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2005년판 신3당합당'

[분석] '대연정' 제안 왜 나왔나

등록 2005.07.28 16:05수정 2005.07.2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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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8일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밝힌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大聯政) 제안은 90년 3당합당에 견주면 내용상으로는 '정책연합'을 매개로 한 일종의 '2005년판 신3당합당' 제안이다. 이는 또한 야당과의 '권력 분점'을 골자로 한 '대(대)야당 중대제안'이다. 더 나아가 야당의 '권력 과점'을 용인하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노 대통령이 '3당 야합'이라며 거부했던 90년 3당합당이 밀실에서 이뤄진 정권 나눠먹기 거래의 산물이라면 2005년판 신3당합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당 등 여야 3당이 공론의 장에서 권력을 나누고 국정운영의 책임을 분담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도 이제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결단해야 할 때"라며 "그것은 스스로 지역주의를 만들고 3당합당으로 지역주의를 고착시킨 과거를 청산하는 뜻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5년에 어울리는 시대정신과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여대야소'를 만들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 "여소야대 구조로는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기 때문"

노 대통령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우리 정치의 여소야대 구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는 정상적인 정치구조가 아니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여소야대의 구조로 국정을 운영하는 사례가 없다"면서 "여소야대 구조로는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도 88년 이래 여러 차례 여소야대 정치의 실험을 해왔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역대 정권 모두 3당 합당이나 정계개편으로 여소야대의 구조를 해소해 버렸다"면서 "여소야대로는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제는 15년 전처럼 야당을 협박하고 매수하는 공작정치의 시대는 지나갔으므로 "우리 정치도 이제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정치행위를 통하여 정치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생각인 듯하다. 즉 연정 혹은 신3당합당은 '야합'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정치행위'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연정이라는 말이 생소할 수도 있으나 많은 나라에서 선거로만 정권을 잡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선거로 국회의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연정을 구성하여 정권을 잡는다"면서 "어떤 정당과 연정을 구성하는가에 따라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양당이 걸어온 역사와 노선이 서로 달라서 연정을 하기가 부자연스럽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저는 더 큰 목표와 가치를 위하여 그만한 차이는 뛰어 넘자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힌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대타협의 결단으로 극복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로 양당의 구성을 보면 그 내부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어서 실제 노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 "오히려 연정을 맺고 합동의총에서 정책토론을 하게 되면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당을 넘어 협력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소신과 노선에 따른 자유로운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 실제 노선차 그리 크지 않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실제 노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밝힌 부분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한나라당이 대연정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당장 9월 정기국회의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 등 산적한 개혁과제는 이제 물 건너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양당의 '합동의총'에서 합의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구도 해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이상론'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당장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당과 협의하지 않은 대통령 독단의 의견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 대통령이 제안한 연정의 방식은 세 가지다. ▲열린우리당과 소수야당의 전부나 일부가 참여하여 정권을 구성하는 것(소연정) ▲야당이 모두 손을 잡아 원내 과반수를 확보해 프랑스식 동거정부를 구성하는 것(동거정부)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포함한 제1야당과 손잡는 것(대연정)이 그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 가운데 소연정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이나 동거정부나 대연정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성사 가능성이 희박한 대연정을 제안한 것은 소연정으로는 지역구도를 해체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90년 3당합당 이후부터는 반독재 투쟁하던 심정으로 지역주의에 맞섰다"면서 "제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명분도 지역주의 극복이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은 저의 정치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면서 "정권을 내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고 그것은 역사에 대한 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권력은 부자 간에도 나누지 않는다"는 통설을 뒤엎는 '권력의 유연성'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제안에 대해 '초헌법적 발상 또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고 국민이 만들어 준 권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정치적 비판도 있다면서 둘 다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 근거로 프랑스의 경우도 헌법을 만들 때는 동거정부를 상상하지 않았지만 동거정부로 운용하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며 우리의 정치현실이 변화하여 과거와는 다른 융통성 있는 권력의 운용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은 부자 간에도 나누지 않는다"는 통설을 뒤엎는 이른바 '권력의 유연성'이다.

노 대통령은 이러한 제안을 "대통령으로서는 비정상적인 우리 정치제도와 변화하는 정치현실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거쳐 나온 결론"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 극복은 언젠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며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명령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같은 노 대통령의 '대(對)야당 중대 제안'은 일단 개인적 결단의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한 이후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고민을 한시도 놓은 적이 없다"면서 "지역구도 극복 방안을 끊임없이 물으며 정치를 해왔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노 대통령이 "여소야대 문제도 응급조치나 미봉책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이 주목을 끈다. 소연정보다는 대연정을 통해 "3당합당으로 헝클어진 정치질서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지역구도 해소한 사람으로 남기 바란다"

정책연합을 매개로 한 일종의 '신3당 합당'을 통해 90년 3당합당으로 고착화된 지역구도를 해체하고 여소야대 문제도 자연스레 해소하겠다는 복안이다. 90년 3당합당이 '호남의 정치적 고립화'를 낳은 지역포위전략이라면 2005년 신3당합당은 지역구도를 낳은 한나라당과의 정책연합을 통해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해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지역구도를 해소한 사람으로 남기를 바란다"면서 "노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대연정 제안을 받거나 아니면 제안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어쩌면 '분당'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연정을 제기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분란'에 못지 않은 열린우리당의 분란도 예상된다. 노 대통령의 제안은 대통령의 권력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권력도 한나라당에 이양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총리 지명 등 내각의 구성을 한나라당이 과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 문제는 한나라당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주제를 갖고 여야 공방을 하는 과정에서 '개혁국회'의 실종도 우려된다. 그러나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1%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성사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그것이 대통령의 뜻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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