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검사 방에는 책이 없다

판사가 본 검찰 '벗겨진 실체'... 백용하 검사 <검찰가족> 8월호 기고

등록 2005.08.26 10:26수정 2005.08.2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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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생활을 6년쯤 하고, 검사가 된 지 1주일이 된 초임검사가 바라보는 검찰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수원지법 판사를 역임하고 전관해 서울동부지검 형사 5부로 배치된 백용하 검사는 지난 22일 발행된 <검찰가족> 8월호 자유발언대에 기고한 '판사가 본 검찰'이라는 글을 통해 검찰의 모습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내 눈길을 끌고 있다.

백용하 검사는 우선 "검찰을 동경하다가 검찰에 귀순한 지 이제 1주일 된 초임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판사 생활을 하고 검사로 전관하는 것이 흔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조직에 동화되기 전 문화적 충격이 생생할 때 느꼈던 단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며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밝혔다.

백 검사는 이어 "검찰에 대한 첫인상은 검찰직원 누구 하나 한가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활기차고 분주하다"며 "절간과 같이 조용하기만 한 법원에서 6년 동안 근무하다가 온 나로서는 검찰 직원들의 바쁘고 역동적인 모습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이런 점이 나를 검찰로 이끌게 한 요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검찰에서 사라진 폭탄주 문화

백 검사는 "언론에 보도돼 검찰간부를 물러나게 했던 유명한 사건 탓인지 사람들은 검찰 하면 폭탄주를 연상하고, 폭탄주를 즐기는 나도 검찰에 전관하면 폭탄주를 자주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했으나 여지없이 무너졌다"며 "검찰도 폭탄주 문화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벗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반성적 고려에 의해 의도적으로 검사들이 폭탄주를 자제하는 것인지, 우연한 현상인지 신참내기로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검찰 조직에 대해 날카로운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백 검사는 "피의자를 철야 신문하는 관행도 사라진 것으로 보이고, 피의자신문시 심한 폭언이나 인격적 모독을 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검사실에서는 종종 검찰 직원이 피의자를 윽박지르거나 고함을 치는 등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우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찰 직원도 인간인 이상 진술을 수시로 번복하는 피의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흥분할 수도 있고, 온화한 모습만으로 수사가 되겠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으며, 나 또한 시간이 흐르면 그런 모습으로 피의자를 대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조사를 받으러 검찰청에 오는 구속 또는 불구속 피의자들은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던지면서 인격적인 피의자 신문을 한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백 검사는 그러면서 "이상론인지 모르나 수사의 민주화를 이루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피의자를 인간적으로 배려하면서도 필요한 진술을 받아낼 수 있는 수사관행이 정착돼야 한다"며 "피의자가 조사를 받고 돌아가면서 '이런저런 증거를 들이대며 추궁하기 때문에 사실대로 자백할 수밖에 없었지만, 인격적으로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고 칭찬하도록 만드는 것이 반드시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하지 않는 검사들... 검사들 방엔 책이 거의 없다

백 검사는 "법원의 판사들은 1년에 한 박스 정도씩 책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많은) 책 처리와 관련해 잘 아는 검사와 상의했는데 책이 거의 필요 없을 것이라는 놀라운 답변을 들었고, 실제로 검찰에 와 보니 검사들 방에 책이 거의 없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는 "검사 일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수사기관의 조직생리와 잦은 인사이동에 따른 효율성 등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검찰도 준사법기관으로서 법률적인 판단이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검사 일은 머리로 하는 것이고, 검사에게도 책이 필요하다고 반박하고 싶다"고 꼬집었다.

백 검사는 또 "판사들은 업무에 관해 서로 물어 보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는 사람이 많아 가능하면 스스로 책을 찾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반해 검사들은 물어서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다른 실적이 없는 판사들은 연구에 대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도 검찰은 연구활동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쓴소리를 냈다.

특히 백 검사는 "법원은 민사, 형사, 행정, 가사 등 다양한 업무 영역이 존재하고 있어 형사는 극히 일부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며, 전문성이 약한 분야라면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형사가 업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검찰은 형사분야 만큼은 검사들이 연구하고 실력을 키워 법리로써 판사들을 압도하고 판례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검사는 끝으로 "검찰의 모든 모습을 사랑해 검사가 됐다"며 "신규검사로서 검찰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도 그럴 자격도 없지만 판사의 시각에서 검찰을 바라본 글을 남기고 싶었을 따름임을 검찰가족들이 널리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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