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둔 시골장 인심은 넉넉하다. 이번 명절도 여성들에게는 공포의 연휴가 될까.마동욱
"우리 아들이 생지(생김치)를 좋아하는데 한 2~3일 후에 담글까?"
"워메. 그 때 담그면 맛난 것 다 빠지지. 내일 담가 김치 냉장고에 바로 집어넣으소. 그나저나 아들 며느리 손지 다 오겠구만."
"우리 메누리는 와도 일 한나도 안해. 아기만 '염병하게' 보듬고 왔다 갔다 한당게. 뭐, 저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나. 지그 집에선 다 해 처먹음서 못한다고 지랄이니 할 말이 없제."
치아가 하나도 없으신 아흔 넘으신 시어머니가 열무쌈을 그렇게 잘 잡숫는다는 얘길 하는 걸 보면 노모를 모시고 살며 며느리를 본 젊은 시어머니였다. 반대편에 앉은 또 다른 젊은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우리 젊을 때는 일 무서운 줄 몰랐는데 요즘 젊은 아그들은 왜 그런지 몰러. 아이구, 아기 낳고 잘 살아 주는 것만도 장하지. 뭘 더 바라겠나."
"그럼 장하고 말고. 새끼 낳고 안 살겠다고 내빼불면 그게 더 큰일이제."
그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아그가 어리니까 지금은 내가 봐주지만 조금 크면 그 땐 어림도 없다. 뺀질뺀질 늙은 시엄씨만 부려먹으려는 수작을 내가 봐줄 줄 알고? 아하하하~ 젊은 것도 한 땐데 젊은 것이 편히 살아야제. 같이 고생하면 쓰간디."
나중엔 국물도 없다던 젊은 시어머니는 한바탕 웃음을 웃더니 슬그머니 철없는 며느리 편을 들었다. 그 양반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혼자 웃음을 참다 보니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주부들은 도시, 농촌 구분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환갑 넘긴 우리 어머니, 명절 스트레스 없을까?
부모 형제 모두 모여 우의를 다지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우리의 미풍양속 명절.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주부들을 위협하는 '명절 증후군'의 심각성이 신문 지면 하나를 덮을 만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어 버렸다.
차례 음식 준비에 유난히 정성을 기울이는 시어머니 극성에 파김치가 되는 며느리도 있을 것이요, 명절날 아침 예의상 돈 봉투만 살짝 들고 남편, 자식 대동하고 나타나는 밉살맞은 작은 동서를 때문에 열통 터지는 큰며느리도 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리모콘 작동하듯 그 자리에 앉아 "술상 봐와라. 과일 내와라. 커피 타라" 동동거리는 마누라 쉴 새 없이 불러대는 남편까지 있으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시부모 앞에서 부부싸움을 할 수도 없고, 바쁜 와중에 구석으로 불러내 죽지 않을 만큼 패버릴 수도 없고. 그야말로 쌓이는 울화는 대책이 없을 것이다. 우리 집도 비슷하다. 달랑 외며느리 하나인 친정 엄마. 나는 결혼할 때까지 무려 30년 동안 명절 때면 도지는 우리 엄마의 '히스테리'를 보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