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혼자 넘는 법. 성벽이든 담이든 돌과 돌 사이 틈에 손가락을 넣고 몸무게를 지탱할 능력이면 능히 오를 수 있다. 허나 이리 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아니하며 이런 높은 담의 경우 기와처마의 폭이 커 더 오르기가 어려우니 천상 둘 이상의 사람이 오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일 경우, 다섯 사람일 경우가 각각 다르니 조련관들의 시연을 보고 잘 배우도록 하라”
“예.”
조련병들의 대답이 쩌렁쩌렁 했다.
“각별히 유념해야 하느니 항상 발 아래 마름쇠가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며 먼저 땅에 내려선 자는 사주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지니라.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흑호대 조련병들의 대답을 뒤로하고 조금산이가 돌아섰다. 허리춤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중대장급 이상의 지휘관에게만 지급되는 것이었으나 흑호대만큼은 소대장급 장교에게도 보급이 되어 있었다.
“회의가 유시 말, 지금이 유시 초… 다섯 시 삼십 분, 아니 십칠 시 삼십 분…… 헤이~참 나 이거 원 헛갈려서….”
조금산이가 시계를 넣고는 옆 조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파!”
구릉 너머 비명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꽈웅]
벼락이 어딜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구릉 너머에서 부연 먼지가 일고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걸어갔다. 조금산이에겐 너무도 익숙한 일상이었다.
“도화선을 이용할 때에는 길이 가늠을 잘 해야 하느니라. 발화통처럼 뇌홍을 때려 발화하도록 되어 있으나 원하는 시간에 맞게 도화선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아까 저 나무처럼 대들보의 아래, 성곽의 아랫기단에 정확히 장치해야 할 것이며 도화선의 길이 조절을 잘 해 너무 늦거나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 다음 두 사람이 나와서 거행하라.”
흑호대 이덕칠 소대장이 폭파 조련 중이었다.
“덕칠이 성님, 고생이 많소.”
“응, 조 소대장 왔는가?”
덕칠이는 오장에서 대총이 되어 소대장이란 직함을 얻은 사람이었지만 조금산이는 평대원에서 소대장이 된 처지라 조금산이가 깍듯이 형님대접을 해 주었고 덕칠이도 그런 조금산이를 높여주었다. 그런데 높임의 의미로 항상 성과 직책을 붙여 불러주기는 하였으나 사실 성이 없는 조금산이 처지에선 가면을 쓴 것 같아 차라리 이름을 부르니만 못했다.
말하는 사이 솔 숲으로 달려나간 조련병 둘이 폭약을 삼끈으로 소나무 밑둥에 설치하고 도화선의 길이를 조절하여 뇌관을 건 후 점화했다.
“발파!”
둘이 똑같이 고함을 지르며 잽싸게 출발점으로 돌아와 엎드렸다.
[꽈광, 꽝]
굉음과 함께 두 손으로 쥐어도 다 차지 않을 굵은 소나무 둥치가 끊어져 나갔다. 다시 푸석한 먼지가 숲을 감쌌다.
“좋아 오늘 조련은 여기까지.”
“부대 기착! 충성!”
“충성”
조련관이 대표로 경례를 올리고 십여명의 조련병들과 함께 뛰어서 이동했다.
“난 뛰고 넘고 찌르는 건 하겠는데, 저 빌어먹을 폭약과는 왜 이리 안 친한지….”
사라지는 조련병들을 보며 조금산이가 말했다.
“그 정도면 발화통은 어찌 쓰누?”
덕칠이가 농처럼 비꼬았다.
“기실 발화통을 차고 있으면 영판 허리에서 터져버릴 것 같은 무섬증이 인다니까요.”
“그래도 지난 번 해적선 잡을 때 보니까 발화통이며, 총포며 잘만 쓰더만?”
“그때야 눈 앞에 적이 있으니 정신이 없지요. 끝나고 나면 아찔할 뿐이지요 뭐.”
“예끼, 그러고서도 조련병 앞에서 있는 자세는 다 잡지?”
“헤헤헤….”
“그나저나 어서 가자 우리 점백이 성님, 아니 우리 중대장님 기다리시겠다.”
“예.”
덕칠이와 조금산이가 막사 쪽으로 총총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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