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을지문덕으로 넘자!"

[인터뷰] <살수> 펴낸 소설가 김진명... "북한 평화적 핵이용 권리 보장해야"

등록 2005.09.13 19:47수정 2005.09.1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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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진명씨.
소설가 김진명씨.오마이뉴스 권우성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작가 김진명(49)이 신작 <살수>(전2권·랜덤하우스중앙)를 냈다. 남북한이 함께 개발한 핵무기로 일본의 독도 문제에 대응하자던 그의 문제의식이 이번에는 우리 역사에 또 하나의 도전으로 몰려오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정신으로 대응하자는 메시지로 바뀌었다.

특히 그는 요즘 들어 중국의 동북공정 행보가 상당부분 진행되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고구려를 완전히 들어내 자신들의 역사로 집어넣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삼국지>를 읽지 않으면 이단아나 저능아 취급을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광개토대왕비에 숨겨진 비밀을 모티브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의 조작된 역사적 허위를 고발하는 작품 <가즈오의 나라>를 쓰기도 했던 그는 그래서 더더욱 이 작품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는 그를 이달 초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만났다.

"중국군 궤멸한 을지문덕은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김진명은 우리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때에 따라 바뀌기는 하더라도 항상 맨 마지막까지 이름이 남는 인물이 을지문덕이라고 했다. 을지문덕의 인품이나 인격에 매료된 것이 아니라 그가 을지문덕을 지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을지문덕 장군은 전투병만 113만 명이고, 전쟁을 도운 자까지 합하면 300만 명 가까이 되는, 2차 세계대전 말고는 역사상 최대의 병력이 동원된 중국 침공군을 완전히 궤멸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김진명의 말마따나 113만 명이라면 맨손으로만 공격해 와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산맥일 터,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이런 초대규모의 병력을 얼마 되지 않은 고구려의 인구를 지휘해 전멸시켰다는 것은 분명 길이길이 빛내야 할 일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을지문덕과 그의 혁혁한 전공이 있는 살수대첩을 '역사 용어' 수준 이상으로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과거의 영웅을 그려 미래의 영웅을 불러보겠다"며 <을지문덕전>을 쓰기는 했지만, 을지문덕에 관한 작업은 이것 말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고구려의 영웅 을지문덕이 이런 홀대를 받았던 것은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또 그의 집안은 어떠했고, 어떻게 살았고, 언제 죽었는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 만큼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도 한몫했으리라.

"중국에게 '고구려는 변방국가가 아니다' 알려주고 싶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영국에 가면 골목마다 추앙하는 동상들이 많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냐고 물으면 심지어 몇 백 년 전에 살았던 골목대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늘 기억해야 할 인물이 연구조차 안 되었지만 우리는 이를 의식하지 못한 채 너무도 편안하게 잘 살고 있잖습니까."

김진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작업을 시작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써낼지 몹시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비록 소설이 허구이지만 사실보다는 진실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타 한타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미흡하지만 써냈다고 했다.

"금명간 중국은 우리에게 을지문덕이 한겨레라는 실증적 증거를 내놓으라고 들이칠 기세인데, 우리 학계에서 을지문덕이 선비족이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제가 <살수>에서 되살린 이게 우리 역사의 뜻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김진명은 을지문덕은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사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패함으로써 망한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자 진실이기에 중국으로서도 어쩔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제가 을지문덕을 이렇듯 내세우는 것은 내부적으로는 우리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자는 취지도 있지만, 중국에다 대고 '너희들 역사를 올바로 제대로 봐라, 고구려는 수를 멸망시킨 나라이고 변방국가가 아니다' 라는 사실을 알려주자는 의도입니다."

"이 작품은 소설, 하지만 메시지는 역사에 대한 관심 촉구"

김진명은 이 작품을 쓰면서 중국 측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고 했다. 특히 <시경>의 '한협편'을 끌어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었다고 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수나라의 한 사관이 찾아낸 '상서'라는 문서에서 비롯되는데, 중원을 통일하고 황위에 오른 양견이 자신이 천자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제례를 준비하던 중 요순시대 순임금이 즉위 후 '동방군자국'에 사신을 보내 예를 갖추었다는 기록을 발견하곤 진노한다.

여기서 '동방군자국'은 <시경>의 '한혁편'(韓奕篇)과 동한시대 왕부(王符)가 지은 <잠부론>(潛夫論)에 따르면, 바로 '고구려'였다는 것이다.

"일개 소국이면서도 수나라에 조공도 바치지 않는 고구려를 찾아가 예를 갖추었다는 것은 양견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래서 양견은 남아있는 기록을 불태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구려와 전쟁을 선포합니다."

한편 을지문덕은 또 어떤가. 첩자를 통해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안 을지문덕은 영양왕을 찾아가 묘책을 일러준 후 수나라가 보낸 사신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림으로써 전쟁을 촉발한다.

"역사소설의 형식을 갖추려다 보면 자칫 독자들이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소설입니다. 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필요성과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 촉구입니다."

"남한은 어쩔 수 없지만 북한은 달라... 핵무기없이 일본과 충돌한다면?"

<살수> 얘기는 이쯤에서 접고, 최근 북한에서 그의 출세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가장 인기 있는 소설로 대접받고 있다는 얘기로 화두를 옮겼다.

김진명은 누구인가

신춘문예나 문학상 같은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고 전작 장편소설을 발표함으로써 작가가 된 김진명은 1993년 북한 핵 위기 상황에서 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450만여 부가 팔린 것을 비롯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모두 800여만 부 이상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내는 작품마다 화제를 몰고 오는 김진명은 대중적인 작가임에도 ‘극단적 민족주의자’ 또는 ‘과도하고 거친 상상력의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도 한다.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어려워진 가정형편과 민주화운동을 하던 형이 불행한 일을 당한 것을 계기로 작가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으로는 <하늘이여, 땅이여> <한반도> <코리아닷컴> <황태자비 납치사건> <바이 코리아> <제3의 시나리오> <도박사> 등이 있다.
지난 달 북한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 때 북한 신세대 작가 장수봉(37)이 극찬했다는 보도도 있었고, 지난 3월에 나온 주간 <통일신보>가 "남조선에서 민족문학 작가들에 의해 겨레의 화해와 단합, 통일의지를 반영한 좋은 문학작품들이 많이 창작됐다"며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호평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진명은 기자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관한 얘기를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이번 인터뷰의 본론이라는 인상을 풍기며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끄집어냈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남한은 노태우 대통령이 모든 걸 포기한다고 선언해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민족자존심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이 주장을 편 그가 내세우는 논거는 이랬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핵연료조차 연구할 수 없는 남한의 입장과 똑같은 것을 북한에도 요구하는 것인데, 핵의 평화적 이용이 뭡니까. 핵 발전 아닙니까. 앞으로는 석유의 시대가 가고 원자력 시대가 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양질의 우라늄광을 많이 갖고 있는 북한이 핵연료조차 연구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김진명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이용, 발전시켜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이 당연한 논리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김진명은 북한의 핵무기 제조를 억제해야 하는 미국의 목적은 결국 중국에 대한 견제가 아니겠느냐며,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것이란 두려움은 이제 버려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들어 남한과 중국이 가까워지니까 미국은 당연히 북한을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고 또 북한을 공격할 경우 북한이 곧바로 중국의 품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미국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보수·진보 모두에게서 비판 받지만 신경 안 써"

그는 또 미국의 강요로 남북 모두 핵을 포기하는 데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활용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일본과의 충돌을 염두에 둔 게 아니겠느냐며 김진명은 만약 핵무기조차 없는 한반도와 일본과 충돌이 일어날 경우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다. 따라서 외세를 불러들인다는 비판이 있겠지만 현실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고는 해결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일 간 전쟁 억제력으로서도 미국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말하는 그는 그렇지 않다면 한국과 일본 간에 존재하는 엄연한 군사적 불균형을 해소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군부가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자고 했다. 지금 북한 군인들에게 더 나은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한데, 그동안 도움을 받기만 했지 주지는 못했던 점을 감안하여 이젠 국제사회를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외화도 벌어들일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 맡기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다소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지만 김진명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며 그런 노력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보수에게서는 '빨갱이'라고, 진보에게서는 '골수 쇼비니스트'라고 비판을 받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김진명. 이념적 스탠스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그는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역사를 제대로 보고,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야 하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살수 1

김진명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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