 반란>에는 우리나라 입시교육의 심각성의 정도를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국어과 교사들은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길러 줄 목적으로 수행평가를 독서로 하는데 무척 애를 먹는다고 하더군요. 차음에는 읽은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형태의 논술식 시험으로 평가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학원에서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한 모범 답안을 만들어서 학습시키더랍니다. 아이들은 정작 책을 안 읽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책을 읽지 않으면 답할 수 없는 세부적 내용들을 뽑아서 주관식으로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학원에서 이백 가지 정도의 예상 문제를 만들어서 학습시키더라는 겁니다. 역시 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런 기막히고 우스꽝스러운 교육환경 속에서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참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요 희극이다. 그런데도 이런 참담한 현실에 대한 개탄의 목소리가 학교 현장이나 가정에서 차츰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주소이기도 하다. 입시위주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개선해나가려고 애쓰는 현장 교사들도 지쳐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입시교육의 해악으로부터 우리 교육을 구해낼 묘책은 있는가?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 유일한 길은 지금이라도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다. 아흔아홉 가지의 지식에 더하여 한 가지 소중한 지식에 방점을 찍는 일이다. 이웃과 더불어 바르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다.

파란 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빨간 불이 켜지면 멈추어야한다는 것을 시험 답안으로 쓰는 것보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해서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의 손을 잡고 파란 불이 켜지기를 기다려 함께 길을 건너는 것이다. 세상을 구할 진리는 이렇게 간단하고 단순하다.

빨간 불은 거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는 빨간 불이 켜진 수많은 건널목을 아무런 반성도 없이 마구 건너버린 잘못을 저지른 셈이 아닌가. 나는 그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지금의 그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자기 성찰의 능력을 상실한 우리 교육의 무덤 위에도 반성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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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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