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과 학문은 서로 엉켜 있다"

[서평]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

등록 2005.08.11 11:17수정 2005.08.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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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따로 세상 따로 인지, 책과 세상이 서로 엉켜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내 삶과 책은 서로 엉켜있다. 난 책에서 읽은 것을 세상에서 확인하고 세상에서 겪은 것을 책에서 정리한다. 책에서 읽고 감동한 바를 가슴에 새겨두고 그것을 다시 되새기곤 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 모두가 이런 과정을 모두 겪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과 세상까지는 아니어도 책과 사람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학문은, 철학은 일상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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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언덕

스스로를 '시니컬'한 사람이라 말하는 철학박사의 잡문집을 읽는다. 16꼭지의 다소 긴 듯한 글들은 결코 지루하다거나 고루하지 않고 냉철한 이성으로 깨어 있다. 또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한편을 신랄하게 꼬집어 주는 글들은 진보적이며 통쾌하기까지 하다.

사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 곧 그것 아닌가. 그런데 왠지 철학은 어렵다. 학문의 한 분야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결론까지 미리 내려버리고 나니 철학은, 현실을 살아가는 일상인에게는 어떤 개념이나 정의와 함께 그야말로 학문적 가치일 뿐이다. 그냥 칸트, 소크라테스와 함께 한편에 올려 두어도 아무런 탈이 없을 것인데 일부 사람들(철학자, 학자)은 그걸 ‘논’하자고 일부러 들먹인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써먹을 것도 절대로 아닌데… 그러나 새삼스럽게 철학은 내 삶의 모습임을 이 책을 통하여 돌아보게 되었다.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한때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도 있는 철학자 강유원의 삶과 학문, 철학의 연결 고리는 이렇다.

철학은 일상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다.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의식이 있어야만 철학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이라는 말에 주의를 둘 필요가 있다. 현실은 늘 우리 앞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사실 그대로의 모습으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왜곡과 거짓으로 쌓여있다. 따라서 현실을 본다는 것은 그러한 왜곡과 거짓을 벗겨 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철학적 사유의 기본적인 출발점인 의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본문 ‘철학의 현실적 쓸모’중에서>

사실 욕심이라면 이 책의 각 주제의 글 중 밑줄 그은 곳 한 꼭지씩이라도 슬쩍 보여주면서, 학문을 삶의 한 방편으로 옹골지게 껴안기를 원하는 저자의 이성과 사고를 함께 나누자고 하고 싶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을 단지 사유하고 담론하는 것으로가 아닌 '몸으로 엉켜들기'를, '현실에서 그 체험'을 원하는 저자의 냉철한 지성을 같이 나누자고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야기해보자. 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머리로 아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안다는 것의 전부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사실 '할 줄 안다'는 것까지 포함한다. 머리로 익힌 것을 몸으로 해봐서 할 줄 아는 단계로까지 가야 어느 정도 앎의 완성에 접근해간 것이다. 이걸 흔히 '지행합일'. 또는 지행일치'라고 한다.<본문 '안다는 것'>

거리낌 없이 날카로운 글들에서 내가 얻는 것은...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새로운 세계로 이어지는 고리의 글에 밑줄을 긋는다. 또한 읽어 나가다가 깊이 공감하는 글이 묻히거나 바래지지 않기를 바라며 밑줄을 긋기도 하는데, 이 책 역시 밑줄을 많이 그었다.

모순의 박정희 전기 그 출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글에도 밑줄을 그었다. 하기야 그렇지. 전기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사후에 그의 업적을 기려, 혹은 그의 정신을 추앙하며' 가 당연한데 국민 학교 4학년 때 세계 위인전 시리즈 전기로 읽은 사람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드디어 죽다니… 우리가 살아 온 세월의 한 갈래다.

…박정희 전기라고? 딱 잘라 말해 미친 짓이다. 박정희가 죽은 게 나 고등학교 3학년 때인데 내가 국민 학교 4학년 때 벌써 박정희 전기를 읽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짓이다. 스스로 쓴 회고록이 아닌 한, 전기는 전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야 쓰여 지는 것이다. 그런데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의 전기가 쓰여 진다는 것은 어이없고, 그걸 쓴 사람도 미쳤고 출판사도 미쳤다…"<책 따로 세상 따로 중에서>

사실 이 잡문집에서 만나는 저자의 비판은 거리낌 없고 날카롭다. 사회의 비주류, 즉 약자인 나에게는 통쾌한 대리만족이다. 누가 나서서 사회의 비주류인 나를 위하여 잘나가는 주류들을 이렇게 거침없이 때려 줄 수 있음 이련가. 통쾌한 칼날을 따라 가다가 아차~! 그러나 시니컬한 철학자는 위험 수치를 결코 넘지 않고서도 다시 또 다른 주류들을 향하여 거리낌 없다.

대학과 매스 미디어에 공생의 관계로 혹은 빌붙어 사는 지식인들을 향한 비판에도 밑줄을 그었다. 꽤나 유명한 어느 철학자에 대한 공자론 운운 글에도 밑줄을 그었다. 애초부터 팍팍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공자운운이었지만, 확실한 학문 체계가 없는 나로서는 누군가에게 단 한번이라도 써먹기 위하여 모방의 밑줄을 그었다.

'맥도날드로 대변되는 패스트푸드. '패스트푸드의 전체주의'라는 주제의 글은 몇 번을 읽어도 생각을 갈래갈래 잇고 있다. 우리 스스로 편하고자 만들어 낸 패스트푸드는 이젠 인간을 패스트푸드 화 시키고 있다. 공존하는 나 역시 좋든 싫든 그 영향에서 아주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가급이면 덜 스며들어야겠지. 나의 관심 분야를 어느 정도는 고리 짓고 있는 주제여서 앞으로 좀 더 유용하게 펼쳐 보고 참고삼으면 좋을 글임은 분명하다. 저자는 약간 다른 방향의 사유를 내비치지만 내 나름의 방식으로 흡수하여 보는 글이다.

몸으로 공부하기, 강유원을 알려면 이 잡문집을 읽어라.

2002년까지는 책읽기만이 내 인생의 알리바이였으나 2005년에는 글쓰기가 그것에 덧붙여졌다. 예나 지금이나 책읽기와 글쓰기는 몸으로 하는 것이고, 그 목적은 위기지학이라 여긴다.

그간 저자가 시중에 내보였던 서평집 '책'이나 '서양근대문명의 기반' '책과 세계'등이 일정의 형식을 따라야 했다면 이 잡문집은 저자 강유원의 형식을 벗어 던진 한층 더 자유로운 사유를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다. 이 잡문집은 강유원의 ‘책과 세상’에 대한 자유로운 사유와 통찰의 글들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잡문’이라 정하여 적은 글들이다.

저자가 말하는 지식인으로서 설 곳은 두 군데 '체제 안'과 '체제 밖'.이다. 저자는 체제 안에 흡수되기를 거부한다. 이 책은 ‘체제 밖‘에서 꿋꿋하게 걸어가는 저자의 삶과 학문, 문화 사회 등에 관한 짧지만 깊이 있는 글들을 담고 있다. 그 작은 형식마저 벗어던진 자유로운 사유를 통하여 그간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글의 근원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란 생각이다.

책을 펼쳐 속살을 보기 전에 눈길을 끌었던 글을 덧붙인다.

누가 요즘 무슨 책 읽느냐고 물어 봤을 때,'한글 엑셀 따라하기 읽는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 책을 우습게 봐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대개 그런 걸 책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사람들이 책으로 여기는 것들을 읽지 않아도 세상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세상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은 바로 세상과 책이 별 관계가 없다는 것에 대한 가장 틀림없는 증거이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볼 때 책을 읽지 않고 살았던 시기가 훨씬 길었으며, 그런 사람의 숫자도 훨씬 많았다. 그러니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고. 알찬 삶을 살 수 있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 괜히 주눅들 필요는 없다.

그러면 책은 왜 읽어야만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반드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 이 물음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뒤표지 글>

덧붙이는 글 | <몸으로 하는 공부>강유원 잡문집/여름언덕/9,000

강유원...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헤겔을 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부하길 좋아하지만 줄곧 공부와 돈벌이를 따로 분리해서 살아가고 있다. 씨네21에 '회사원 철학박사'라는 직함으로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책>(야간비행, 2003), <서양문명의 기반>(미토, 2003), <책과 세계>(살림, 2004),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지성사로 읽는 예술>(공저, 2004, 미토) 등이 있다.<알라딘>

덧붙이는 글 <몸으로 하는 공부>강유원 잡문집/여름언덕/9,000

강유원...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헤겔을 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부하길 좋아하지만 줄곧 공부와 돈벌이를 따로 분리해서 살아가고 있다. 씨네21에 '회사원 철학박사'라는 직함으로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책>(야간비행, 2003), <서양문명의 기반>(미토, 2003), <책과 세계>(살림, 2004),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지성사로 읽는 예술>(공저, 2004, 미토) 등이 있다.<알라딘>

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여름언덕,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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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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