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과연 작심한 걸까?

[김종배 뉴스가이드] 금산법 '윈-윈 해법'에 대한 의구심

등록 2005.09.28 09:14수정 2005.09.2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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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오전 중앙언론사 경제부장 2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 간담회를 갖고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오전 중앙언론사 경제부장 2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 간담회를 갖고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연합뉴스 김동진

노무현 대통령이 작심을 한 걸까? 언론은 "그런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럴 만도 하다. 노 대통령이 어제 중앙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쏟아낸 삼성 관련 발언들은 분명 지배구조문제를 겨냥한 것이었다. "(금산법에 대한) 삼성 태도에 좀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고 "재벌기업 지배구조문제나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규제하는 정책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사회규범이라면 최대한 맞춰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재경부의 금산법 개정안 왜곡경위에 대해 내사를 지시한 후에 나온 '삼성 비판'이기에 "노 대통령이 작심한 것 같다"는 분석이 힘을 얻을 만도 하다.

노 대통령이 작심했다? 돌다리 한번 두드려보자

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법, '혹시'가 '역시'가 되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은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 무익한 일은 아닐 것이다.

노대통령은 삼성 지배구조문제를 거론하면서도, 그래서 그 핵심이 되는 금산법 개정을 언급하면서도 단서를 달았다. 이른바 "윈-윈 해법"을 찾자는 것이었다.

"정부가 이 문제를 일도양단식으로 잘라버리면 다음에는 경영권 유지에 관한 문제를 놓고 한참동안 많은 싸움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정부가 이 문제를 칼로 무 자르듯이 싹둑싹둑 자르기가 쉽지만은 않은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정부는 원칙과 위신을 유지하고 삼성은 인수합병 위험에서 벗어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하는 타협적 대안이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노대통령이 언급한 "타협적 대안"에 대해 모든 언론은 그것이 유예기간을 도입하는 방안이라고 보도했다. 재벌금융사의 계열사 지분 보유 한도를 5%로 설정하고 그 초과분을 처분토록 하되 처분 유예기간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은 금산법 개정안을 제출한 박영선 의원이 제시한 '유예기간 5년'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나 1] 5년 유예? '원 위치'나 '영영'은 아닌가


"혹시 무늬만 돌다리 아닐까"하는 의구심은 이 지점에서 싹튼다.

5% 초과분 처분기한을 5년 보장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황은 대선과 총선이다. 5년 유예기간 중간 시점에 대선과 총선이 치러진다. 그에 따라 정치지형은 변화될 것이고 금산법 개정 논란은 '잊혀진 이슈'가 돼 있을 것이다. '원 위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힘든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런 우려는 기우라고 말한다. 박영선 의원의 경우 유예기간을 5년 주지만 연도별로 단계적 처분을 강제하기 때문에 '원 위치'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단계적 처분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앞으로 국회서 논의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국회 논의결과에 따라 단계적 처분이 될지, 아니면 5년 후 일시처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설령 국회서 단계적 처분방안이 마련된다 해도 삼성이 '배째라'로 나오면 방법이 없다. 과태료를 부과할 수는 있겠지만 '껌값'을 걱정할 삼성이 아니다.

그 뿐인가. 유예기간 5년 동안 발생할 상황 중에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포함된다.

삼성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유예'는 '영영'이 된다. 재벌금융사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을 규정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위헌이라면 재벌금융사의 계열사 지분 제한을 규정한 금산법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혹시나 2] 삼성을 되풀이한 노 대통령의 '적대적 인수합병론'

물론 이 모든 건 가정이다. 그저 하나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무늬만 돌다리'니까 부수자는 주장은 성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 노 대통령의 어제 발언 중 놓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노대통령은 '타협적 대안'을 거론하면서 "삼성은 인수합병 위험에서 벗어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공정거래법 개정 논란이 일었을 때, 또 금산법 개정 논란이 빚어졌을 때 삼성이 내세웠던 논리다. SK와 소버린의 분쟁을 예로 들면서 재벌 금융사의 계열사 의결권과 지분을 제한하면 삼성이 외국 자본의 공격대상이 될 것이란 주장이었다.

그 주장을 노 대통령이 되풀이한 것이다. 삼성이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을 제기했을 때 다수의 전문가들이 상상 속의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적대적 인수합병 대상인 삼성전자의 경우 SK와는 달리 주주가 분산돼 있고, 외국인 주주들도 나뉘어 있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반론이었다.

이 반론을 모를 리 없는 노대통령이 삼성의 '적대적 인수합병' 논리를 '리바이벌' 했다. 노 대통령의 '리바이벌'에 복선이 깔렸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런 상황 인식을 갖고 있다면 실천의지가 얼마나 될까 우려될 뿐이다.

대통령이 질책하는데도 결연한 재경부

참고로 한 소식만 전하면서 마무리하자.

노 대통령이 경제부장단을 만나 삼성문제를 언급한 직후 재정경제부가 기자들에게 자료를 배포했다. 재경부는 이 자료를 통해 문제가 된 금산법 개정안 부칙은 "지난 사안에 대한 해석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강제 매각은 소급입법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노 대통령이 면전에서 질책을 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내사를 지시하기까지 했는데도 재경부의 '결연함'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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