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학교 풍경 2인권위 김윤섭
하지만 이 말을 신문이나 방송에서 아무 때나 쓰면서 일부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친구라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런 문제 제기가 단순히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병신, 바보, 불구로 부르던 사람들을 장애자로, 다시 장애인 또는 장애우로 부르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공공기관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은 여전히 남녀 공용이다. 또 사람들은 모든 장애인들은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무조건 일방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성별, 나이, 종교, 기호 따위를 싹 무시하고 오로지 '장애'만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 다음에 붙는 '사람'과 '벗'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초라하고 볼품없다.
'장애'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차별과 편견은 그 말에 맞서는 단어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쓰기 시작한 뒤에도 오랫동안 '장애인'과 맞서는 말은 '정상인'이었다. 장애인은 정상이 아닌 사람, 뭔가 잘못 되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상품으로 치자면 '불량품'에 해당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예전에 쓰던 병신, 불구 따위의 말과 그 뜻이 별로 다르지 않다.
'일반인'도 많이 썼는데 '일반'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부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에 두루 걸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일부'는 특별히 잘나거나 못난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사람을 잘난 순으로 죽 늘어놓았을 때 가장 뒷줄을 차지하는 어떤 무리, 보통 사람인 나보다 못난 사람들이 된다. 그런데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바라본다면, 절대적으로 나보다 못난 사람은 없다. 네살짜리 딸아이도 나보다 나을 때가 있는데 어떻게 어떤 사람들보다 내가 모든 면에서 더 낫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요즘은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쓴다. 어색한 한문투 단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장애인과 맞서는 단어를 꼭 써야 할 때는 하는 수 없이 이 단어를 쓴다. 말 그대로 하는 수 없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