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31

가야 하는 길, 와야 하는 곳

등록 2005.08.30 17:03수정 2005.08.3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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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하는 길, 와야 하는 곳

"잘 왔네. 정말 잘 왔네."


의주부윤 임경업은 자신을 찾아온 차충량, 차예량 형제와 최효일의 손을 하나하나씩 덥석 덥석 마주잡으며 힘 있는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지금 내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네. 전란을 맞아서도 별 달리 손을 못 쓴 것도 그러하거니와 수하에 사람 하나가 귀한 판국이네."

청나라 군이 압록강을 건너 진격할 당시, 이미 짜인 방침에 따라 한양까지 가는 길의 산성은 모조리 우회해 갔고 이로 인해 임경업이 수 백 명의 병사와 함께 지키는 백마산성은 싸움 한번 없이 연이어 내려오는 청나라 병사들에 의해 봉쇄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후 임경업의 부대는 인근에서 횡포를 부리는 청군을 공격해 약간의 분풀이는 했지만 조정에서는 그 공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청에서도 이를 구태여 문제시 삼지는 않았다. 이는 임경업이라는 인물과 의주라는 곳의 미묘함 때문이었다.

비록 청이 조선의 조정을 굴복시키고 수많은 인질을 잡아오긴 했지만 전 국토를 완전히 장악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선은 불안한 존재였다. 특히 의주는 인구규모에 비해 매우 큰 규모의 잠상이 이루어지는 곳이었고 이로 인해 거래되는 물건뿐만이 아니라 정보의 양 또한 상당했다. 조선과 연계하기 위해 명나라의 한인(漢人)들이 몰래 의주로 숨어들어와 임경업과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는데, 이러다보니 자연히 장사치로 변장한 청과 명의 간첩들이 들끓었고 조선조정에서도 공공연히, 또는 몰래 의주에서 청과 명의 정보를 입수하면서 임경업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조정 대신들도 오가는 곳이니 만큼 자네들이 군무를 맡을 수는 없네. 허나 장사일이라면 지금으로서는 조정에서도 관여하기 어려우니 자네들이 맡아주게나."


차예량과 차충량은 장사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최효일은 실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젠 장돌뱅이가 되는구려!"


장사를 해본 차씨 형제를 보아서는 예의 없어 보이는 발언이었지만 차씨 형제는 맞는 말이라며 크게 웃을 따름이었다.

"비록 잠상이긴 하나 그곳에서도 지켜야할 상도덕이 있네. 하지만 한몫 잡으러 온 조선팔도의 장사치들과 청, 명, 때로는 여진의 무리까지 거래에 관여하다 보니 소란스럽고 위험한 일이 자주 발생하기도 하네. 자네들이 아니면 어찌 이런 험한 일을 감당하겠는가? 대업을 달성하기 위한 재물은 헛되이 관리되어서는 아니되네."

임경업은 잠시 자신 앞에 앉은 세 명의 사내를 찬찬히 둘러 본 후 말을 이었다.

"조정에서는 아직 모를 터이나 심양의 소문을 들어보면 전쟁이 끝난 후 몇몇 장수들이 청의 황제에게 '조선 팔도 중에 세 도는 국왕이 다스리도록 놓아두고 다섯 도는 여기서 장수를 정하여 내려 보내 관장하자'라고 했다 하네."

차충량, 예량 형제와 최효일은 처음 듣는 충격적인 소식에 얼굴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당장은 걱정 할 거 없네. 청의 황제가 '조선은 우리와 언어가 통하지 않아 힘들거니와 그러한 조치는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며 이를 듣지 않았네. 하지만 청나라 놈들의 의심이 많아 언제든 이런 일을 다시 꾸밀지 모르네. 그전에 어떻게든지 반격을 해야만 하네!"

임경업과의 만남을 마친 후 나온 최효일은 그래도 성에 안 차는 부분이 있는지 투덜거렸다.

"이 조막만한 의주 땅에서 장사를 하면 재물이 얼마나 모인다고 그리 생색을 내는 지 모르겠수."

그 말에 차충량이 크게 웃어 최효일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아까 장군의 말을 못 들었는가? 이곳에는 우리 상인뿐만 아니라 한인과 청인도 왕래하는 곳이네. 더구나 장군은 일찍이 재화를 쌓아두기 위해 적국이었던 청의 심양까지 왕래하며 무역을 하다가 조정의 문책을 당한 적도 있을 정도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상업에 심혈을 기울이겠나? 이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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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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