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버리고 나침반을 차라!

[새책] 브라깃 뢰트라인 <느림에의 초대>

등록 2005.07.27 17:08수정 2005.07.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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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브라깃 뢰트라인 <느림에의 초대> 앞표지

브라깃 뢰트라인 <느림에의 초대> 앞표지 ⓒ 산호와진주

“어떤 ‘느림’에 관한 책인가?”

<느림에의 초대>를 보는 순간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느림’에 관한 책이 워낙에 많이 나와 있다 보니 “이 책은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던 것이다.


인류학자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인생 컨설턴트 어니 J.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 언론인 박기현의 <느리게 혹은 천천히>, 출판기획자 이희돈의 <느리게 살면서 잘 사는 시간 활용법>, 시인 윤중호의 인물 이야기 <느리게 사는 사람들>.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 신의진의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와 <느림보 학습법>.

또 스튜어트 브랜드의 <느림의 지혜>, 문학평론가 이남호의 <느림보다 더 느린 빠름>, ‘노자를 벗하여 시골에 살다’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시인 장석주의 수필집 <느림과 비움>, 밝은빛웃음치유연구소 소장 정구영의 <웃음과 느림이 답이다>, 김영월의 <느림의 미학>, 밀란 쿤데라의 소설 <느림>, 김선영 불교소설 <느리게 사랑하는 것의 기쁨>, 스텐 나돌니의 <느림의 발견>, 민성기의 <행복한 느림>…….

이 가운데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어니 J.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즐거움>과 밀란 쿤데라의 <느림>은 꽤 팔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책을 팔기 위해 ‘느림’에 관한 책을 낸 게 아니냐?” 하는 오해를 받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느림에의 초대>는 다르다. 지난해에 나온 이 책을 이 땅 사람들이 올해라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시간관리 및 생활방식 컨설턴트 브라깃 뢰트라인은 “당신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제껏 살아왔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것이다. 이 책은 분주함이나 긴장과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느림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다 즐겁고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가르쳐 줄 것이다.”라고 자신하고 있다.

피에르 쌍소의 말을 빌려 “느림의 미학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깊은 배려가 있는 부드럽고 우아한 삶의 방식이다.”라고 말했을 때 상대방이 “쳇! 낭만적인 잠꼬대를 하고 있군” 하고 말해도 할말은 마땅치 않을 것이다. “바쁘게 살아도 살기 힘든 세상에 무슨 한가로운 말장난이나 하고 있는가?”라고 말했을 때도 할 말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빨리 달려만 간다고 능사인가? 빨리 달려가도 제대로 빨리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제대로 빨리 달려오지 않았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경제 향상을 위하여 달려왔다. 정신문화는 그 수준 그대로인 채 . 그런 정신문화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권력자와 정치가들은 백성을 속이기 쉬었는지 모른다.


방글라데시 같은 빈곤국 사람들은 출판문화 자체가 낙후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출판문화가 선진국 수준인데도 책을 지독하게 안 읽는다. 한글을 배웠는데도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사실 보통동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사색의 힘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줄곧 TV 앞에 앉아 채널만 돌리고 있거나, 책을 읽지 않는 보통동물 수준의 이웃들이 모여 앉아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 구설(口舌)에 올리는 이야기나 하고 있으면서 자식들에게는 “공부하라”고 외친다. 그러면서 바쁘다고 한다.

<느림에의 초대>는 모두 7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삶, 한 마리 토끼만 쫓기, 천천히 좀 더 천천히 살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가 없다, 몸과 시간의 조화, 소박한 여행, 나이 듦에 대하여. 각 장마다 2~4토막으로 나누어 놓고 거기서 또다시 몇 개로 나누어 느리게 사는 방법론을 풀어놓고 있는데 제목만 보아도 “그렇지” 하고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가령 이런 식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라’, ‘때때로 휴대폰을 꺼두라’,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전력을 쏟아라’,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오지 말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사랑할 때’, ‘불필요한 회의는 이제 그만!’, ‘즐기면서 천천히 먹어라’, ‘핸들만 잡으면 돌변하는 사람들’, ‘일단 심호흡을 하라’, ‘더할 나위 없이 즐겨라, 그러면 행복하다’,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 밖을 보라’…….

눈치 빠른 사람은 이 소제목만 보아도 무슨 내용인 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느림에의 초대>는 또한 ‘일상 속 여유에 이르는 길’을 19쪽으로 나누어 가르쳐 주고 있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늘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새로운 것에 열중하는 사람은 타성에 젖은 사람보다 적극적이고 융통성이 있다. -<느림에의 초대> 35쪽에서

소중한 사람에게는 전자우편을 보내는 것보다 가끔은 손으로 직접 편지를 쓰는 것이 더 낫다. -<느림에의 초대>35쪽에서

한 달에 한 번쯤은 아이들과 가족도 잠시 떼어두고 이 날만이라도 아무런 근심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느림에의 초대> 42쪽에서

악수할 때는 상대방에게만 신경 쓰라. 상대방 눈만 보고, 어깨 너머로 다른 사람을 보지 말라.-<느림에의 초대> 60쪽에서

차가 막힐 때는 지도를 꺼내보는 것이 좋다. 지도를 펼쳐든 순간에 곧장 움직일 것이다. -<느림에의 초대> 113쪽에서

이제 물리치료 받으러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 되었다. 너무 무덥다 보니 요즘은 샤워할 시간을 미리 남겨두고 외출 준비를 해야 한다. 읽을 만한 새책이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하는 물리치료실장에게 <느림에의 초대>를 권해야겠다.

“<느림에의 초대>는 삶의 의미도 찾지 못한 채 허둥지둥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시계를 버리고 나침반을 차라!’고 채찍질하며 한편으로는 자상한 인생의 길손 역할을 해줄 겁니다.”

덧붙이는 글 | <느림에의 초대> 브라깃 뢰트라인 쓰고 김하락 옮김/2005년 7월 14일 산호와 진주 펴냄/223×152mm 216쪽/책값 9000원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느림에의 초대> 브라깃 뢰트라인 쓰고 김하락 옮김/2005년 7월 14일 산호와 진주 펴냄/223×152mm 216쪽/책값 9000원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느림에의 초대

브리깃 뢰트라인 지음, 김하락 옮김,
산호와진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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