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패션 70s>SBS
이러한 점들을 충족시키는 드라마라면 광복60년 대기획답고 시청자들을 만족 시킬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패션 70s>에서 시청자가 주로 볼 수 있는 것은 김민정과 이요원의 뒤바뀐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도 사용하는 출생과 성장의 비밀 혹은 그것의 헛갈림에 관한 틀거리인 것이다.
고준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강희,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밀려난 더미,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회장과 더미,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갈등과 사랑은 뒤바뀐 운명을 극대화하는 부대장치다. 뒤바뀐 운명이 언제, 어떻게 밝혀지고 바로잡혀지는가가 관건이었다.
자신의 자리도 아닌 곳에서 수십 년 동안 신분 상승의 욕망에 충실했던 강희(김민정 분)의 집착과 번민은 집요하게 드러났다. <아일랜드>의 김민정과는 다른 분위기와 코드 덕에 고생도 했을 법하다.
그 고생은 시청자에게도 이어진다. 정치 외교, 패션의 흐름과 철학, 역사철학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정치 외교 묘사를 남북관계를 둘러싼 김동영(주진모 분)과 장빈(천정명)의 첩보전 수행에서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간단화라는 측면에서 가벼운 만화의 플롯이었다.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사건의 설정이나 전개, 갈등과 해소의 과정은 약하기만 해 정치외교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오히려 명목상 끼어넣은 듯이 보인다.
초반부의 한국 전쟁 묘사의 박진감을 살리지도 못했다. 70년대의 급박하고, 복잡다단했던 정치사회 구조를 한없이 단순화했다. 낭만적인 순정 만화의 첩보전, 정치 외교의 묘사인 것이다. 이 때문에 "패션에서 자칫 소외될 수 있는 남성 시청자들에게는 킹메이커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 굵은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애초의 기획 의도가 아깝다. 이런 기획 의도를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남성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선이 굵은 면을 살리지 못해 김동명의 캐릭터가 아깝기도 하다.
무엇보다 문제는 <패션 70s>에는 패션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전적으로 패션은 대개 의복 또는 복식의 유행을 가리킨다. 어느 특정 감각이나 스타일의 의복 또는 복식이 집단적으로 일정한 기간에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패션 70s>라면 한 시대의 혹은 한국 현대사의 한부분에서 패션의 흐름을 보여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도 광복 60년 대기획이라면 사회적인 의미에서 옷과 사회, 역사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등장한 것은 패션도 아니고, 사회적인 의미나 철학도 아니었다. 왜 광복60년 대기획인지 갈수록 퇴색했다. 처음에 한국의 일상 의복 문화를 잘 그려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대기획인 점을 생각해 현대사의 패션 흐름을 짚어주는 것을 기대했다. 그것은 이미 기획 의도에서 밝힌 점이기도 하다. 패션에 대한 철학이나 의미를 음미할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했다.
그러나 신분의 비밀만이 화면을 채웠다. 가족주의와 혈육에 대한 한국인의 변함없는 집착이 주류를 이루었다. 장봉실과 장빈의 관계 또한 이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패션은 더미와 강희가 앙상블에서 경쟁하는 수단으로 등장할 뿐, 사람들, 시대의 패션은 등장하지 않는다. 더구나 철저하게 앙상블이라는 고립의 공간에 패션은 갇혀 있고, 신분의 비밀 구도에 가려져 있다. 의복 철학이나 패션, 디자인에 대한 구체적인 전문적인 내용이나 성찰은 없다. 앙상블의 작품과 기성복의 차이가 무엇인지나 겨우 등장한다.
의상과 패션의 철학이나 성찰의 멘토이어야 할 장봉실(이혜영 분)은 뛰어난 디자이너라는 점만 강조될 뿐이다. 극적인 상황이나 전개,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는 호소력을 지니지 못한다. 의복에 관한 구체적인 성찰과 감성적인 호소력은 더미와 강희의 교육 과정에서 드러나야 했지만 그들은 밑도 끝도 없이 뛰어난 학생으로만 등장했다. 아무나 입지 못하는 옷을 만든다는 것이 앙상블의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이미 시청자들의 눈은 매우 높아졌다. 음식 하나에 삶과 세상의 지혜와 철학이 들어있었던 <대장금>의 여파인지 모른다. 이것은 더미가 뛰어난 대중적 의복 디자이너 감각을 가지고 성공한다는 단순한 전개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기획의도에서 밝힌 치열한 가능성의 시대라기보다는 밑도 끝도 없는 낭만적 성공 스케치로 보인다. 그들의 성공에 치열한 고민이나 열정, 그에 따른 개연성 있는 의상 작품 창작과 호소력 있는 컨셉 형성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상류층을 향한 신분 상승 욕구와 그것을 둘러싼 뒤틀림과 갈등. 이것이 '광복 60년 대기획'이라면 참 아깝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gonews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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