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이 필요해? 환자 말고 실습생끼리 해 "

[김보일 칼럼 43] 서민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외

등록 2005.09.07 15:47수정 2005.09.0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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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 문예출판사

'어느 의사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의 저자 로버트 멘델존은 소아과 전문의이자 의학박사로 한때 현대의학의 열렬한 신자였다. 오랜 의사 생활을 통해 현대의학이 온통 부조리와 허구와 오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현대의학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그는 현대의학이 인류에게 해만 끼치는 공적이며, 수많은 광신도들을 거느린 죽음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그의 책은 왜 현대의학을 믿을 수 없는가, 왜 현대의학을 배척해야 하는가, 그 이유들을 소상하게 나열하고 있다. 첨단 의료란 멋진 것이고, 그 기술을 가진 명의에게 치료 받으면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라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의사들이야말로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말한다. 대체 이러한 불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현대의학에 대한 멘델존의 불신은 경험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책은 그가 어떤 병원의 외래병동 소장으로 있을 때의 경험을 소개한다.

그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아이 엄마에게 "아이에게 배변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까?"하고 질문을 한 후, 네 살이 되도록 배변 훈련을 받지 않은 남자 아이들에게 방광경 검사를 받도록 했다고 한다.

방광경 검사는 중장년의 방광암, 전립선암, 자궁암 등의 검진에 이용되는 검사로 일종의 내시경을 요도에서 방광 내에 삽입해 방광 내부의 이상 여부를 조사하는 검사이다. 이 검사를 네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행한다는 것이 가혹하다고 생각하여 그는 의사들에게 배변에 관련한 질문을 하지 않도록 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비뇨기과장으로부터 그는 이런 불평을 전해들었다고 한다.

"실은, 자네가 (배변에 관한) 질문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내 전문의 실습생 교육 계획이 엉망이 되게 생겼어. 실습생이 자격을 인정 받기 위해서는 매년 정해진 수만큼의 방광경 검사를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1년에 150회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 검사를 중지하는 바람에 할당량을 채울 수 없게 돼서 실습생들이 몹시 곤란해 하고 있어."

환자를 보호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대학병원에서는 의학 실습생의 자격증 확보를 위해 건강 검진이 행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는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온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교환 당사자간에 정보가 불균형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은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특히 의료정보에 있어서 일반인들의 상식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주사를 맞으라면 맞아야 하고, 약을 먹으라면 먹어야 하고, 검사를 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 권위적인 의사들에게 일일이 그 이유를 따져 물을 수도 없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의료비만 잔뜩 지출하고 병은 제자리 걸음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멘델존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의사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의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의사의 인간성을 짐작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의 전문 지식이 있는지도 알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라는 것이 멘델존의 설명이다.

멘델존의 책이 심각하게 읽히는 책이라면, 의과대학에서 기생충 학자로 재직중인 의학박사 서민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유쾌하게 읽히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에 담긴 메시지가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말하는 방식의 의외성이다. 의사라면 의사에 걸맞은 폼을 잡아야 하겠지만 저자는 전혀 권위적인 티를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의 캐주얼한 어법은 우리 나라의 의사들이 얼마나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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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 다밋

서민 역시 멘델존처럼 환자를 실습대상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실습이 필요하다면 굳이 환자들의 항문에 손을 넣을 필요가 없다. 똑같은 인간인 학생들 역시 직장(直腸)을 다 가지고 있으니까. 학생들끼리 서로 직장검사를 한다면, 서로간의 유대감도 얼마나 커지겠는가."

이처럼 저자는 심각한 내용을 심각하지 않은 어법을 빌어 말하고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탈모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매스컴에서 대머리의 선행 사례를 대대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으며, 방송사나 신문사 등에서도 기자를 뽑을 때 일정 비율 이상을 대머리로 뽑아야만 진정한 탈모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머리가 지배하는 세계가 대머리의 우월성을 역설한다면, 머리숱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뽑고 대머리인 척 위장을 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겠는가"라고 그는 말한다. 정상과 비정상,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과의 구분이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가의 문제, 즉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권력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 터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대중서적이다.

채식주의나 성장 클리닉 등의 문제점, 호르몬제, 비타민제 복용이나 헬리코박터 박멸 등의 문제에 대해 이 책은 객관적인 의사 입장에서 설명해 주기도 하고 제왕절개나 피임 등의 문제점과 우리가 가진 잘못된 의학 상식을 하나하나 짚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을 준다거나,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의약품을 개발했다는 내용들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이른바 '음모론'을 제기한다.

의사의 이해관계와 제약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모종의 공모가 생길 수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비타민이 몸에 좋다, 어떤 약이 혈압강하에 좋다, 어떤 약이 헬리코박터를 박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식의 발언들도 이런 식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결국 의학에 관련한 기사들을 일백 프로 신뢰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의료계의 문제를 의료계 밖에서가 아니라 의료계 내부에서 당당히 고발하고 있다. 이런 그의 내부 고발은 그가 '기생충에 기생해서 사는 기생충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내과의사나 외과의사보다는 기생충학자가 병원의 이해관계나 권력으로부터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특권적 지위(?)를 이용하여 의료계의 문제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 전력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쉽게 말해 의사와 병원의 '비하인드 스토리'쯤 될 것이다.

이 책은 의료계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씌어진 책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설파하고 있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의사에 대한 친근감을 불러온다. 퇴근 후에 가볍게 한잔할 수 있는 친구처럼 의사가 친근하게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책을 읽고 나면 저자 '서민'의 이름이 더욱 '서민'적으로 다가온다. 솔직한 고백과 서술이 갖는 힘이다.

덧붙이는 글 |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 로버트 S. 멘델존 저/남점순 역 | 문예출판사 | 2000년 12월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 서민 저 | 다밋 | 2005년 08월 

김보일님은 도서 포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의 칼럼니스트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독서칼럼집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소나무)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 로버트 S. 멘델존 저/남점순 역 | 문예출판사 | 2000년 12월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 서민 저 | 다밋 | 2005년 08월 

김보일님은 도서 포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의 칼럼니스트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독서칼럼집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소나무)가 있습니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다밋,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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