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토지' 촬영 세트장에서 소원을 빈 쪽지를 새끼줄에 매달고 있는 아내.양허용
아무튼 그렇게 해서 시작한 공부가 이제 끝을 맺을 때가 된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난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시간이 짧은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 때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내는 아직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지금도 그 때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부러움만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겠지만 그 때 용기를 내어 공부를 시작한 덕분에 이제 학사모를 쓰고 당당하게 졸업식장에 설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아내가 졸업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3일이라는 다소 긴 시간이라 아내가 졸업여행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을 때 그 오랜 기간 동안 잘 참고 견뎌내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잘 다녀오라며 따뜻한 배웅을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비록 황금 같은 연휴 동안 여행도 못 가고 집에만 콕 들어박혀 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신세가 되겠지만 그래도 동기들과 어울려 마음 홀가분하게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라고 격려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못나게도 그 무엇도 해주질 못했습니다. 아이들을 봐주는 일은 회사 때문에 어렵게 되었고 마침 얼마 전에 사소한 일로 다투고 냉전 중이었던 관계로 잘 다녀오라는 말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행가서 쓰라며 손에 쥐어주고 싶은 약간의 돈도 건네주지 못했고요. 그냥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는 아내의 모습을 모른 척 외면하고 말 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3년 반이라는 긴 시간을 어렵게 참고 견뎌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졸업여행을 떠나는 아내에게 참 옹졸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데 요즘 말로 ‘그까이꺼’ 먼저 손 내밀고 잘 다녀오라고 따뜻한 한 마디 해줄 수도 있었는데 끝내 그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어찌 그리도 바보같이 굴었는지….
소중한 사람은 곁에 없을 때 더욱 더 그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법이죠. 아이들과 함께 아내가 떠난 집안은 쓸쓸하기만 합니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도 달려 나와 반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집에 들어가기가 싫습니다. 혼자 먹는 밥이 얼마나 맛없는지는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죠? 밥맛이 없으니 회사에서 먹거나 아침은 거르고 출근하게 되더군요. 아이들도 아내도 없으니 괜히 처량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내는 오늘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계획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그리운 아내와 아이들이 절 맞아주겠죠. 그렇지만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탓에 오늘 저녁에도 아내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내가 그것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축하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랐다는 것 말입니다.
“여보, 그 동안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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