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노태우가 날 도청하다니..."

[박철언 회고록 ④] 5·6공 도·감청 횡행 증언

등록 2005.08.12 19:39수정 2005.08.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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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철언 전 의원의 회고록 곳곳에서 5·6공화국에서 도·감청이 횡행했던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6공화국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이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을 도청했음을 나타내는 부분도 있다.

박철언 전 의원의 회고록 곳곳에서 5·6공화국에서 도·감청이 횡행했던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6공화국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이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을 도청했음을 나타내는 부분도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권우성


"82년 1월 21일 아침 서재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독대했다. 나에게 방송국내 부정비리가 만연해 있다면서 KBS PD들이 탤런트에게 돈과 몸을 요구했으며 그 피해자가 400명 정도이고 MBC는 100명 정도라고 했다."

5·6공화국과 3김시대의 정치비사를 다룬 박철언 전 위원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의 한 대목이다. 박 전 위원은 '격동의 1982년' 코너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이같은 지시로 방송계 비리 사건을 수사하게 된 사실을 공개했다.

전 전 대통령은 "PD들의 비리와 부조리를 조용히 수술해야 한다"면서 "방송국 사장이나 고위층들이 PD들에게 특정 탤런트 출연지시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데 이것도 검찰총장에게 조사하도록 지시하라"고 박 전 의원에게 지시했다.

전두환 "방송계 비리 정보 안기부 국장에게 있다"

더욱 눈에 띄는 대화는 다음에 나온다. 전 전 대통령은 방송계 비리의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 "안기부의 김근수 국장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박 전 의원은 적시했다. 이어 전 전 대통령은 "이광표 문공부 장관으로부터도 자료입수가 가능하니 방송국 관계 보고자료를 입수하여 검찰총장에게 주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전 전 대통령은 "PD들이 퇴근할 때 임의동행 형식으로 데려다가 은밀하게 수사하고 회유·협조를 요구하여 협조자에 대해서는 배려하라면서, '이것 하나 제대로 수사 못하면 검찰총장 자격 없다, 물의 일으키지 말고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하라'고 했다"고 박 전 의원이 밝혔다.

박 전 의원은 "방송계의 특수성과 오랜 관행을 예로 들면서 이번 기회에 일대 경종은 울리되 너무 과격하게 처리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말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정치근 검찰총장의 지시가 떨어지고 열흘 만인 2월 1일 방송국 부조리 내사현황을 박 전 의원에게 알려왔다. 방송국 이사 등 수뇌간부에 대한 확대내사는 신중을 기하면서 PD 7명을 연행, 조사하고 일단은 방면했다는 내용이다. 또 내사로 파악한 비위 관련자는 KBS 25명, MBC 20명, CBS 1명 등 모두 46명이라는 것.

박 전 의원은 사흘 뒤(2월 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독대하고 방송국 비리수사 결과를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이 직접 KBS, MBC 사장을 따로 불러서 수사자료를 건네주고 방송국 자체적으로 징계하도록 조치하라'고 했다"며 "사장들을 불러 얘기할 때 '이번 수사결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사장 본인들도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암시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대통령은 "만에 하나 검찰이 내사했다는 보도가 나가거나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징계는) 사장들 책임 아래 조치하는 것으로 지시하라"고 했다는 게 박 전 의원의 회고이다.

이는 당시 안기부와 문화공보부가 방송계, 연예계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정보수집 활동을 펼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보수집 대상도 방송사 사장과 고위층, 일선 PD와 탤런트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만약 박 전 의원 주장이 사실이라면, 안기부와 문공부의 이같은 정보가 대통령으로 직접 보고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전화를 도청하고..."

또 당시 정권은 비리정보를 언론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검찰 내사와 비공개 수사로 언론인을 압박했고, 방송사장들에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본인들도 관련 있음'을 알려주라는 지시는 협박에 가깝다. '땡전뉴스'로 상징되는 5공화국의 방송통제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그 이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 박철언 전 의원의 회고록 곳곳에서 5·6공화국에서 도·감청이 횡행했던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전직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비서관 등을 상대로 도·감청과 사찰활동이 상시로 이뤄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89년 4월 20일 노태우 대통령은 전화로 "최운지 의원이 '차기 대통령은 박철언이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다니고 있다는데 아는가, 자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주의시키라"고 박 전 의원에게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의원은 "얼마 전 내가 안기부의 박세직 부장과 1차장, 기조실장에게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전화를 감청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일들이 맞물려 대통령께 엉뚱한 정보보고가 올라간 듯했다"고 밝혔다. 당시 박 전 의원은 수석급인 청와대 정책보좌관이었다.

5공 시절 청와대 정무제1수석 비서관과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을 지낸 허문도씨는 89년 5월 8일 박 전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전임 각하께서는 연말연시, 생일도 챙겨주지 않고 전화를 도청하고 백담사 매표소에 안기부 요원을 상주시켜 근접 감시하면서, 백담사를 방문했던 인사들을 문책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지나치다고 분개하고 계십니다"고 전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94년 10월 7일, 당시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자신을 찾아온 박 전 의원에게도 도청에 대한 불만을 직접 털어놓는다.

이날 전 전 대통령은 "(도청과 동향감시에 대해) 내가 노태우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를 제기하니, 노태우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연희동을) 찾아다니니 (나를) 보호하느라 도청하고 차단했다'고 그랬는데 그럴 수 있는가?"라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박 전 의원은 전했다.

이같은 도청사실에 대해 박 전 의원은 12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회고록에서도 약간 언급했는데, 도청이 있어서는 안 되고, 철저히 진상이 밝혀져야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생긴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잘못 끼어 들었다가는 괜히 앉아서 벼락맞는 꼴이 되기 때문에 언급하고 싶지 않다"면서 "그때도 도청이 있지 않았나 짐작하지만 워낙 보안을 요하는 일이고 나의 소관이 아니라 확인할 수 없다"고 비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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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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