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정말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서평] 류시화 시인이 엮은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등록 2005.08.06 02:16수정 2005.08.0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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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표지<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시집표지<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오래된 미래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서기관에서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에 이르기까지 장장 41세기에 걸친 유명 시인들의 시를 들려주고 있다.


시를 읽다가 가만히 고개들어 상념에 잠기게 하는 시어들이다. 곱씹으며 다시 읽고 싶은 시들을 모아놓았다. 얼마 전에 뜨거운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삼순이>에서 인용된 시라고도 한다. 시가 정말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힐링 포엠이라는 '치유의 시'를 주제로 한 시집을 엮은 것이라 한다.

때로는 장문의 글이나 소설등 보다는 짧은 잠언같은 시 한편이 더 큰 울림과 감동과 여운으로 오래 남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마음 속에서 더 많은 말을 걸어온다. 더 폭넓고 깊은 사유와 창조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또 때로는 영혼에 종소리가 울리게도 한다. 그래서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는 이렇게 말했다.

"시는 단어들이 아니라, 추위를 녹이는 불, 길 잃은 자를 안내하는 밧줄, 배고픈 자를 위한 빵이다."

이 시집에는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의 시 <초대>, 잘랄루딘 루미의 <여인숙>, 라빈드라니트 타고르의 <기도>, 젠드 아베스타의 <여섯가지 참회>, 작자 미상의 <신과의 인터뷰> 등 익숙하지 않은, 혹은 익숙한 이름의 많은 시인들의 시들이 담겨있다.

모든 시들이 깊은 사유와 깨달음을 주고 있는데 특히 작자 미상의 <신과의 인터뷰>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여기 실린 시들이 이 시와 닮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자 그럼, <신과의 인터뷰>를 읽으며 깊은 사유와 저 맑아오면서 한 줄기 깨달음의 빛을 따라가 볼까.


어느 날 나는 신과 인터뷰 하는 꿈을 꾸었다.
신이 말했다.
“그래,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구?”
내가 말했다.
“네, 시간이 있으시다면.”
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의 시간은 영원, 내게는 충분히 시간이 있다.”
“무슨 질문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가?”
내가 물었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신이 대답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는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신이 나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 다음 내가 겸허하게 말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자식들에게 그 밖에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 있음을 기억하기를, 언제나, 모든 방식으로”


어쩜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 깨닫는 것,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을까. '아~ 맞다...그렇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시어로 표현한 작자미상의 시인은 누구일까. 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나 <진정한 여행>, <여섯가지 참회>, <나이> 등 이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들이 이 시와 색깔이 비슷하다.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었지
세월 속에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보고 난 뒤
내 이마의 주름살들을 보고 난 뒤
난 그에게 대답했지
내 나이는 한 시간이라고
사실 난 아무것도 세지 않으니까
게다가 내가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는
그가 나에게 말했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설명해 주세요
그래서 난 말했지
어느 날 불시에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에게
입을 맞추었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입맞춤을
나의 날들이 너무도 많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만을 세지.
왜냐하면 그 순간이 정말로 나의 모든 삶이었으니까."


책 엮은이: 류시화

류시화
시인, 명상가.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바 있다. 1980~1982년까지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으나 1983~1990년에는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구도의 길을 떠났다. 이 기간 동안 명상서적 번역 작업을 했다. 이때 <성자가 된 청소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티벳 사자의 서>, <장자, 도를 말하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등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 서적 40여 권을 번역하였다.

1988년 '요가난다 명상센터' 등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러 명상센터를 체험하고, <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 다스와 만나게 된다. 1988년부터 열 차례에 걸쳐 인도를 여행하며,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 생활해왔다.

가타 명상센터,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지내며 네팔, 티벳, 스리랑카 여행집과 산문집을 냈다. 시집으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과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등이 있다.
이 시는 이븐 하짐이라는 시인의 시 <나이>전문이다. 시드니 레베트는 이런 시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매순간 /인간의 손으로 지어지지 않은 것들을 /유심히 바라보라/하나의 산, 하나의 별/구불거리는 강줄기/ 그 곳에서 지혜와 인내가 /너에게 찾아오리니/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그렇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우리에게 도래하지 않았으며 현재만이 지금 이 순간만이 내가 살아있는 시간이며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다가올 미래가 아름답고 소중하며 보람된 과거로 기억되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야한다.

5백년 전 북인도 바라나시 갠지스 강변에 살았던 시인 까비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죽기 전에 아무리 많은 책을 읽을 지라도 이 한 단어를 알지 못하면 그는 아직 진정한 인간이 아니다. 그 단어는 사랑이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이 시집의 제목으로 한 것처럼 결국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임을, 치유란 곧 사랑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서점에 들어서면서 나와 시선이 마주친 이 시집은 결국 내 손에 들어와 그 몇 줄의 시어들이 마음을 충만하게 하고 텅빈 충만으로 이끌었다.

유독 활자 욕심, 책 욕심이 많은 내가 이 짧은 시어들을 통해 두꺼운 장문의 산문보다 더 충일감을 느끼고, 영혼이 맑아지는 경험을 했다. 시집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사랑하며 살자,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덧붙이는 글 | 시집: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출판사:오래된 미래/6,500원/2005.3.30일

덧붙이는 글 시집: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출판사:오래된 미래/6,500원/2005.3.30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오래된미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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