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통해 인간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보다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개> 를 읽고

등록 2005.10.13 21:41수정 2005.10.1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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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닌 개들이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 개가 아니더라도 사람과 가장 가까이서 지내는 소나 닭, 돼지 등이 바라본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만 해도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바 하고는 많이 다를 성싶다.

푸른숲
얼마 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불멸의 이순신'으로 더욱 유명해진 <칼의 노래> 작가 김훈이 헐벗고 버려진 강토 곳곳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며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라 스스로 칭한 "개"를 써냈다.


문장의 대가인 작가의 글을 평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나는 책을 읽어가면서 많은 가슴 아림과 뜨거움과 동시에 애잔한 그리움을 맛볼 수 있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보리(진도개의 이름)의 눈과 가슴과 언어는 보리의 시각이면서 민초들에 대한 작가의 뜨거운 애정임을 곳곳에서 알 수 있다.

작가가 바라 본 헐벗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기에 더욱 그랬다.

"개발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여있었다. 그 굳은 살 속에 개들이 제 몸의 무게를 이끌고 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꿈이 축적되어 있었다."

개발바닥에 박힌 굳은살을 가지고 이 세상을 돌아다닌 보리의 삶은 그대로 우리 민초들의 삶이고 고통이고 기쁨임을 소설 속에서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개 보리가 바라보고 느꼈던 여러 인간들의 모습은 슬픔 속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아내려는 작가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주인할머니는 손수 가꾸신 배추 포기를 뽑아서 내던지며 울었다.
-못 가, 못 가, 난 못 가. 여기가 내 땅이지 뉘 땅이야. 날 죽이고 가라, 이놈들아.-"



댐건설로 인해 조상 대대로 살던 삶의 터전을 떠나야했던 주인할머니의 이 외침은 고향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실향민들의 외침이다. 사회의 필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고 살아가야 하는 서민들이 안타까운 모습이다.

자신이 태어난 공간이 수몰되자 보리는 주인집 할머니의 둘째아들을 따라 갯가 마을에서 살게 된다. 주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개의 운명이지만 보리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보리의 새로운 주인이 된 주인집 아들은 2톤짜리 연안 채낚기 목선을 가지고 고기를 잡으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이다. 배가 워낙 작아 바다 멀리 나가지 못하고 연안 근처에서만 고기를 잡기 때문에 새벽 무렵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고깃배엔 몇 마리 고기만이 실려 있다. 하지만 보리는 그러한 주인을 사랑한다. 보리가 바라보는 주인은 고단한 삶을 살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어민들의 모습이다.

"주인님의 몸에서 나는 경유냄새는 고단하고도 힘찬 냄새였는데, 어딘지 쓸쓸한 슬픔도 느껴지는 냄새였다. 나는 그 경유냄새를 아침바다의 차갑고 싱싱한 안개냄새보다 더 사랑했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이 풍기는 냄새였고, 내가 지키고 사랑해야 하는 냄새였다."

일하는 냄새. 그랬다. 보리가 아니 작가가 전국을 두 발로 돌아다니며 바라보고 느꼈던 냄새는 고단하고 쓸쓸하지만 싱싱한 삶을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애쓴 일하는 사람의 냄새였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일하는 손은 아름답다. 하지만 일하지 않아 매끄럽고 하얀 손에서는 생생한 삶의 냄새가 없다. 보리가 사랑한 것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하는 냄새였다.

<자전거 여행>, <문학기행>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도 발로 뛰고 땀냄새가 나고 이 국토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러한 애정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라는 이름의 '개'로 세상에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머리말에 작가가 쓴 말을 보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무얼 이야기 하려고 했는지 잘 드러난다.

"인기척 없는 산골의 공가촌(空家村)이나 수몰지의 폐허에서 개들은 짖고 또 짖었다. 나는 개발바닥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면서 어쩌면 개 짖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쉽지가 않으므로, 온 마을의 개들이 따라서 짖을 때까지, 인간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까지 나는 짖고 또 짖을 것이다."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푸른숲,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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