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루 입구 모습최삼경
그것이 영화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도 무슨 상관이랴, 작가 김형경은 사랑이라 불러도 좋을 사람들 내면의 지문들을 차분하면서도 명료하게 찍어놓는다. 아주 작은 미세한 느낌들조차 커다란 반향으로 울림을 주고받는 그 특별한 관계의 불안하고도 가슴졸이는 소통의 양식.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겪고 지나간 격류였을 것이며, 또 얼마를 몰아칠 물결일 것인가.
사랑에 관한 금언들은 많지만 <은밀한 생>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 연인들, 부부들이란 동일한 인간들을 지칭하지 않는다. 태고의 어둠 이래 사랑에 빠진 자는 오래 전부터 그의 가족, 친척들, 그리고 집단이 그에게 마련해준 교환에서 빠져나온 여자 혹은 남자를 가리킨다”고 정의했다.
사랑을 하는 동안은 그만큼 각성된 느낌에 맴돌게 마련인가 보다. 작품 속에서 인수와 서영은 각자의 배우자를 돌보면서도 빨주노초파남보, 도레미파솔라시, 희로애락애오욕 등 빠른 템포의 느낌들로 순간 행복하고 순간 상처받는 희비쌍곡선을 스타카토 리듬으로 변주한다. 또 거기에는 차가움, 뜨거움, 간지러움, 부드러움, 아픔, 전율, 압박감 등의 감정들이 범상한 일상들을 밑동부터 뒤집어 놓는다.
영화와 소설의 주 무대가 되었던 삼척의료원과 죽서루는 왠지 지독한 사랑을 하고 이제는 짐짓 시치미를 떼는 느낌을 준다. 영화 촬영지라는 비상(非常) 속에 있다가 이제 또다시 그렇고 그런 소도시의 일상으로 돌아간 모습이지만, 이웃한 일본은 물론이고 멀리서는 터키에서까지 온다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으로 조금은 활기를 띠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