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생 40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 연기자로 발돋움한 변희봉(왼쪽)과 임현식오마이뉴스 권우성/나영준
"에헤, 그 노인네 거 참!"
영화 <살인의 추억>, 살인 현장인 논둑에서 자빠지는 변희봉에게 던진 송강호의 한마디. 그 장면에서 모두 킥킥거렸겠지만 그 한 장면을 위해 그가 100번 이상 구른 사실을 관객들은 알고 있을까?
"줄을 서시오~", "장금아~이"라고 외치며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을 보며 시청자들은 방바닥을 구르지만 "컷" 사인이 떨어진 후,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고단함은 온전히 연기자 임현식의 몫이다.
2005년. 수많은 이들이 드라마의 명대사를 읊어대고 주인공들의 옷차림을 따라하거나 자발적인 팬클럽을 만들어 드라마가 남긴 잔상에 행복해 한다. 하지만 휴대전화 벨소리로 드라마 주제곡이 울려대고, 주인공이 먹던 음식을 음미하며 기뻐하는 그 모습에서 70~80년대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함께 웃고 슬퍼하던 풍경을 떠올리긴 힘들다.
만년 조역에서 개성만점의 영화배우로 다시 태어난 변희봉(64). 1천여 편의 크고 작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유독 '순돌 아빠'로 기억되는 임현식(60). 강산이 여러 번 바뀔 동안 수많은 작품 속에서 감초 역할을 도맡아 온 두 사람이 기억하고 느끼는 드라마의 변화상은 어떨까.
임현식씨를 만난 건 지난 17일 KBS 방송국에서다. 변희봉씨는 다음날인 18일 <오마이뉴스> 스튜디오를 찾았다. 요즘 한창 드라마와 영화 촬영 일정에 쫓기는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모으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빛나는 조연'이라는 공통분모 덕일까? 두 사람의 인터뷰를 가상 대담 형식으로 엮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의 공통분모는 '주연 뺨치는 조연'
- 두 분 모두 오래 전에 드라마를 시작하고 많은 작품을 겪었겠다.
임현식 : "1969년 MBC 공채 탤런트 1기로 출발해 1000여 작품을 했다. 영화는 몇 편 안 되고 거의가 드라마다. 욕심껏 하자면 좋은 영화나 연극, 뮤지컬도 탐이 난다. 젊은 친구들이 무대에서 멋지게 땀 흘리는 걸 보면 사실 부럽다(웃음). 하지만 TV쪽에 시간을 쏟기에도 바쁘다. 시청자 여러분들과 똑같이 세월을 흘려보내고 나이를 먹는 것에 만족한다."
변희봉 : "1966년에 탤런트가 아닌 성우로 출발했다. 70년대 초에 TV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드라마에서 활동을 하다가 99년도에 봉준호 감독의 연락을 받고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을 하게 됐다. 그 후로 어떻게 하다보니 (영화가) 전직이 되어 버린 셈이다. 하긴 요즘은 TV에서 잘 쓰지도 않는다(웃음)."
임현식 : "예전 <암행어사>라는 드라마를 4년 반이나 했다. 다 재미있게 봐주신 덕분이다. 그리고 <한 지붕 세 가족>은 6년 반이다. 이젠 시청자 분들도 나처럼 나이를 먹었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거다. 나도 (머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숱이 적어지지 않았나."
변희봉 : "단막극 활동을 많이 했다. 아마 촌스러워서 그랬는지 연속극에는 잘 불러주지 않았다. <수사반장> <113수사본부> 등에서 주로 간첩, 사이비교주 등 범죄형의 안 좋은 배역만 맡았다. 그때 딸아이에게 TV를 못 보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밖에서 듣고 다 알더라(웃음). 사실 단막극이나 사극을 많이 했고 드라마는 30여 편밖에 안 된다."
젊은 배우들만 주인공하라는 법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