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세게 재수없는 대청도 농어

우연히 찾아간 환상의 섬 대청도 여행기

등록 2005.08.15 10:34수정 2005.08.15 15:44
0
원고료로 응원
앗? 낚싯대 끝이 파르르 떨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걸렸겠지.”
낚싯대를 힘차게 챘다. 순간 이번에도 아니구나. 낚싯대에서 느껴져야 할 묵직한 감각이 없었다. 실망 또 실망. 낚시 바늘이 보였다가 다시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낚싯대 끝이 왜 저렇게 휘지? 에라 모르겠다.
다시 낚싯대를 챘다. 허연 물고기 한 마리가 낚였다. 희열이 순간적으로 엄습했다. 저 멀리 마누라가 보였다.
“마누라, 여보, 여보얏! 드디어 잡았다. 보이지?”


a 억세게 재수없는 농어를 잡은 현장

억세게 재수없는 농어를 잡은 현장 ⓒ 신병철



끌어 올려놓은 놈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농어였다. 40cm 가량 될 듯했다. 오후 내내 대청도 바닷가에 드리워 놓은 낚싯대에서 두 번째로 잡힌 놈이었다. 이미 첫 번째 놀래미 놈은 회쳐먹은 지 제법 지났기 때문에 농어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나에게는 더 없는 행운의 농어였지만, 농어로서는 참으로 운이 없는 사고였다. 농어는 공격성이 강하단다. 빨리 움직이는 먹이를 더 빨리 쫓아가 낚아채는 습성이 있단다. 그런 농어가 놀래미나 잡겠다고 드리운 내 낚싯대에 걸린 것이다.

꼼꼼히 농어가 잡힌 과정을 살펴보자.
미리 미끼를 준비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을 때, 낚시꾼 한 사람이 미끼 미꾸라지를 충분히 가지고 왔다. 몇 마리 얻어 바늘에 끼워 적당한 곳에 던져놓았다. 놀래미가 입질한 줄 알고 낚싯대를 잡아챘다.

그 넓은 서해안 중에서도 대청도 농여해수욕장, 그 중에서도 북쪽 한 귀퉁이를 마침 다니던 농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움직이는 먹이를 낚아챘다. 그 순간 이게 뭐야 의아해 하면서 낚싯대를 한번 당겨보았다. 농어는 낚싯바늘에 입이 걸려 뭍으로 끌려 나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운 없는 농어였고, 농어는 그렇게 일생을 마쳤다. 농어에게는 사고였다. 잡힐 때까지 하나의 과정도 어긋났더라면 농어는 절대 잡히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도 서해안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모든 사고는 이렇게 너무나 우연하게 생기는 법이다. 이후 놀래미 새끼조차 한 마리 잡지 못한 우리는 농어를 회쳐서 소주 한 병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그 농어 맛이란!


a 대청도 농여 해수욕장, 모래사장이 아름답다. 한쪽 끝에는 갯바위가 처음에는 듬성듬성 있고, 동굴도 여러개 있다.

대청도 농여 해수욕장, 모래사장이 아름답다. 한쪽 끝에는 갯바위가 처음에는 듬성듬성 있고, 동굴도 여러개 있다. ⓒ 신병철

대청도 농여해수욕장은 상당히 넓다. 모래도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좌우 끝에는 바위가 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갔다. 동굴도 있었다. 가져간 햇볕가리개가 필요 없었다. 반대편 갯바위에 몇 사람만 있고 우리 쪽에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다. 오후 2시쯤 되었는데, 썰물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바다로 힘껏 낚시를 던져 넣었다. 바위에 낚싯대를 걸쳤다. 하염없이 기다린다.

아내는 동굴에서 나와 모래사장을 어슬렁거린다. 물속에도 들어갔다. 보이지 않는다. 걱정이 된다. 이내 재미없는지 바위에 붙어 조개를 잡기 시작한다. 소식 없는 낚싯대 끝에 실망하고는 나도 바위를 원숭이처럼 타고 다니며 조개를 잡는다. 작은 소라가 목표였다. 소라가 아니라 ‘갱이’라고 했다. 갱이보다 조금 똥똥한 놈도 있었는데, ‘보리갱이’란다. 보리갱이는 매운 맛이 난다. 매운 조개가 다 있다니!


a 대청도 모래언덕, 사막인가? 바람이 옮겨놓았단다. 지금은 십수년전에 심은 소나무때문에 모래가 줄어들고 있단다.

대청도 모래언덕, 사막인가? 바람이 옮겨놓았단다. 지금은 십수년전에 심은 소나무때문에 모래가 줄어들고 있단다. ⓒ 신병철



대청도에는 구경거리가 몇 있다. 사막도 아닌데 모래 언덕이 있다. 겨울바람이 모래를 산 아래까지 운반해놓아 생긴 것이란다. 십수 년 전에 소나무를 심은 뒤로 모래는 자꾸만 줄어든단다. 그때는 귀찮은 모래일 뿐이었기 때문에 없애버리고자 했는데, 지금은 관광자원으로 소중해졌단다. 자연이 만드는 현상을 인공으로 고치는 것에는 무엇이든지 문제가 생기는 법인가 보다. 모래가 만드는 곡선으로 유명한 중국의 명사산 같았다. 여인의 허리 곡선만큼 부드럽다.

대청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삼각산이다. 해발 433m로 인천 문학산 다음으로 서해안에서 높은 산이란다. 안개인지 해무인지 하얗게 끼어 꼭대기는 보이지 않는다. 삼각산 기슭에서 내려다보는 사탄동 해변의 풍광이 깔끔하다. 바다와 바위로 둘러싸인 해변으로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a 삼각산 기슭에서 내려다본 사탄동 해변, 해무가 앞을 가리지만 저 멀리 해변이 어촌 동네와 어우려져 아름답다.

삼각산 기슭에서 내려다본 사탄동 해변, 해무가 앞을 가리지만 저 멀리 해변이 어촌 동네와 어우려져 아름답다. ⓒ 신병철



대청도 남쪽 지역은 전체가 바다와 바위가 만드는 해변들로 이뤄져있다. 처음에는 암도라고 했단다. 그러다 언제부터 푸른 나무가 가득 찬 섬이라 해서 청도라고 불렀단다. 원나라 왕족이 귀양 와서 지내다가 해배되어 순제가 되었단다.

차는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정자가 나온다. 대청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바닷바람과 정자와 한눈에 들어오는 대청도 풍광이라. 음악이 없을 수 없다. ‘타령’이 좋을까 ‘세령산’이 어울릴까? 아니다. 이런 자연 조건은 조금의 애조가 필요하다. ‘계면가락도드리’로 결정했다. 단소를 꺼내 바람을 일으킨다. 웬일인지 평소와는 달리 소리조차 맑기 짝이 없다.

a 정자에서 내려다본 대청도 남쪽 해변, 바위와 바다와 바위위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섬풍경의 절정을 만들고 있다.

정자에서 내려다본 대청도 남쪽 해변, 바위와 바다와 바위위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섬풍경의 절정을 만들고 있다. ⓒ 신병철



다음에는 ‘독바위 해변’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홀로 된 바위는 보이지 않는다. 해변은 크고 작은 돌로 가득 차 있다. 닳고 닳아 둥글둥글한 돌이다. 알에서 막 깬 새 새끼들의 궁둥이 같이 불그죽죽한 돌이 눈에 띈다. 하나 챙겨 봐? 어깨를 짓누를 배낭 무게가 고개를 젓는다. 깊은 바다가 너무나 가까이 있다. 낚시터로 안성맞춤이다.

하루 전에 대청도에 도착하여 운 좋게도 낚시꾼들 트럭을 얻어 타고 독바위해변에서 낚시를 하였다. 그러나 모두가 허탕이었다. 겨우 우럭새끼 한 마리 낚았다. 동네사람들은 우럭과는 다른 종으로 ‘감팽이’라고 했다. 음력 8일과 23일 부근에는 낚시가 안 된단다.

조금’이라 해서 조수간만의 차이가 가장 적은 때인데, 이때에는 물고기들의 활동이 거의 없단다. 낚시가 안 되면 그때에는 조개잡이다. 성게도 바위틈에 보였다. 세상에! 큰 성게를 잡아 알을 빼먹을 수가 다 있다니. 한 병 가져간 소주가 자꾸만 줄어들고 있었다.

a 백령도 아래 대청도 그 아래 소청도, 서해5도 중 가장 북쪽의 3개 섬이다.

백령도 아래 대청도 그 아래 소청도, 서해5도 중 가장 북쪽의 3개 섬이다. ⓒ 신병철



대청도는 예상에 없었다. 백령도를 구경한 우리는 내침 김에 대청도도 가보기로 했다. 12시 10분 백령도에서 ‘아일랜드호’를 타고 20분 걸렸다. 마침 영화 ‘아일랜드’보았기에 배를 타는 기분이 얄궂었다. 그러나 대청도는 영화 아일랜드에서 복제인간들이 가고 싶은 이상향이 맞았다. 내년 여름에는 충분히 준비해서 우리나라의 ‘아일랜드’ 대청도로 또 갈 것이다. 조금기간이 아니라 사리기간을 맞춰서 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