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대서특필되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공격과 그 후에 벌어지는 참혹한 상황을 보면서 기자는 리영희 선생의 한 칼럼을 생각한다. 올해 출간된 <대화>(한길사 펴냄)에도 인용된 '당산 시민을 위한 애도사'라는 글이다. 1988년 11월 6일 <한겨레>에 실린 이 글을 쓴 동기는, 한국에 투자유치를 온 중국 당산(唐山)시의 관계자들을 맞는 쓸쓸한 소회였다.
리 선생이 이 칼럼에서 인용한 사건은 1976년에 동시에 벌어진 두 사건이었다. 하나는 뉴욕에서 벌어진 12시간 정전, 그리고 또 하나는 70만명이 사는 도시인 당산의 대지진이었다. 뉴욕은 정전으로 인해 살인, 약탈 등 인간의 탐욕으로 범벅됐던 반면에 당산은 시민의 절반을 잃는 대형 참사에도 10계명에 따라 행동했다 할 만큼 정돈되어 있었던 현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자본의 맛을 알아갈 당산의 시민들이 뉴욕의 시민처럼 바뀌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다.
카트리나는 당시의 뉴욕 사태보다 더 혼돈스러운 상황일 것 같다. 하지만 그 여부를 떠나서 물신만능의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이들이 공권력의 통제를 잃어버렸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이해는 우리를 너무 가슴 아프게 한다.
조금이라도 더 약탈을 하기 위해 불행한 주민을 구하러 오는 구조헬기에 총탄을 쏘고, 자신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이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그들의 심리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한 시민은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태인가를 의심했다고 한다. 사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란 없다. 얼마 전 개봉한 <우주전쟁>이 그린 모습이 그런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겠지만, 외계인들의 피습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물질 만능에 중독되어 버린 이 시대 인간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이제 리영희 선생이 예고했듯이 중국도 더 이상 1976년 당산과 같은 온정과 이해의 나라가 아니다. 그들의 오랜 본성을 되찾아 이제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말하는 기자라고 다를 리 없다. 조금이라도 잘 살고, 보호를 받기 위해 우리의 형제들을 애꿎은 전장으로 보내는 데 별다른 저항도 못했으니 말이다.
사실 카트리나 같은 재앙은 언제나 어디든 널려 있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성지순례 현장에서 벌어진 참사도, 사람들 마음에 있는 작은 공포감만으로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세상은 갈수록 극단을 향해 가고 있다. 자본주의를 돌리는 석유나 석탄 같은 요소는 갈수록 고갈되는 데 반해서 지구상 사람들의 욕망과 그 욕망을 추동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기자는 용병으로 타국에 군대를 파병하는 우리나라가 지구를 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은 희망을 품고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속 한 구절을 되새겨본다.
"나는 오늘날의 인류의 문화가 불완전함을 안다. 나라마다 안으로는 정치상, 경제상, 사회상으로 불평등, 불합리가 있고, 밖으로 국제적으로는 나라와 나라의, 민족과 민족의 시기, 알력, 침략 그리고 그 침략에 대한 보복으로 작고 큰 전쟁이 그칠 사이가 없어서, 많은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고 보복으로 작고 큰 전쟁이 그칠 사이가 없어서, 많은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고도 좋은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인심의 불안과 도덕의 타락은 갈수록 더하니, 이래 가지고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 인류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원리의 발견과 실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한 천직이라고 믿는다."(백범 김구 '나의 소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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