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씨, 삼성은 예술가를 이렇게 취급합니까?"

'조각가 고 구본주 예술인대책위' 홍라희 삼성미술관장에게 항의서한 발송

등록 2005.08.01 15:11수정 2005.08.0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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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구본주대책위가 제작한 '삼성화재 비판' 배너.

구본주대책위가 제작한 '삼성화재 비판' 배너. ⓒ 구본주대책위

2003년 9월 전도유망한 청년조각가 구본주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어진 손해배상청구소송. 유가족이 접하게 된 소송 상대는 국내 굴지의 보험회사인 삼성화재. 1심 재판부는 망자의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인정하고, 정년을 65세로 산정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 항소했다.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인정할 수 없고, 정년도 60세로 낮춰야 하며, 피해자측 과실이 70%(재판부는 피해자 과실을 25% 미만으로 판결했다)"라는 게 삼성화재측이 밝힌 항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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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는 여러 차례의 메이저급 초대전과 개인전을 가진 예술가의 죽음에 대한 배상을 도시일용노임(무직자)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삼성화재의 태도에 분노했다. 곧이어 '조각가 고 구본주 소송해결을 위한 예술인 대책위원회(이하 구본주대책위)'가 구성됐고, 삼성화재를 규탄하는 1인 시위가 이어졌다. 이들에게 삼성화재와의 싸움은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미 지난 7월 4일 성명서를 내고, "예술가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기계 부속처럼 취급하고, 즉시 돈으로 환산되지 않으면 예술의 존재 가치를 인정치 않겠다는 것이냐"며 삼성화재를 향해 비판의 화살을 날린 구본주대책위는 8월 1일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삼성미술관 '리움' 홍라희 관장에게 이같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이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홍 관장에게 ▲이윤 창출의 논리로 예술의 가치를 백안시하는 삼성화재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가 보험회사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갈수록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노동자, 예술가의 정년을 60세로 규정하는 삼성화재의 주장은 온당한가 ▲계열사의 비문화적인 처사가 삼성의 말하는 문화적 사회공언이란 구호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를 묻고 있다.

'일류'임을 자처하는 기업의 문화마인드 들여다볼 수 있는 재판될 듯

a 지난 7월 11일 삼성화재 본관 앞에서 진행된 구본주대책위의 1인 시위.

지난 7월 11일 삼성화재 본관 앞에서 진행된 구본주대책위의 1인 시위. ⓒ 박수원


구본주대책위는 홍라희 관장에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성의 이중성을 직시하게 됐으며 예술인들의 존재방식을 돌아봤다"며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인류의 진정한 가족으로 자리잡고 후세에 기억되길 바란다면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창출에만 머물러선 안된다"고 충고했다.

구본주의 미술계 선배이자, 대책위에 참여해 7월 4일 1인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던 설치미술가 안성금씨는 "입으로는 문화기업을 말하는 삼성이 예술가를 이렇듯 홀대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허울 좋은 존중의 대상에 불과하고 결국엔 백수로 취급되는 예술가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예술인노동조합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한탄했다.


이에 덧붙여 안씨는 "지금까지는 서울(을지로 삼성화재 본사 앞)에서만 진행해오던 1인시위를 8월 1일부턴 부산과 울산, 수원과 전주 등 전국으로 확대시키고, 서명운동 등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삼성화재의 부당한 처사를 사람들에게 알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삼성화재는 보험판례의 중요성과 예술가의 가동연한(정년)의 선례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항소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번 구본주대책위와 삼성화재의 소송은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일류임을 자처하는 기업의 문화마인드'를 우회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안이라 재판 진행과정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대책위의 공개서한 발송과 1인시위 확대가 삼성화재측의 어떤 태도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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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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