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부일까? 정어리일까?

서평 <마사코의 질문>을 읽고

등록 2005.08.22 21:56수정 2005.08.2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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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속이란 무엇일까.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행동의 자유를 빼앗는 속박이란 말과도 그 뜻이 통한다.

36년. 참으로 긴 세월 동안 나라를 빼앗겼다는 이유로 우리는 자유를 강탈당했고, 1945년 8월15일 드디어 해방을 맞았다. 해방을 맞았다는 말은 구속과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았다는 이야기이다.


60년! 올해는 해방60년을 맞는 해이다. 내 나이가 올해 마흔 둘이니 당연히 나는 그 시절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그 시절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자유란 것에 대하여 얼마나 절실했는지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이야기들을 접하다보면 가슴이 요동치고 불끈 솟구치는 신열에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때론 참을 수 없는 울분에 순간적으로 욕을 내뱉을 때도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이야기들이 내 나라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울분이라는 것이 비단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우리 나라 국민이라면 그 어떤 사람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그 감정들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또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런 치욕을 두 번 다시 겪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와 신념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책 <마사코의 질문>
책 <마사코의 질문>김정혜
…내가 어렸을 때는요. 울며 떼쓰는 아이들을 달랠 때마다 "저기 순사 온다" "너 자꾸 그렇게 울면 순사가 잡아간다"라고 했어요. 그러면 입술 새파랗게 울던 애들이 울음을 뚝 그쳤지요. 일제 강점기에는 순경을 순사라고 했어요. 철부지 아이들한테도 순사는 그렇게 두려운 존재였답니다.

잊어버리면 안돼. 잊으면 또 다른 바보들이 될 거야. 그런 생각에서였어요. 젊은 당신들에게 당신들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게 이 책을 낸 이유예요…



<마사코의 질문>의 저자 손연자. 그는 이 책을 쓴 동기를 그렇게 밝히고 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 미래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모든 과거의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우리의 과거를 보고 알아야 한다고. 그게 자존심이며 자존심이 있어야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 책에는 총 9편의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일본과 일본인 그들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유를 잃어버린 그 시대의 숨막히는 고통과 좌절들이 펼쳐져 있다.


나라를 빼앗겼다는 이유로 그 아이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던, 철부지들이기에 오히려 군림하는 일본인이기를 소원했던, 그런 아이들의 맑은 눈과 여린 가슴이 너무 슬픈 그런 이야기들이다.

꽃잎으로 쓴 산이 우뚝 솟았습니다. 꽃잎으로 쓴 하늘이 새파래졌습니다. 꽃잎 별은 잘강잘강 맑은 소리를 냈습니다. 팔각 소반위의 글자들은 향기롭고 보드랍고 고왔습니다. 아. 눈물! 엄마의 볼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승우는 꽃 글이 쓰인 소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쓸 수 없던 그때의 아픔과 절망과 분노를 그리고 있는 '꽃잎으로 쓴 글자'. 엄마는 팔각쟁반에다 복사꽃 꽃잎으로 글을 쓰고 승우는 그 꽃잎이 쓴 꽃 글을 보며 글을 배운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저자는 말한다. 나라와 민족의 뿌리는 얼과 말과 글이라고. 이것만 있으면 아무리 모진 비바람도 다 이겨 낼 수 있다고 말이다.

파란 하늘이 잠기고 하늘을 지나가던 새의 그림자가 잠기고 솔바람 소리가 잠기고 푸른 잎 새들 무심히 떨어져 잠기던, 그 물에 온 몸을 담갔어. 그리고 난 초록 아이가 되어갔어.

“아가. 넌 아무것도 변한 게 읎어. 넌 그냥 너여. 그냥 예전의 너란 말여.”


12살, 참으로 꽃다운 나이이다. 맑음과 순수함만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그 나이의 은옥은 정신대로 끌려갔다. 그리고 돌아와 어머니 품에 안겼다. 어머니는 은옥을 업고 초록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딸의 몸에 드리워진 온갖 더러운 치욕을 씻기고 또 씻겼다. 어머니는 은옥이 영원히 변함없는 예전의 그 딸이기를 소원했다.

저자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60년이 흐른 지금 이 순간에도 상처받은 그 소녀들은 아직도 피고름이 맺히는 상처들을 보듬어 안고 힘겨운 숨을 헐떡이고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할머니. 내가 유키짱한테 한 방 먹인 건 걔가 먼저 내 물건에 손을 대서야. 만약에 안 그랬으면 나도 유키짱 머리통 같은 건 안 때렸어. 그러니까 우리 일본도 가만히 있었으면 꼬마(원자폭탄) 같은 건 안 떨어뜨렸을 거야. 아무 이유도 없이 그렇게 무서운 꼬마를 떨어뜨리지는 않았을 거 아냐. 왜냐니까? 왜 한 방 먹었냐니까?”

일본소녀 마사코가 할머니에게 일본의 죄를 묻는다는 내용의 '마사코의 질문'.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대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마사코. 그러나 할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어부들은 많이 잡아서 기뻐하고 정어리들은 많이 잡혀서 슬퍼한다고 생각하는 아이. 해서 바다 위에서는 잔치를 하고 바다 밑에서는 장례식을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 마사코는 끊임없이 묻는다. 일본이 어부편인지, 정어리 편인지, 끝끝내 할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과연 일본은 어부일까 정어리일까. 저자는 할머니가 하지 못한 대답을 독자들은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방구아저씨, 꽃을 먹는 아이들, 남작의 아들, 잎새에 이는 바람, 긴 하루, 흙으로 빚은 고향 등 6편의 이야기가 더 실려 있다. 각각이 모두 아이들의 시선에 비친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우리 민족이 겪은 일제수난기에 대하여 얼마 만큼 알고 있으며 얼마 만큼 동감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건 세대를 거듭할수록 그 이해의 폭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을 것이다. 왜? 점점 먼 과거의 시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같은 또래들이 느꼈을 좌절과 절망으로 지금 현재의 또래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요구하고 있다. 지금 현 세대들이 일제 36년간에 대하여 느끼고 있는 울분을 우리 청소년들이 함께 공감해주고 또 절대 잊어버리지 말기를. 그리고 그 울분을 거뜬히 벗어던질 수 있는 힘을 기르기를. 그네들의 어깨엔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기에 다시는 꺾이지 말기를 이 책을 통해 절절히 호소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무심코 떠오른 생각이 있다.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무조건적인 요구만이 최선일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얼과 말과 글이 민족의 혼이라 했다. 그들보다는 좀 더 절실하게 일제 36년을 그리고 우리 나라를 빼앗았던 일본이란 나라를 기억하는 세대로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작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해줄 수 있다면 그네들로 하여금 민족혼을 지키는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건 바로 우리말과 글을 올바르게 쓰는 것을 가르치자는 것이다. 아니 가르치기에 앞서 보여주자는 것이다. ‘꽃잎으로 쓴 글자’의 승우엄마처럼 내 나라의 글을 내 아들이 안 잊게 하기 위하여 복사꽃 꽃잎으로 글을 쓴 그 절실한 마음을 우리도 한 번쯤 내 아이들에게 전해보면 어떨까 싶다.

애국! 그건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기에.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잘 사용하는 것도 큰 애국이리라 감히 생각해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 <마사코의 질문>은 우리 청소년들을 보듬어 안아야 할 우리 기성세대들도 꼭 한번 읽고 넘어가야 할 책인 듯싶다. 그리고 배워야 할 것 같다.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를.

마사코의 질문 - 개정판, 6학년 2학기 읽기 수록도서

손연자 지음, 김재홍 그림,
푸른책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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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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