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물팍'인 줄 알았더니, 분꽃이네

어디선가 날아 온 꽃씨 하나가 올 여름 우리 가족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등록 2005.08.30 09:04수정 2005.08.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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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어쩐 일인지 아끼던 벤자민 고무나무가 죽어버렸다. 해서 이파리가 붙은 가는 가지들을 잘라 낸 다음, 혹시나 새잎이 돋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몸통은 그대로 두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여러 달이 가도 더 이상 잎이 돋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날 잡아 뿌리채 들어내야지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죽은 벤자민 고무나무의 화분에서 무슨 씨앗인지 알 수 없는 새싹이 하나 돋았다. 새싹의 잎은 둥근 형태였으나 내가 아는 오이나 호박은 아니었다.

그러면 감인가 하고 짐작하여 보았다. 지난 가을 감을 먹고 감씨를 던져두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어린잎은 날이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여차하면 뽑아내었겠지만 녀석의 행태가 여느 잡초와는 달이 귀티가 나서 쉬이 뽑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디 자랄 대로 자라 봐라. 뭐가 되는지 한 번 보자, 응. 녀석이 한 삼십 센티 정도 큰 것을 보고 어느 날 놀러온 동네 ‘아짐’은 영 뜬금없는 이름을 내 놓았다.

“이거, 보아 하니 ‘쇠물팍’ 같네.”
“뭐, 쇠물팍?”

“응, 저거 뿌리 삶아 먹으면 무릎을 쇠무릎으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이름이 쇠물팍이야. 우리 고향 사람들은 그렇게 불러.”
“아 그렇구나. 쇠물팍? 그러면 나중에 뿌리 캐다 삶아 먹어 봐야겠네.”

그날 이후로 녀석은 ‘쇠물팍’으로 불리웠다. 워낙 눈에 띄게 잘 자라서 그런지 물을 어쩌다 며칠 그르면 금세 잎이 시들시들 고개를 떨구곤 했다. 그러나 물을 주면 금세 또 살아나서 사랑초만큼이나 사랑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코 보니 진분홍색의 꽃을 하나 둘 피우고 것이 아닌가. 거참 기특하네. 무럭무럭 끝없이 자라는 것도 볼 만한데 꽃까지 피우다니. 나는 당장 ‘쇠물팍’이라 이름 지어준 ‘아짐’에게 커피 한 잔을 빌미로 쇠물팍의 꽃을 자랑하였다.

“이것 봐, 꽃도 피었어!”
“정말 그러네….”
“꽃도 어쩜 이리도 이쁘지.”


2005년 8월 가까이서 본 분꽃
2005년 8월 가까이서 본 분꽃정명희

2005년 8월 가지가 너무 뻗어서 홀로 지탱을 못하여 죽은 벤자민 몸통에 걸쳐둔 분꽃
2005년 8월 가지가 너무 뻗어서 홀로 지탱을 못하여 죽은 벤자민 몸통에 걸쳐둔 분꽃정명희
맛 장구를 기대하였으나 어쩐 일인지 그녀는 꽃만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하는말,

“있잖아, 이거 쇠물팍이 아닌 것 같애. 지금 보니 이것은 분꽃이야. 미안해. 그런데 쇠물팍이랑 너무 닮았어.”

그녀가 ‘분꽃’이라고 하는 순간, 나는 그제야 오랜 ‘최면’에서 깨어났다. 무엇에 쓰인 것이 아닌 맑은 정신으로 보니 쇠물팍은 어렸을 적 초등학교 화단에서 보았던 분꽃이 확실했다. ‘쇠물팍’의 어감과 의미, 그리고, 그 효능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달리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분꽃은 어렸을 때 빼고는 본 기억이 없는데다 지난해에는 아무 일 없다가 갑자기 올해 뜬금없이 한 송이 피어났는데, 도대체 이 분꽃씨는 어디서 날아온 건지. 아무튼 사랑초와 마찬가지로 분꽃 또한 올 여름 내내 우리 가족을 기쁘게 해 주었다.

특이한 것은 사랑초는 저녁이면 잠이 듦에 반해 분꽃은 저녁이 되면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 내내 활짝 피었다가 아침이면 꽃잎을 닫았다. 한 번 핀 꽃은 두 번 피지 않았고 매번 새로운 꽃대에서 꽃이 피었다. 낼 모레가 구월이지만 이 꽃이 다 피고 지려면 아직 많은 날들이 남은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사랑 할 수 있다고 했던가요? 쇠물팍이 아닌 분꽃으로 인지하고 난 다음 부터는 거짓말 처럼 길가 이곳저곳에 핀 분꽃을 많이 볼수 있었습니다.

물론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도 했지요. 가까이 가면 분 냄새가 확 풍겨오기도 하고요.

덧붙이는 글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사랑 할 수 있다고 했던가요? 쇠물팍이 아닌 분꽃으로 인지하고 난 다음 부터는 거짓말 처럼 길가 이곳저곳에 핀 분꽃을 많이 볼수 있었습니다.

물론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도 했지요. 가까이 가면 분 냄새가 확 풍겨오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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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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