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책 표지나라말
우리 아이들에게 판타지는 생활의 일부이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질리지 않는 컴퓨터 게임이 그렇고, 현실 속에는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만화 주인공이 그렇다. 그러나 빡빡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어른들로서는 아이들을 환상 속에만 머물러 있게 할 수 없다. 이런 기성세대의 노파심은 판타지가 우리 문화의 주류에 들어서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판타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고전 박씨전을 읽으면서 판타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았다.
박씨, 신인의 딸이나 얼굴이 못나, 명문가에 시집을 가지만 남편과 시집식구들에게 멸시를 받는다. 타고난 재주가 있어 집안의 살림을 늘리고 남편을 장원급제 시킨다. 때가 되어 허물을 벗고 천하일색이 되자 드디어 일가친척들이 박씨를 귀인으로 여긴다.
박씨는 나라에 큰 난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여 이를 막아 보려 했으나, 간신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나라에 불운이 닥쳐 병자호란이 일러나고 임금님은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고 만다. 박씨는 신기한 도술로 나라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 낸다.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까지 겪으면서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백성들은 임금이 청나라 장수에게 세 번 절을 하는 수모를 보게 되자, 나라에 대한 자부심마저 무너져 내린다. 이런 상처받은 백성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생겨난 소설 중 하나가 박씨전이다.
고전 소설 속 주인공이 여성인 예가 종종 있지만 박씨전에 등장한 여걸의 의미는 전란의 아픔을 품고 있다. 남존여비를 신봉하던 당시 사나이들은 전란이 닥치자 여인들을 지켜 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많은 여인들이 오랑캐에게 겁탈당하고 성노리개로 잡혀갔다 돌아온다. 이런 여인들은 고향으로 돌아 왔다하여 '환향녀'라는 별호와 함께 사람들로부터 멸시받는다. 오랑캐 무리에게 짓밟힌 것도 억울한데 이런 수모까지 감내해야 했던 여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번했다.
이 책에 주인공이 여걸인 것은 전쟁으로 인해 갈가리 찢긴 여인들의 한을 풀어 보자는 데에 있다. 남성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적장의 목을 쳐낸 것도 규중 속에 갇혀 있는 욕망의 표출이요, 제 나라 여인을 지켜 내지 못하면서 멸시하는 남성들에 대한 비웃음이다. 전란에 뛰어 들어 거침없이 호령하는 박씨를 통해 통쾌함을 맛본 많은 사람들은 아픔을 보상받는다.
현실로는 불가능한 것을 판타지를 통해 가능하게 하여 현실세계를 위로 한다는 점이 박씨전을 읽으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얼마 전만 해도 판타지는 문학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의 판타지 소설은 청소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대부분 판타지가 자극적으로 흐르고 있어, 섬세한 표현에 익숙해져 있는 기성세대에겐 수용되진 못하는 면이 있다. 이런 때에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담은 박씨전이 300년 전 민중을 아픔을 위로 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판타지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고 있다. 기성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판타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성큼성큼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판타지에는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지만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정말 나의 현실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내가 옥탑 방에서 한 달 내내 일해서 번 돈으로 고급호텔에서 꿈같은 하룻밤을 보냈다고 치자. 그렇다면 나는 비현실적인 사람이라고 비웃음을 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의 유일한 기쁨이고 그로인해 한 달간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면, 나는 한 달 내내 행복한 현실을 산 것이다.
또 만약 내가 집을 사기 위해 힘들지만 모든 것을 참고 저축을 했다고 하자, 저금통장엔 차곡차곡 돈이 고스란히 쌓이고 있지만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집을 사는 일이 묘원해졌다면, 나는 성실히 현실을 살았지만 사실은 꿈 속을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현실을 산 것 같지만 꿈속을 헤매고 있기도 하고, 환상 속에 사는 것 같으나 현실을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가 일반적인 의미의 현실 문화만 중요하다 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컴퓨터나 만화를 통해 환상세계를 무작위로 접하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판타지를 저급한 문화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역량 있는 작가들이 나서서 새로운 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300년 전 박씨전이 당시의 민중의 아픔을 치유했듯이, 지금의 소설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미래의 판타지는 환상 속에만 머물지 말고 현실의 아픔을 치유하고 일상을 살아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가 짚어 생각할 것은 '경'을 중시하던 조선시대에, 소설은 잡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만약 우리가 판타지를 아이들이나 보는 잡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면 조선시대 사람들과 같은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글 : 장재화
출판사 : 나라말
책값: 8500원
펴낸날: 2004년 8월 31일
박씨전 : 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장재화 지음, 김형연 그림,
나라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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