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해체해 개구멍을 통과하다

[백두대간 종주이야기] 문장대-시어동 갈림길- 밤티재-늘재

등록 2005.10.11 14:57수정 2005.10.1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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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속리산 암릉 전경

속리산 암릉 전경 ⓒ 정성필

문장대부터는 매우 위험한 암릉 구간이다. 문장대부터 벌재 구간까지는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바위와 바위로 이어지는 암릉 구간이다. 백두대간은 늘 걷기만 하는 구간으로만 되어있는 게 아니다. 때론 바위에 매달리고 때론 기어가야 하고, 때론 손끝에서 발끝에서 쥐가 나도록 기어올라야 하는 구간도 있다. 그 위험천만한 구간이 비로소 시작된다.

백두대간을 결심하고 체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관악산 산행을 한 일이 있었다. 백두대간이 얼마나 험한지 얼마나 위험한지 미리 느끼기 위해 관악산을 등산로로 다니지 않고 길 없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내 앞을 가로 막아선 바위. 나는 그 바위를 넘기 위해 10분을 넘게 살펴야 했고 겨우 올라갈 수 있는 틈을 발견하고 바위에 도전을 했다. 엄청나게 큰 바위도 아니고 겨우 3, 4 m의 높이 밖에 되지 않는 바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30분을 넘게 바위와 싸운 끝에 왼쪽발 복숭아뼈에 심각한 상처를 남긴 후 겨우 그 바위를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바위에 맞닥뜨리는 일이 없도록 빌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산을 몰랐고 또 바위는 더더구나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약간의 고소공포증도 있었다. 바위는 대게 고소공포증과 함께 삶과 죽음의 선택을 강요한다. 붙잡을 수 있는 나무도 없고 혹 떨어지더라도 완만하게 내 몸을 굴려줄만한 낮은 구릉지나 완충지도 없이 딱딱한 부닥침을 제공한다. 바위만 나타나면 나는 오금이 저리고 몸에 힘이 빠지고 무서워 벌벌 떨기까지 했다.

덕유산을 갈 때 할미봉의 암릉을 넘을 때도 나는 오랜 시간 지체해야 했다. 게다가 내 등엔 무거운 배낭까지 매달려 있지 않은가. 길은 가야 하는데. 앞으로 나가야 길을 갈 수 있는데 바로 눈앞에 바위로만 이루어진 낭떠러지에다 달랑 밧줄 하나만 매달려 있다. 어찌해야 하는가? 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a 문장대

문장대 ⓒ 정성필

전날까지의 패기와 당당함은 문장대를 내려서자마자 주눅들었다. 하지만 이 길을 가야 다음 길을 걸을 수 있고 다음 길을 가야 그 다음을 갈 수 있다. 길은 한걸음을 내디뎌야 다음을 갈 수 있다. 여기서 멈추고 한걸음을 걷지 않으면 다음을 갈 수 없다.

나는 밧줄에 매달린다. 팔에 힘을 주고 다리는 단단하게 바위를 딛고 선다. 배낭이 무게 때문에 등에서 좌우로 논다. 배낭의 무게 때문에 흔들리다 보면 중심을 잃어 위험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여기서 중심을 잡는 일은 곧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다.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좌우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흔들리다 어느곳이든 몸이 추락하는 순간 까마득하게 떨어져 버리고 만다. 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조난을 당한다면 끔찍한 일이다.

묘를 지나 개구멍 바위를 통과하는데, 배낭이 커서 지나갈 수가 없다. 이리저리 개구멍 통과를 시도해보지만 할 수 없다. 배낭을 메고는 도저히 갈 수 없다. 배낭을 해체해야 한다. 어느 길 하나를 지나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것을 다 꺼내야 한다. 길은 단순히 지나가게 하지만 않는다.


a 개구멍

개구멍 ⓒ 정성필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나는 나를 해체해야만 다음 길을 갈 수 있음을 안다. 매트리스와 배낭을 분리하고 배낭 속에 있는 몇 가지 물건을 꺼내 배낭을 날씬하게 한 다음 개구멍 저쪽으로 차례로 밀어놓고 비로소 몸을 빼낸 후 다시 배낭을 꾸려 걷는다.

이 길은 걷는다라기보다는 '유격훈련을 한다'고 해야 한다. 기어가고 매달리고 점프하는 수많은 동작을 반복한다. 걸음은 아주 평탄한 길에서나 가능한 일. 암릉으로만 이루어진 길에서는 걷는 것은 일종의 희망사항이다.


나는 암벽전문도 아니었고 산을 아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나에게 도전하고 싶어 가는 길, 그러나 포기할 수 없어 이 길을 팔꿈치로 무릎으로 기어간다. 배낭이 긁혀 찢어지고 무릎이 바위에 부닥쳐 멍들고 팔꿈치가 까진다. 내 몸 멍드는 일이야 상관없다. 다치면 무엇하랴. 다만 다치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게 걱정이어서 최대한 조심한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곳곳에 다치는 상황은 계속된다. 심각한 부상만 없기를 바란다.

이 구간에서는 나무 스틱을 계속 사용할 수 없다. 그동안의 걸음과 함께했던 정들었던 나무 스틱을 던져버려야 한다. 버린다는 것. 이별한다는 것. 모두 가슴 아프다. 정든 것과 헤어지는 것은 어쩌면 내 몸에 가장 잘 적응해낸 혹은 내가 길들여 놓은, 아니 내 몸이 편리하게 적응한 그 무언가와 이별을 고하는 일이다.

버리는 일은 결단이다. 비록 값을 주고 구한 물건이 아닌 나무 쪼가리에 불과한 나무 지팡이라도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던 물건이고, 그 물건과 함께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었다면, 손때가 들만큼 정이 들대로 든 물건이라면 이별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야 하는 길이 앞에 있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a 개구멍

개구멍 ⓒ 정성필

나는 백두대간 길을 걸으며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면서 왔는가? 백두대간 전에 누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다른 걸 아무리 버려도 소용없다. 정말 무언가를 알고 싶으면 딱 하나만 버리면 된다." 그 누군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하찮은 것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내가 정작 그 무언가를 버릴 수 있겠는가? 나는 백두대간 내내 버리면서 왔던 길을 생각하며 그 무언가를 버릴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나무 지팡이를 버리고 밧줄을 잡고 내려가다 기어가고 배낭을 개구멍으로 밀어 넣고 지나간다. 여기서는 소중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살아야 다음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버려야 간다.

큰 소나무에 밧줄이 매달려 있다. 저 밧줄만 내려서면 길이 편했으면 하는 소원을 가진다. 길이 험하다는 것은 온몸으로 가야 함을 말하고, 길이 위험하다는 것은 가진 것을 버려야한다는 뜻이다. 산은 나에게 아무 말 없어도 가르침을 주고 있다. 깨달음을 주고 있다. 백두대간은 나의 스승이자 내 삶의 깊은 곳을 들여다 보게 해주는 깊은 깨달음의 안내자였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다. 하지만 누군가가 바위에 빨간 페인트로 화살표를 해 놓았다. 처음엔 무슨 표시인가 의아했지만 나중에는 그게 바로 길 안내 화살표인 걸 알았다. 나는 화살표가 되어있는 곳으로 길을 간다. 처음 이 길을 간 사람들은 어떻게 바위에서 길을 찾았을까? 신기할 정도로 바위를 돌아서면 길이 나오고 바위를 넘어서면 길이 나온다. 나중 가는 사람은 얼마나 편리한가. 처음 이 길을 낸 사람들과 화살표로 길안내를 해 준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소나무에 달린 밧줄을 잡고 내려서자 길이 완만해진다. 시어동 갈림길에서 밤티재로 간다. 밤티재에서 쉬면서 나를 살핀다. 온몸이 엉망진창이다. 바위를 모르는 사람이 바위 길을 다녔으니 쓸데없이 힘을 주고 몸을 딱딱하게 만들어 더 심하게 긁히고 터진 모양이다. 오늘은 늘재까지만 가고 늘재에서 몸을 추스르고 내일 더 험난하다는 조항산, 밀재, 은치재 구간을 준비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5월 16일부터 2004년 7월 4일까지 무지원 단독종주로 걸었던 백두대간 이야기

덧붙이는 글 2004년 5월 16일부터 2004년 7월 4일까지 무지원 단독종주로 걸었던 백두대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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