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79회

등록 2005.10.07 08:13수정 2005.10.0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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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병문은 고개를 끄떡였다.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인물들에게 있어 옷가지나 뼈 조각이 남아 있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죽었을 것이라 단정 짓는 성급한 판단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단지 추정할 뿐이다.

"그렇다고 살아 계시다는 다른 증거가 있는가? 살아 계시다면 왜 지금까지 돌아오시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속하도 알 수 없소. 다만 그 약초 캐는 노인의 말로는 그 사건이 발생한지 열흘정도 지난 뒤에 부상당한 사람이 움막에 왔었다고 했소. 열흘 정도라면 상대부의 옷자락이 발견된 시기와 일치하오."

"…!"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인물의 외모나 말투가 우리가 찾던 상대부와 일치하고 있었소. 부상이 심했지만 대충 치료해 주자 반나절 정도 쉬다가 급히 떠났다고 했소."

외모나 말투는 흉내 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특히 환관의 말투와 외모는 누가 보더라도 확연하게 구별되기 때문에 잘못 보았다고 흘려버릴 수도 없다. 더구나 상대부는 천관 최고의 고수다. 연병문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군."


연병문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이 일은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 전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전연부의 말은 모든 정황으로 보아 신빙성을 더해가고 있었다. 전연부의 말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백결이 실수한 것일까? 그럴 리 없다. 그는 분명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상대부 만큼은 자신이 직접 손을 쓰고 확인까지 했다고 전해왔지 않은가?)


연병문은 내심 당황스러웠지만 더 이상 내색하지 않았다. 전연부의 보고는 거짓이 아니었다. 거짓이 아니라는 진위 여부를 가릴 사람도 사실 자신을 비롯해서 세 명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누군가가 보고 전해주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 연유야 어찌되었건 일단 이 일의 수습이 먼저였다. 자칫 지금까지 계획하고 진행해 왔던 일이 틀려질 수가 있었다.

"지금까지 자네가 한 말 모두 함태감께 보고 드렸는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연부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함태감까지는 아니다!)

바로 그것이었다. 이미 함태감에게도 똑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연병문이 함태감께 보고했는지 여부를 묻는 것은 분명 꺼리기는 바가 있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전연부는 고개를 저었다.

"대부분… 하지만 상대부께서 살아계실 것 같다는 말씀은 확신이 없어 말씀드리지 않았소."

분명 거짓이었다. 전연부는 자신과 조궁의 생명을 가지고 모험하고 있었다. 만약 함태감까지 이번 일을 계획한 주동자라면 두 사람의 목숨은 열 개가 있어도 모자랄 것이다.

"잘했네. 보고란 추측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네."

연병문이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사신을 죽이는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네. 전쟁을 불사한다는 것이지. 더구나 대명의 사신을 죽인 일은 절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네. 이미 현 황상께서는 달탄을 정벌하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시네."

당연한 일이었다. 영락제는 그 간 북방을 위협하는 달탄을 정벌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부적으로 정리만 된다면 어차피 단행해야 할 일이었다.

"아마 그 시기는 우기(雨期)가 끝나는 두어 달 후가 될 것이네. 이런 와중에 상대부가 살아 있다는 불확실한 소식을 보고하게 되고, 그것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 결과를 생각해 보았는가?"

은연중에 입을 다물라는 암시가 섞인 말이었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만약 달탄의 기마병이 섞여 있기는 했어도 사신 일행을 죽인 인물들이 한인들이었다는 말과 함께 상대부가 살아 있다는 보고가 들어간다면 다시 조사에 들어가야 할 일이었다.

아무리 달탄을 정벌할 명분을 찾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런 보고가 정식으로 올라간다면 정벌 계획을 늦출 가능성이 많았다. 그 와중에서 그 보고 중 하나라도 허위가 있다면 보고자는 물론 그 관련자들은 문책을 면치 못할 것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올렸던 보고와 상이한 내용으로 황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은 용서되지 못할 일이었다.

"일단 본관이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는 것이 우선일 게야. 그 약초 캐는 자가 도대체 어디 있던가?"

"이미 말씀드린 데로 그 노인에게는 다시 찾지 않기로 약조했기 때문에…."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연병문의 억양이 높아졌다. 그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이리 중차대한 일에 지금 그 따위 약초 캐는 자와 한 약조에 연연해 할 때인가 말일세."

말투는 단호했다. 말을 하지 않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 자가 지금 움막에 있으리란 보장도 없소이다."

변명이라고 해 보았지만 연병문의 태도는 완강했다.

"상관없네. 그 움막이 있는 위치가 어딘가?"

전연부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사건이 난 장소에서 남서쪽으로 삼합파(三合派)라는 데가 있소. 그곳 왼쪽 계곡을 타고 올라가면 산 중턱 쯤에 있소."

삼합파는 본래의 명칭은 아니지만 세 개의 물줄기가 합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 연병문은 노기를 거두며 은근한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본관이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보고를 올릴 것이네. 자네들은 그 동안 고생이 많았으니 며칠 이곳에서 푹 쉬고 있게."

전연부와 조궁을 배려해 주는 것 같았지만 그 말을 들은 전연부와 조궁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자신들을 잡아두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연병문을 만나러 올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었다.

"나가면 안내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네."

축객령이었다. 전연부와 조궁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포권을 취하고 그곳을 나갔다.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연병문의 얼굴에는 살기가 일었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반대쪽 문이 열리며 좌후범(佐厚範)이 모습을 보였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연병문의 눈치를 보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삼합파 근처에는 움막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방원 십 여리 안에 아무 것도 없는 곳을 선택했고, 속하 역시 일이 있은 후 세밀하게 조사했지만 움막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이미 연병문의 얼굴에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연병문이 얼마나 냉정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비정한 인물인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좌후범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그 사건의 전말을 그렇게 세세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지? 마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말을 할 수가 있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분명 목격자로부터 듣지 못했다면 그렇게 정확하고 세세하게 말할 수 없었을 터였다. 좌후범은 고개를 숙였다.

"자네는 큰 실수를 했군. 백결의 실수로 돌리기에는 자네의 실수가 더 커."

이것은 명백히 질책이었다. 자신의 목이 열개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실수였다. 좌후범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연병문에게 분명 단 한명의 목격자도 없다고 보고했다. 백결 역시 비슷한 전갈을 해 온 바도 있었다.

"조속히 확인하겠습니다."

"일단 그 쪽에 연락을 해서 다시 확인하도록 해. 전연부와 조궁을 잘 지켜봐. 자네가 확신하듯이 그들이 만났다는 약초 캐는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라면 그 정황을 누구에게 들었는지도 반드시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일단은 다행이었다. 일이 다시 주어진다는 것은 일단 이 일에 대한 추궁은 어떻게 마무리를 잘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귀로 연병문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어왔다.

"백결이… 정말 실수하고 허위 보고를 한 것일까? 아니면 딴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일까…?"

연병문의 미간은 좁게 좁혀져 골이 파이고 있었다.
(제 68 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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