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세린이 잘 있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님이 '보리쌀'을 보내주셨습니다

등록 2005.09.26 22:22수정 2005.09.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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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느껴지는 무게와 쿵쾅거리는 설렘이 비례하고 있었다. 행여나 떨어질세라 박스 모서리를 겹겹으로 둘러친 테이프가 보낸 이의 고운 마음을 대신 전하고 있었다. 박스 겉포장엔 이미 '보리쌀'이라고 써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성급함에 테이프를 뜯는 손이 이리저리 뒤엉키고 있었다.


보리쌀, 그리고 편지 한 통
보리쌀, 그리고 편지 한 통김정혜

뚜껑이 열리는 순간. 맨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정작 보리쌀이 아니라 하얀 봉투였다. 분홍색의 하트 스티커로 곱게 봉인된 하얀 봉투가 보리쌀 위에 얌전히 놓여져 있었다.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었다.

편지! 편지를 받는다는 건 먼 옛날 적이나 마흔이 넘은 지금이나 한결같이 설레는 일임을 나는 새삼 확인했다. 하얀 봉투를 본 순간, 아스라한 과거 속의 어느 한순간처럼 심장이 튀어 나올 듯 요란스레 요동치고 있었으니 그보다 더 분명한 확인이 뭐 더 필요할까.

"님의 글 즐겨보고 있답니다. 저희 신랑을 통해 자주 들러 봅니다. 어쩜 그렇게 글이 정겨운지, 정말 우리 사는 이야기 그 자체예요. 앞으로도 행복한 글 많이 써주세요. 저희 친정 쪽에서 보리쌀 농사를 지었거든요. 맛보세요. 밥에 섞어 먹으면 맛이 아주 좋아요. 보리쌀 많이 드시고 건강하세요. 세린이 엄마가."

'세린이 엄마가'라는 마지막 글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린이는 장○○ 시민기자님의 딸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장 기자님의 아내. '세상에 고맙기도 하여라'라는 탄식이 절로 흘러 나왔다.

장 기자님과는 아직 일면식이 없다. 그러니 세린이 엄마와도 일면식이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일. 그럼에도 이렇듯 정겨운 편지를 보내다니… 순간, 희열의 전류가 찌릿찌릿 섬광을 번쩍이며 내 온 몸 곳곳을 숨 가쁘게 관통하고 있었다.


"엄마! 세린이에게도 추석 선물 보내주면 안 돼요?"
"누구? 세린이? 세린이가 누구야?"

"<오마이뉴스>에 나오는 세린이 있잖아요. 엄마가 저번에 사진 보여주었잖아요."
"아! 그 세린이. 왜, 세린이에게도 선물 보내고 싶어?"
"네. 친구니까요."


'사는이야기'에 기사를 쓰는 대부분의 시민기자들에게서 나는 진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이 들려주는 부모님 이야기, 부부 이야기, 또는 아이들 이야기, 이웃들 이야기… 그들의 삶이 바로 내 삶인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는이야기의 지면을 채우는 수많은 일상들은 바로 오늘 나의 일상임에 기사 한 꼭지 한 꼭지가 또 시민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연히 정겨울 수밖에 없다.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기사를 접할 때면 그 기자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또 부모님께 늘 부족한 자식으로서의 나 자신을 반성한다. 금슬 좋은 부부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면 그들의 부부사랑에 대해 또 한수 배운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마음에 대한 기사를 읽다보면 나는 어김없이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이에게 항상 눈높이를 맞추려 나름대로는 노력한다고 떠벌리지만 어느 순간, 내 욕심 속에 갇힌 아이를 불현듯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 시민기자님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다. 특히나 장 기자님의 부모님을 생각하는 그 애틋한 마음은 언제나 나를 깊이 반성하게 한다. 나도 모르게 장 기자님의 기사에 댓글을 다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고 어느 순간 가까운 피붙이 같은 살가운 정도 느끼게 되었다.

또 장 기자님의 딸아이인 세린이에 대한 기사를 읽다보면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마치 내 딸아이를 보는 것 같아서이다. 내 딸아이에게 기사를 보여주기도 했다.

유난히 친구 욕심이 많은 딸아이는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 없이 그저 화면에 나타난 사진 한 장에 눈도장을 찍는 것으로 세린이를 제 친구라 저 혼자 결정지어 버렸다. 그리곤 가끔 묻는다. "엄마. 세린이 잘 있대?"라고.

추석 전. 여기저기 보낼 선물을 포장하느라 한창 분주한 참에 딸아이는 난데없이 세린이 이야기를 불쑥 꺼냈던 것이다. 기특하게도 딸아이는 세린이를 잊지 않고 있었고 추석선물을 보내주고 싶어 안달을 해댔다.

굳이 딸아이의 성화가 아니더라도 장 기자님께 추석을 핑계 삼아 내 마음의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던 게 속일 수 없는 나의 본심이었던지라 그저 마음만 실어 보낸다는 궁색한 변명과 함께 작은 선물을 보내드렸었다.

추석을 보낸 며칠 후, 낯익은 이름 석자가 적힌 묵직한 박스 하나가 나를 찾아 들었다. 박스엔 보리쌀과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쓴 세린이 엄마의 정성스런 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코스모스가 예쁘게 그려진 편지지 한 장의 무게는 하늘하늘한 새털 같았지만 세린이엄마의 따뜻한 마음은 보리쌀 무게 몇 곱절로 쉽게 들 수조차 없을 만큼 묵직했다.

요즘, 누구나 그럴 것이다. 손수 볼펜으로 또박또박 정성어린 편지를 쓰는 일도 또 그런 편지를 받는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일상의 모든 안부들은 전화나 메일이 또는 간단한 문자메세지가 편지를 대신하고 있다.

밤새워 편지를 쓰고 혀끝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침을 발라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내고 또 받았을까 궁금해 하고, 더불어 답장을 기다리는 그런 아련함은 이미 추억 속의 한 페이지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인 것 같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런 아련함을 맛보았다. 하트모양의 분홍 스티커를 조심스레 떼면서 곱게 접힌 편지지를 펼치면서 또박또박 적힌 까만 글씨를 보면서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익히 잘 아는 지인에게서가 아니라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그런 정겨운 편지를 받았으니 그 감동이야 더 말해 무엇 할까.

장 기자님의 글 속엔 따뜻한 온기가 스며 있음에 늘 부러웠었다. 이제야 그 당연함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따뜻한 아내와 일심동체를 이루고 있으니 그가 쓰는 글 또한 어찌 따뜻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 부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창부수란 말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 세 식구는 세린이 엄마가 보내준 보리쌀을 아주 오랫동안 매 끼 밥상에서 날마다 만나게 될 것이다. 숟가락에 수북이 담은 밥을 입 속으로 밀어 넣을 때마다 나는 늘 세린이 엄마의 따뜻한 마음을, 그리고 하얀 봉투 속에 들어 있던 그녀의 정겨운 마음을 떠올릴 것이다. 아마도 밥그릇수가 더해 갈수록 쌓이는 정도 더더욱 깊어질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렇듯 마음을 주고받은 우리의 인연의 깊이는 과연 얼마쯤일까. 그 인연들이 채워주는 내 삶의 깊이는 또 얼마쯤일까. 내 삶이 하나의 동그라미라면 분명 내 동그라미는 점점 커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채워갈 내 삶의 동그라미! 과연 얼마나 큰 동그라미가 될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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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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