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궁금해? 그럼 이리 와 봐!

한여름 밤, 오싹한 흉가체험 현장을 가다

등록 2005.07.29 00:00수정 2005.07.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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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위치한 흉가 '황금목장'. 겉보기엔 평범한 주택과 다름없다.
강화도에 위치한 흉가 '황금목장'. 겉보기엔 평범한 주택과 다름없다.나영준
"오늘 가는 데가 우리나라에서 귀신 많기로 최고 유명하데요. 사람들이 가장 꺼려하는 장소거든요. 정말 기대돼요."(유성민·24·회사원)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말에 한숨부터 나왔다. <주말의 명화>나 보고 있을 걸 도대체 왜 내가 여기에 와 있을까 괴롭기만 했다. 2005년 7월 23일 토요일 밤, 그렇게 강화도로 향하는 차에서 나는 속으로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를 외치고 있었다.


"청심환 찾을 사람이면 오지 말았어야죠"

이 날 강화도 외포리에 위치한 '황금목장'으로 향하는 이들은 인터넷 모임 '흉가체험'의 회원들. 이들은 "이번 목적지가 가장 무서운 흉가 중 하나"라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창밖을 보며 한숨만 쉬고 있는데, 운전대를 잡은 회원은 태연스럽게 한마디 보탰다.

"이 차, 며칠 전에 사고 났었는데… 괜찮을까?"

충북 단양의 한 흉가에서 카페 회원이 찍은 사진. 왼쪽에 초를 들고 있는 손은 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양초를 준비하지도 않았다고. 오른쪽 두 사람 사이에 보이는 뒤통수도 현장에 없던 사람이라고.
충북 단양의 한 흉가에서 카페 회원이 찍은 사진. 왼쪽에 초를 들고 있는 손은 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양초를 준비하지도 않았다고. 오른쪽 두 사람 사이에 보이는 뒤통수도 현장에 없던 사람이라고.다음카페 '흉가체험
각종 파스와 근육경련제 등을 챙겨 온 회원에게 혹시 청심환도 있느냐고 물으니 "그런 거 찾을 사람은 이런데 오면 안 되죠"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날 모인 회원 14명의 표정에는 두려움이란 없었다. 처음 참가한다는 도재욱(21·학생)씨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올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 왔죠"라며 여유를 보였다.

참여한 사람 중 여성은 3명. 동그란 눈에 평소 겁이 많아 '보일 것' 같은 유성민씨는 "지난 번에 같은 장소에 갔지만 그때는 영기(靈氣)가 너무 강해서 집 밖만 돌고 왔다"며 "오늘 밤엔 드디어 집안에 들어간다, 정말 기대 된다"고 한다. 겁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오히려 "체험 끝나고 새벽에 집에 돌아갈 때 골목길이 더 무섭다"며 웃는다.

흉가 아래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회원들. 긴장감이 돌고 있다.
흉가 아래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회원들. 긴장감이 돌고 있다.나영준
귀신은 방송인들을 좋아한다?


이 날 한 공중파 방송에서 취재를 나온 PD와 카메라맨 역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퇴마 의식 취재를 나갔던 선배 PD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혼령의 모습을 보고 몇 달간 몸져누웠던 일은 방송가에선 유명한 사건이라고. 강화도에 도착하자 과거 한 지역방송에서 '고스트 헌터'라는 프로그램으로 이름 날리던 고영규 PD가 기다리고 있었다.

"흉가에서 '우지끈, 쾅' 하는 엄청 큰 소리가 난 적이 있다. 물론 현장에 있던 스태프와 출연자 모두 듣고 놀랐다. 그런데 편집을 할 때 보면 아무 소리가 안 난다. 또 피가 묻어 있는 현장을 보고 찍었는데 그 부분만 깨끗이 사라져 있기도 한다. 그럴 때면 소름이 쫙 끼친다."


흉가의 뒷문을 열고 첫걸음을 들여놓는 김재운씨
흉가의 뒷문을 열고 첫걸음을 들여놓는 김재운씨나영준
옆에 있던 김재운(퇴마사·심령연구회 회장)씨는 작년 강원도 인제에서 촬영했을 때 고 PD와 함께 온 조연출자가 촬영 후 갑자기 쓰러져 하반신 마비에 걸린 이야기를 들려줬다. 괴로움에 몸을 뒤틀던 그는 결국 김씨가 퇴마의식을 행한 후에야 일어설 수 있었다고.

김씨는 영(靈)들이 자신의 구역에 침범하는 것을 원래 마뜩치 않게 여기는데다 이곳저곳 촬영을 한다고 쑤시고 다니니 기분이 좋을 리 있겠느냐며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함부로 들어온 사람을 쫓으려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목이 뻣뻣해져요"

흉가는 마을에서 차로 4~5분 정도 떨어진 국도 변 야산에 있었다. 차를 산비탈에 세우고 다시 200~300m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밤 12시쯤 카페 운영자 이동욱씨와 퇴마사 김재운씨가 먼저 답사를 다녀왔다.

회원 이유진씨가 두 사람의 영(靈)이 머문다는 다락방을 촬영하고 있다. 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용감한 여인이다.
회원 이유진씨가 두 사람의 영(靈)이 머문다는 다락방을 촬영하고 있다. 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용감한 여인이다.나영준
다락에서 찍힌 orb. orb는 영혼의 형체가 구 모양으로 찍힌 것을 의미한다고. 김재운 법사가 '제대로' 찍혔다고 칭찬한 사진이다.
다락에서 찍힌 orb. orb는 영혼의 형체가 구 모양으로 찍힌 것을 의미한다고. 김재운 법사가 '제대로' 찍혔다고 칭찬한 사진이다.이유진
"여기 굉장히 위험한데… 영들이 한 예닐곱 되는데 사람들이 오는 걸 반기지 않네."

씩씩하던 회원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 그런데다가 각 2명씩만 차에서 떨어진 그 곳에 다녀와야 한다는 이야기에 몇몇 입에서 가벼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때 여성회원 한 명이 갑자기 뒷목이 뻣뻣해지고 머리가 아프다는 호소를 해왔다.

김재운 법사가 단순빙의가 걸린 카메라맨에게 퇴마치료를 하고 있다.
김재운 법사가 단순빙의가 걸린 카메라맨에게 퇴마치료를 하고 있다.나영준
'단순빙의' 현상이라고 한다. 김재운씨는 곧바로 퇴마치료에 들어갔다. 손을 여성회원의 머리와 어깨에 갖다대고 때때로 낮은 휘파람 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어 출발 때부터 불안해하던 방송국 PD와 카메라맨 역시 같은 증상을 호소했고 두 사람 모두 김씨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켜보던 이들 중 한 사람이 "긴장이 지나쳐 그런 것 아니냐"고 했지만 목이 뻣뻣해지고 머리가 어지럽고 아랫배가 싸늘해지는 등 세 명의 증상이 놀라울 만큼 같다는 점에선 다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드디어 흉가 속으로

필자를 포함해 김재운 퇴마사와 그의 제자 김하일씨, 방송국 팀 두 명 그리고 겁 없는 여성회원 이유진씨 등 총 여섯 명이 흉가인 목장으로 출발했다. 취재 핑계로 '묻어 갈 수' 있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비탈지고 서늘한 숲길을 헤쳐 나가자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식 일반 양옥이 나타났다.

7살 난 아이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는 거실의 쇼파
7살 난 아이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는 거실의 쇼파나영준
김씨의 말대로 "실례하겠습니다"를 읊조리고 뒷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섰다(앞문은 잠겨 있었다). 플래시가 없었다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을 어둠 속에서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통로는 작은 방으로 연결돼 있었다. 방 한 쪽에 연결된 다락 앞에서 김씨가 "이 위에 두 사람의 영이 머물고 있다"고 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보이진 않았다.

마루로 나오자 소파가 보였다. 그 곳에는 7살 된 아이의 영이 앉아 있다고 한다. 뒷덜미가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럴 땐 영이 다가오는 순간이기 때문에 손을 대지 말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라는 한 회원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심령사진이라도 찍힐까 싶어 아무 소리 못하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할머니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재운 법사
할머니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재운 법사나영준
안방에 들어선 김씨는 "여기 할머니가 앉아 계시네"하며 담요가 깔린 의자를 가리켰다. 그는 그 곳에 계시다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일흔 여섯에 돌아가셨다고요?"

실제 눈에 보이는 이와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지켜보는 이들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갑니다. 편히 쉬세요"라는 인사까지 남기고 일어섰다.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언덕 아래로 내려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20여 분. 제법 긴 시간이었지만 긴장을 해서 그런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진 못했다. 모든 체험이 끝난 회원들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다소 무섭기도 했지만 짜릿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무사히 마쳐서 다행입니다. 앞으로 다른 곳을 체험하러 다니더라도 항상 조심하시고 용감한 마음으로 다니십시오. 영혼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밖으로 나오자 김 법사가 다락에 머물던 두 영혼이 지붕 위에서 이 곳을 내려다 보고 있다고 했다. 카메라엔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김 법사가 다락에 머물던 두 영혼이 지붕 위에서 이 곳을 내려다 보고 있다고 했다. 카메라엔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나영준
김재운씨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짧고도 긴 여름밤의 공포체험은 끝이 났다. 시원한 생맥주를 들이키러 가는 회원들을 뒤로 하고 서울로 향했다. 차에 탄 사람은 방송국 팀 2명과 운영자 팀의 한 사람인 김주영(가명)씨까지 4명. 큰일을 치러낸 듯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뒷자리에서 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김씨가 말문을 막아섰다.

"잠시만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예? 무슨…말씀…?"
"지금 차 뒤에 누가 따라오고 있거든요."

너무도 진지한 그의 한 마디에 차 안에 일순간 정적이 돌며 소리 없는 비명이 일었다. 칼날 같은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다 죽은 줄 알았던 귀신이 다시 살아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잠시 후 그가 "이제 괜찮습니다"하고 말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공포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의 진정한(?) 통과의례는 따로 있었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들어서려 할 때 어머니의 한마디 고함과 함께 무언가가 온 몸으로 날아들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 여보, 맛소금 말고 굵은 소금 가져오라니까!"

"'간접' 아닌 직접 '체험'의 짜릿함이 있다"
인터넷 카페 '흉가체험' 운영자 이동욱씨

'흉가체험(http://cafe.daum.net/hyunggabest)' 운영자 이동욱씨는 예전엔 '착실한 크리스찬'으로 귀신의 존재 따위는 믿지 않았다고.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체험하게 된 후 지금은 마니아를 뛰어 넘은 전문가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는 체험에 있어 '안전'을 힘주어 강조했다. 집에 돌아간 후에라도 몸에 이상이 있는 이들은 곧바로 운영진에게 연락을 취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 매년 여름마다 이런 행사를 자주 하는가? 주로 어떤 분들이 많이 참가 하는가?
"작년의 경우 약 130~40회를 했다. 방송에 나간 횟수만 56회였다. 참여하는 이들은 천차만별이다. 20대 학생부터 40대 직장인까지 다양하다. 많은 분들이 직접 느끼고 싶어 참가한다."

- 사람들이 왜 이런 행사에 참여한다고 생각하나. 실제 귀신이 존재하는가?
"흉가를 다니며 겪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에이,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하는 이들이 있다. 귀신은 바로 그런 사람을 노린다.(웃음) 겁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과장할 필요도 없다. 입증된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것을 즐기는 이들은 간접이 아닌 직접 체험을 원하는 거다. 영화가 아닌 현실이다. 위험을 느끼면서 스릴을 즐기는 거다. 가공하지 않은 실제 공포인 것이다. 물론 때로는 사람이 다치기도 한다. 작년 6건, 올해 3건의 사고가 났다."

- 사고라면?
"빙의(憑依)다. 심할 경우 목소리가 바뀐다거나 하는 식으로 사람 몸에 귀신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김재운 법사님 같은 전문가들을 모시고 행사를 치른다. 얼마 전에도 한 방송국 카메라맨이 팔이 마비되는 단순 빙의에 걸리기도 했다. 법사님이 그 자리에서 치료를 해주시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 흉가 체험 시 주의사항이 있다면?
"일단 흉가 안으로 들어서면 떠들거나 장난치면 안 된다. 또 그 안에 있는 어떤 물건도 만지거나 위치를 바꾸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나에게만 보이는 귀금속이나 돈이 있을 수도 있다. 욕심을 내선 안 된다. 그것이 하나의 매개체가 돼 당신을 시험할 수도 있다. 그런 점들만 주의한다면 시원한 여름밤 추억이 될 것이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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