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4천만 년의 신비 우포를 만나다

꿈에 그리던 우포 여행

등록 2005.08.29 09:12수정 2005.08.2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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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우포를 만났다. 가을이 이미 시작된 여름의 끝자락에서 1억4천만 년의 그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우포행을 그려왔지만 그동안 이상하게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2학기 교육 시찰을 위한 답사를 겸해서 우포를 가기로 몇몇 학생들과 약속까지 했는데, 사정이 생겨 무산되고 말았다.


방학이 가고 나면 언제 또 기회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가족들을 채근해 드디어 우포로 떠날 수 있었다.

지난 27일 아침 8시 40분쯤 부산을 출발해 우선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칠원 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창녕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갔다. 거기서 우회전해 20번 국도를 타고부터는 우포늪 표지판만 따라가니 우포늪 전망대가 있는 세진리 주차장에 이를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우포늪으로 걸어가는 길엔 향기로운 풀내음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꼭 이전에 자주 다니던 시골집 가는 길 같다며 좋아했다. 길 옆 풀숲에는 갖가지 풀이랑 꽃들이 숨길 것도 뽐낼 것도 없이 제각기 자연스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a 우포늪 가는 길 옆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닭의장풀

우포늪 가는 길 옆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닭의장풀 ⓒ 이찬훈

아내는 아이들에게 풀숲에 숨어 있는 작은 곤충들을 가르쳐 주며 앞서 가면서,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작고 아름다운 모델들을 잘도 찾아 주었다. 어릴 적에 밀양의 한 촌동네에서 자라며, 강둑으로 소 먹이러 나가 온갖 풀이랑 꽃이랑 곤충들이랑 친구했던 아내는 시력 나쁜 나를 위해 아름다운 모델을 찾아주는 데는 그만이었다.

a 사랑을 나누면서도 배고픔을 못 참아 풀을 뜯어 먹는 메뚜기.

사랑을 나누면서도 배고픔을 못 참아 풀을 뜯어 먹는 메뚜기. ⓒ 이찬훈

아내가 찾아주는 곤충들을 사진기에 담아가며 걷다 보니 어느덧 눈앞에 드넓은 우포가 펼쳐져 있었다. 벌써 가을로 접어든 우포늪은 무성한 풀들은 이미 시들었지만, 붉고 푸른 색깔이 어우러진 가운데 곳곳에 백로랑 왜가리들이 먹이를 찾고 있는 그림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a 백로 왜가리 등이 놀고 있는 우포늪.

백로 왜가리 등이 놀고 있는 우포늪. ⓒ 이찬훈

전망대에 오른 아이들은 망원경으로 늪지 식물과 새들을 구경하며 마냥 즐거워했다. 전망대를 지키는 안내원 아저씨께 물으니 친절하게 우포늪을 일주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주셨다. 전망대를 내려와 대대제방으로 향하는 길 옆 풀숲에도 메뚜기와 사마귀 같은 곤충들이 지천이어서 나는 사진을 찍느라고 바빴으나 아이들은 벌써 피곤한 기색이었다.

a 용맹하기 이를 데 없는 것 같은 사마귀.

용맹하기 이를 데 없는 것 같은 사마귀. ⓒ 이찬훈

아내와 아이들은 먼저 주차장으로 가도록 하고 대대제방으로 가보니, 제방에는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가을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강둑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었지만 한참을 걷다가 이미 오래 기다렸을 식구들 걱정에 훗날을 기약하면서 중도에서 돌아섰다.

a 코스모스가 만발한 대대제방에서 바라본 우포늪.

코스모스가 만발한 대대제방에서 바라본 우포늪. ⓒ 이찬훈

전망대 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세진리 주차장을 나서 좌회전해 온 길을 되짚어 조금 가다가 대대마을에서 회룡초등학교 쪽으로 좌회전해 들어갔다. 지금은 폐교가 된 회룡초등학교에는 창녕환경연합의 부설 기관인 우포생태학습원이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구경을 마친 어린 학생들이 돌아가기 위해 대형 버스 두 대에 타고 있었다.

그곳을 관리하는 분 중 한 분은 사진기를 멘 나를 보자마자 이곳은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곳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우리 나라의 여러 명승지나 박물관, 그리고 이런 학습기관들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폐쇄성을 다시 한 번 맛보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우리의 아름다운 유물들이나 여러 가지 귀중한 자료들을 사진으로 담아 두고 두고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게 어째서 그리 금해야만 하는 나쁜 일일까?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는다면 사진을 찍는다고 전시물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진 촬영을 막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더구나 그곳에는 사진으로 인해 피해를 볼 만한 유물은 없고 우포를 설명하는 사진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오랫동안 관행처럼 전해내려 온 관료주의적 습성 탓이 아니라면, 혹 사진을 통해 많은 사람이 접하게 되면 사진으로 이미 보았기 때문에 그곳을 찾지 않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일까? 나로서는 아무래도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대자연과 하나 되고자 하는 생태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전적으로 동감하며, 깊은 동지애를 느끼는 나로서는 우리의 귀중한 생태보고인 우포늪의 모습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는 좀 더 개방적인 자세가 아쉬웠다.

우리는 그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사지포로 향했다. 사지포 제방은 회룡초등학교를 나와 우회전해서 직진하다가 마을을 지나 농로를 가로질러 갔다. 도중에는 물이 많을 때에는 잠길 것이 분명하고 움푹움푹 패여 매우 험한 길도 있었지만, 떼를 지어 물 위를 노니는 물잠자리 떼를 만나 즐거웠다.

a 사지포 가는 길에 만난 물잠자리.

사지포 가는 길에 만난 물잠자리. ⓒ 이찬훈

갈대 숲길을 지나 이른 사지포 둑의 왼쪽으로는 우포가, 오른쪽으로는 사지포가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우포의 아름다운 일몰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많은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커다란 왜가리 한 마리가 가까이 앉아 있어 찍으려고 사진기를 꺼내들었으나 날아가 급히 몇 컷을 찍었으나 건질 만한 것이 없었다.

a 사지포 제방에서 바라본 사지포

사지포 제방에서 바라본 사지포 ⓒ 이찬훈

사지둑에서 사지마을을 지나 주매리 근처에서 우포늪 표시판을 보고 좌회전하자 소목 제방이 나타났다. 소목 제방은 넓은 우포늪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이곳 역시 일몰 촬영 장소로 알맞을 듯했다. 자동 셔터를 이용해 가족사진을 찍었으나 초점이 맞지 않아 이번에 찍은 유일한 가족 사진을 버렸다.

제방을 넘어 조금 지난 곳에는 이곳 주민들이 이용하는 거룻배 몇 척이 물가에 서 있었다. 아마도 고기잡이나 우렁이 잡이에 쓰는 것이 분명한 작은 배들이 그리운 우리네 이웃들처럼 잠시 고단한 몸을 쉬고 있는 듯했다.

a 우포늪의 거룻배.

우포늪의 거룻배. ⓒ 이찬훈

계속 직진하다가 표지를 따라 우회전해서 '푸른 우포 사람들'이라는 우포자연학습원을 만났다. 그곳은 작은 늪을 만들고 배를 타 볼 수도 있고, 작은 늪 정원을 만들어 여러 늪 식물들을 볼 수도 있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좋았다.

아이들은 피곤하다며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잠이 들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우포자연학습원을 둘러보고 차에 올라 진행 방향으로 조금 더 가자 왼편으로 길고 넓은 목포늪이 펼쳐졌다. 물가에 있는 큰 나무 그늘에 차를 세우고 내려 한참을 바라보았다. 우리 나라에 이토록 거대하고 아름다운 늪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다.

a 드넓은 목포늪의 모습.

드넓은 목포늪의 모습. ⓒ 이찬훈

큰 도로로 나가 장재리를 지나 우만리에 이르러 우포 표지판을 따라 다시 좌회전해 들어가 목포늪을 따라가며 우리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했다. 목포늪에는 곳곳에 왜가리와 백로 등의 새들이 특히 많았다. 가는 도중에 아들 녀석이 새가 알을 품고 있다고 소리쳐서 보니, 늪 가운데 키 작은 관목 속에 새 한 마리가 둥지를 틀고 있는 듯 앉아 있었다.

a 목포늪 위 관목숲 둥지에 앉아 있는 백로

목포늪 위 관목숲 둥지에 앉아 있는 백로 ⓒ 이찬훈

목포늪이 끝나는 곳에는 목포와 우포를 나누는 제방이 있는데, 이곳 근처가 유명한 우포의 일출을 볼 수 있는 포인트이다. 물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떠오르는 우포의 일출 모습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본 적이 있는 가슴 벅찬 장면일 것이다.

사실 내가 그토록 우포엘 가보고 싶어 한 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생태계보전지역(Ecological Conservation Area)'이자 물새 서식처로서 중요한 습지 보호에 관한 협약인 람사협약에 등록된 람사습지인 이곳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우리 생태계의 소중함을 가슴에 담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평소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사진에 담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으로서, 평소에 남들이 찍어 놓은 그 환상적인 우포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도 한 번 담아 봐야겠다고 다짐하곤 한 나 자신의 바람이 크게 작용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우포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으려면 밋밋한 한낮보다는 아름다운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는 저녁과 아침이라야 제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일종의 사전답사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싫지 않은 표정이면서도 아빠 사진 찍으려고 자기들을 끌고 다닌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의 투정을 들으면서도, 나는 초행길에 앞으로 틈만 나면 달려와 아름다운 모습을 담을 수 있는 포인트들을 확인해 가며, 그 아름답고 광대한 우포늪을 일주할 수 있었음에 행복했다.

제 사진 찍는 취미를 위해 자연생태학습을 핑계 삼아 하루 종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남편과 아버지를 따라 다니느라 지쳐 잠든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머지않아 다시 이른 새벽에 혼자 차를 몰아 이곳으로 달려와 그 황홀한 우포의 아침을 사진 속에 담을 꿈으로 가슴이 설렜다.

이렇게 오랫동안 그리던 나의 우포 여행의 꿈은 끝이 났다. 이렇게 나는 우포 그 1억 4천만 년의 신비를 만났다. 그러나 우포의 신비는 한 번 보았다고 벗겨지는 것이 아니라, 볼수록 깊어지는 것이요, 이루어진 내 꿈은 끝이 아니라 아름다운 우포를 두고두고 거듭해서 찾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영원한 새로운 꿈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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