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동밤처럼 사는 아이들

알밤 줍기 체험 학습하던 날

등록 2005.09.15 18:10수정 2005.09.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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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순
"얘들아, 알밤 주우러 가자, 유치원 어린이들도 언니들 손잡고 모이세요."
"야! 신난다."

그 동안 부지런한 이재춘 주사님이 주워 오신 알밤을 쪄서 우유에 곁들여 3번 나눠 먹은 아이들은 자기들도 알밤을 줍고 싶다고 날마다 졸랐습니다. 비가 와서 못 가고, 바람이 불어서 못 갔는데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수풀 속에 떨어진 알밤을 주우려면 모기한테 헌혈(?)을 많이 해야 합니다.

전교생 16명과 유치원생 8명을 합해 모두 24명인 미니 학교인 우리 학교의 좋은 점은 참 많습니다. 학생 수가 적으니 노는 시간을 이용하여 얼른 할 수 있는 체험학습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학생회에서 건의하는 좋은 일도 선생님들이 얼른 받아들여 주므로 살아 있는 자치 활동을 하게 됩니다.

또 핵가족으로 형제가 많지 않아 개인적이고 가족 이기적인 습성이 뿌리 내리기 전에 전교생이 함께 움직이는 프로그램(바이올린, 사물놀이, 핸드벨)을 비롯하여 계절에 맞는 체험학습을 수시로 도입하여 소인수 학교에서 부족하기 쉬운 사회성을 길러 공동체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니 학교가 즐거운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서 공부까지도 잘 하게 됩니다. 어느 한 아이도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는 학교, 부진아가 한 명도 없는 학교, 왕따라는 단어조차 필요 없는 가족적인 학교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모기에게 물리지 않도록 출발하기 전에 미리 약을 뿌리고 밤송이에 찔리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 주었습니다.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로 가는 풍경을 눈에 익히며 꽃무릇으로 붉게 물든 언덕을 올라 야생화들과 반가운 눈인사를 나눕니다. 전교생이 나들이 가는 '알밤 줍기 체험 학습'에서 아이들과 함께 누리는 이 행복.

문득 날이 새기 바쁘게 알밤을 주우러 풀이슬로 바짓가랑이를 다 적시던 어린 날이 그림처럼 떠올랐습니다. 밤나무가 없던 우리 집은 가을이면 내가 주워 온 알밤을 모아서 부엌 바닥을 파고 땅에 묻어 두시던 어머니 모습이 포개졌습니다.


저장할 방법이 없으니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설날에 쓰시던 어머니의 살림 지혜. 밤송이를 발로 잘 비비면 그 속에 하얀 머리를 하고 튕겨 나오던 알밤을 그 자리에서 까먹을 때 오도독 씹히는 그 소리까지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영상으로만 남은 유년의 언덕에서 만나는 그리운 부모님! 그리고 한가위에 사촌 언니들 손을 잡고 큰 집에 나들이 가던 그 즐거운 추억이 알밤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오늘을 더듬어 보며 친구들과 쌍동밤처럼 다정하게 지냈던 날들을 떠올리며 살았으면 합니다. 알밤 하나를 먹을 때도 알밤이 익기까지 함께 한 시간의 의미와 추억을 상기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할 수만 있다면 어린 날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벌레 먹은 밤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그 속에서 함께 살도록 창조된 생명체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이 아이들 모두 토실하게 살이 오른 알밤처럼 탱탱한 삶으로 자신의 시간을 가꾸기를 바라며 쌍동밤처럼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길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어린 날의 추억이 많기를 바라며 '알밤 줍기 체험학습'을 하였답니다. 한가위를 맞을 때마다 쌍동밤처럼 나란히 살던 어린 날의 친구들과 만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어린 날의 추억이 많기를 바라며 '알밤 줍기 체험학습'을 하였답니다. 한가위를 맞을 때마다 쌍동밤처럼 나란히 살던 어린 날의 친구들과 만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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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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