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내가 괴물 같다"

[해외리포트] 청소년 비만율 25%인 호주의 특별한 시도

등록 2005.09.08 05:40수정 2005.09.0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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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학생들의 3학기 방학을 앞두고 호주의 각 가정에는 하루 세끼, 한달을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두툼한 할인쿠폰이 전달됐다.

'방학 특수'에 대비해 호주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 분주해졌다.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식사 때가 되면 패스트푸드 식권(?)으로 친구들과 햄버거나 피자를 사먹는 것은 호주 어린이들의 가장 흔한 방학 모습이다. 그 결과, 호주 어린이들의 몸은 점점 비대해져 사회문제화 되어 버린 상태다.

아동 비만을 부추기는 주범 가운데 하나인 패스트푸드점. 높은 입간판이 어디서든 눈에 띄는 데다 패스트푸드점들은 대개 한 곳에 모여있어 매상올리기에 서로 기여한다.
아동 비만을 부추기는 주범 가운데 하나인 패스트푸드점. 높은 입간판이 어디서든 눈에 띄는 데다 패스트푸드점들은 대개 한 곳에 모여있어 매상올리기에 서로 기여한다.신아연
호주 어린이 네 명 중 1명 비만

호주의 아동비만 문제는 수년 전부터 급속도로 심화돼 왔다. 호주의료협회 통계수치에 따르면 1995년 이후 비만아 비율이 급속히 팽창하기 시작해 올해에는 2세 이상~10대 청소년 4명 중 1명이 비만 또는 과체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18세 미만 비만인구는 150만 명에 이른다.

호주의 비만 증가율은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급상승하기 시작하여 1987년과 1995년 사이 60~70%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로 간다면 2020년에는 성인의 80%, 어린이와 청소년의 3분의 1이 과체중 상태가 될 것이며 2025년에는 18세 미만 인구 절반이 비만화 된다는 경고다.

비만으로 인한 각종 질환 치료 및 관리에 쏟아 붓는 호주정부의 의료 부담액도 어마어마하다. 통계청의 국민건강 부문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5~1996년 1년간 8억8천만~12억3900만 달러가 비만으로 인한 각종 질병 진료비 및 과체중에 기인한 건강관리비로 들어갔다.

호주의 각급 병원의 비만전문관리팀들은 "지금 같은 속도로 아동비만이 진행된다면 비교 연령대가 다시 정상체중을 회복하는데 50년 이상이 걸릴 것"이며 "생활과 식습관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이 사회적 차원에서 마련되지 않는다면 비만은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결국에는 호주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다급해진 호주 정부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아동비만 대책마련에 나섰다.

학교매점에서 감자튀김, 미트파이, 케이크를 팔지 마라

'아동비만 해결은 학교 매점 메뉴개선으로부터'라는 의지로 호주의 각급 학교는 과일과 야채 위주의 점심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방침이다. 사진은 뉴사우스웨일스 주 학교 매점협의회 홈페이지.
'아동비만 해결은 학교 매점 메뉴개선으로부터'라는 의지로 호주의 각급 학교는 과일과 야채 위주의 점심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방침이다. 사진은 뉴사우스웨일스 주 학교 매점협의회 홈페이지.
최우선 개선대상은 학교 매점이다. 전국 학교매점 운영위원회는 현재 호주 내 절반가량의 학교가 탄산음료 자판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방함량이 높은 음식을 아동들에게 점심으로 팔고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빅토리아 주의 경우, 18개 초등학교 중 17개 교에서 고지방 음식을 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과일을 간식으로 파는 곳은 5개 교에 불과했다.


호주정부는 총 1억16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 어린이 비만 바로잡기 4주년 계획에 돌입했다. 'Healthy, Active Australia(건강하고 활기찬 호주, HAA)'라는 슬로건 하에 고지방 고칼로리 위주의 식단을 야채와 과일, 단백질을 중심으로 한 건강식단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

1억1600만 달러의 예산은 전국 초중고 매점의 조리설비 개선비용으로 지급됐다. 기존의 조리설비를 건강식단에 맞게 개선하겠다는 것으로, 야채나 과일 등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한 냉장고 구입이나 새 메뉴 게시판 마련 비용으로 지원되고 있다.

호주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어린이들의 식습관부터 바꿔야 성인비만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즉 학교에서부터 담백하고 칼로리가 낮은 음식에 차츰 길들여지면 일반 음식점에서도 그 맛을 찾게 되고 집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조리하게 된다는 계산이다.

정부는 오는 2006년 6월까지 학교 매점에서 감자튀김과 미트 파이 등 고지방식과 케이크를 비롯한 단 것을 제한하고 야채와 과일 위주로 식단을 편성할 것을 강력히 권장하는 한편, 탄산음료 자판기 설치도 규제할 방침이다.

TV 패스트푸드 광고도 규제하라

텔레비전의 패스트푸드 광고에 대한 규제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에 대한 광고가 쏟아질 때마다 어린이들은 무심코 그것을 선택하게 된다는 '광고와 구매의 연관성'이 최근 들어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

호주의 텔레비전 광고는 시간당 평균 30회, 일일 평균 75회에 달한다. 그 가운데 각종 식품 광고의 비율이 25~48%를 차지하는데 특히 어린이들의 주 시청 시간대에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 광고가 집중된다. TV광고심의회 조사결과 햄버거나 피자, 초콜릿과 사탕, 청량음료의 일일 판매량은 어린이 시청 주시간대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텔레비전 광고뿐 아니라 슈퍼마켓의 음식 진열대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물건을 진열하여 어린이 소비심리를 부추기는 추세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를 주도하고 구매 상품선택에 가장 큰 입김을 넣는 가족의 일원이 바로 어린 자녀들이라는 점을 고스란히 반영한 판매전략 탓이다.

"저소득 가정일수록 자녀 비만율 높아"

대표적 패스트푸드 점 중 하나인 맥도날드 홈페이지.
대표적 패스트푸드 점 중 하나인 맥도날드 홈페이지.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비만은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 각종 성인 질환을 일찌감치 초래하여 신체적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이 될 뿐 아니라 긍정적인 자아상과 사회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심리적, 정서적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호주 사회체육증진센터의 2002년 자료에 의하면 과거 20~30년 전에 비해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등하교를 하는 어린이들이 현격히 줄어들었으며, 최근 들어 초등학교의 체육시간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린이들이 방과 후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차 늘면서 이래저래 신체 활동 시간을 적게 갖게 된다는 것이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 또한 아동비만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 중의 하나다. 2001년 호주 인구조사국의 통계에 의하면 15세 미만 자녀를 둔 가정의 43%가 맞벌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는 맞벌이 가정에서 패스트푸드는 요긴한 식사거리로 자리 잡아 왔다.

한편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일수록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스트라톤 아동비만관리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요즘 어린이들은 바깥에서 뛰어놀기보다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직자 등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가정의 어린이들일수록 운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작정 바깥에서 뛰어노는 것으로 몸을 움직이게 했던 예전과 달리 현대 사회는 어린이들의 스포츠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운동량 부족은 곧 어려운 경제사정과 비례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사설 클럽 위주로 짜여진 어린이들의 스포츠 활동을 학교로 끌어들여 방과 후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식으로 빈부차별 없이 어린이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뚱뚱한 내가 괴물 같다"

비만으로 인한 왜곡된 자아상과 심리적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 보도한 <디 에이지(The Age)>지. 비만 어린이들 가운데는 "내 몸은 마치 콘돔 속에 죽을 쑤어 부어놓은 것 같다"는 비하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비만으로 인한 왜곡된 자아상과 심리적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 보도한 <디 에이지(The Age)>지. 비만 어린이들 가운데는 "내 몸은 마치 콘돔 속에 죽을 쑤어 부어놓은 것 같다"는 비하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춘기나 아동기의 체중과다는 신체적 질환의 조기 발병도 가져오지만 자아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부정적인 자의식을 갖게 하는 등 심리적, 정서적, 사회적 악영향을 끼친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호주 빅토리아 주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디 에이지(The Age)>는 8월21일자에서 "비만아들은 인생의 패배자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며, 자기의 몸을 보고 있으면 고래나 괴물, 심지어 죽을 들이부은 콘돔이 연상된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고 전했다.

비만 관리 연구에 20년 가까이 몰두해 온 릭 카스만 박사는 20년간 비만아진단의 임상사례를 분석한 결과 비만아들은 자기평가가 낮다는 공통적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비만아들의 자학은 친구로부터, 교사로부터 받아온 놀림이 내재화된 결과이며, 커서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면 평생 심각한 자신감 결여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 한마디로 뚱뚱한 아이들은 자신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비만과 흡연율의 상관관계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 비만관리연구회에 따르면, 비만아들 사이에서 청소년 흡연율이 두드러지게 높은데 이는 자신의 몸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또래들과 활발히 어울리지 못하고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여 흡연을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아동 건강을 위해 권할 만한 음식에 관한 책을 펴낸 비만 문제 전문가 오디아 박사는 "교사, 부모, 건강 문제 상담원 그리고 정부의 담당 부서조차도 체중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전하며 "이런 분위기가 조장될수록 무리한 다이어트와 흡연 등을 부추겨 비만아들의 자기 혐오감은 더욱 커져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비만아를 둔 부모들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개 비만 자녀들의 부모 또한 비만일 경우가 많은데, 마치 자식이 그렇게 된 것이 부모 책임인 것 같은 자책과 죄의식의 작용으로 인해 자식의 과체중 상태를 부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려는 심리적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 문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개선을 위한 노력도 뒤따르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비만예방과 건강한 식습관을 권장하기 위해 각종 야채로 얼굴을 형상화한 정부의 홍보 게시물.
비만예방과 건강한 식습관을 권장하기 위해 각종 야채로 얼굴을 형상화한 정부의 홍보 게시물.신아연
세계 65억 인구 중 17억이 '뚱보'

비만 인구 팽창의 심각성은 물론 호주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세계인구 65억명 중 17억 인구가 '뚱보'이며, 어린이 10명 중 1명이 정상체중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치는 10년을 주기로 2백씩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80~1994년 사이에 국민 비만도가 2배 이상 높아졌으며, 캐나다 또한 1981년에서 1996년 간 통계를 보면 남자 어린이의 33%, 여자 어린이의 27%가 비만으로 집계됐다. 남부 유럽과 영국,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의 경우도 십수년 사이에 비만신장률이 20~30%에 육박하고 있다.

국민들을 정상 체중으로 돌려놓기 위한 호주 정부의 노력이 전 세계 아동비만 대책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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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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