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천상병과 함께 돌아온 <귀천>

[인터뷰] 천상병 시인의 아내 목순옥 여사를 만나다

등록 2005.10.17 08:44수정 2005.10.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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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이 담백한 얼굴로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발에 떠밀려 어쩔 수없이 문 닫았던 <귀천>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화랑 골목, <해정병원> 맞은 편 1층으로 돌아왔다. 지난 2일(일)에 문을 열었다니까 작년 10월 이후 꼬박 1년 동안 <귀천>을 만나지 못한 셈이다.

a 찻집 새 간판 앞과 뒤. 천상병 선생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뒷면에 양각되어 있어 정겹다.

찻집 새 간판 앞과 뒤. 천상병 선생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뒷면에 양각되어 있어 정겹다. ⓒ 이동환

세 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다시 <귀천>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천상병 선생의 시와 찻집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목순옥 여사는 소문(?)없이 다시 문 연 찻집을 찾아간 기자를 소박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죽는 날까지 <귀천>을 지키렵니다

a 찻집 들머리. 새 건물이라 깨끗하다. 옛날 찻집이 그립지만…

찻집 들머리. 새 건물이라 깨끗하다. 옛날 찻집이 그립지만… ⓒ 이동환

a 찻집 안. 세 평 남짓? 좁지만 <귀천>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찻집 안. 세 평 남짓? 좁지만 <귀천>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 이동환

건강부터 묻는 기자 질문에 목순옥 여사는 찻잔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보다시피 괜찮아요. 건강해야지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거든요. 뜻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 여기 인사동 골목 끝자락에 '천상병기념관'을 세울 예정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의정부시에도 '천상병문학관'이 세워질 것 같아요. 건강해야 그 모든 일들이 마무리 되는 걸 지켜볼 수 있잖아요.

a 여전히 단아한 웃음 보여주시는 목순옥 여사. 정정한 모습 뵈니 참 좋다.

여전히 단아한 웃음 보여주시는 목순옥 여사. 정정한 모습 뵈니 참 좋다. ⓒ 이동환

운동이요? 따로 하는 건 없어요. 시간도 없고요.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인사동에 나온답니다. 하루 종일 서성이며 손님맞이하는 일까지, 그게 운동이지요(웃음). 힘은 들지만 그래도 조카가 도와줘서 이만합니다."

목 여사는, 아무래도 옛날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새 건물에 깨끗한 언저리가 아무리 좋다한들 천상병 선생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나던 먼저 찻집만이야 하겠는가. 기자뿐 아니라 단골손님들도 그 점이 아쉬울 터.


"옛날 찻집이 참 좋았는데…, 나가라니 힘없이 물러났지요. 어쩌겠어요? 정이야 담뿍 들었지만…, 그래도 인사동에 이렇게 다시 문 열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소가 워낙 아담하다 보니 열댓 명 앉으면 꽉 찰 듯싶다. 기자도 목순옥 여사를 뵈러 온 어르신들과 합석을 해야만 했다. 옛날 찻집도, 모르는 손님들끼리 무릎 맞추기 할 때가 더러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귀천>만의 독특했던 정겨움은 새로운 장소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참! 11월에, 시인과 관련 있는 행사들이 있어요. 꼭 소개해 주세요. 11월 12일과 13일 이틀 동안 의정부시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랍니다. 해마다 여는 행사지요. 시인의 시에서 이름을 딴 무용 공연이 있어요. '소풍'이라고요. 그리고 올해 일곱 번째인 '천상병문학상' 시상식이 중순쯤 '남산문학인의집'에서 있을 예정이에요. 아직 금년도 수상자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곧 결과가 나오겠지요."

기자는 잠시, 목순옥 여사가 찾아온 어르신들과 대화하실 수 있도록 숨을 한 땀 고르며 찻잔을 들었다. 기자 귀에 익은 문인들 이름과 최근 소식을 듣고 있자니 옛날에 천상병 선생이 기자에게 함박웃음과 함께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찻집이 좁다 보니 손님들 얘기가 다 들려. 구석에 앉아 있으면 어떤 손님은 내가 거기 있는 줄 모르고 별 얘길 다 해. 내 시를 갖고 이러쿵저러쿵하는데 민망할 때가 참 많지. 멋대로 해석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암송한다고 막 틀리게 외우는 거야. 그게 아니라고 끼어들 수도 없고…. 하하하!"

기자는 차 두 잔을 거푸 마신 뒤 목순옥 여사에게 인사를 드렸다. 언제나 그랬듯, 소녀처럼 맑은 웃음을 보여주시는데 기자는 잠시, 천상병 선생을 다시 뵌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귀천>에 많은 사람들이, 옛날처럼 자리가 없어 줄 서 기다리는 날도 있을 정도로 바글바글 했으면 하는 기자의 바람을 적어본다. 시인은 하늘로 돌아갔지만 그가 사랑했던 찻집과 그윽한 차 향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 모과차가 언제나 일품인 찻집 <귀천>에,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시인의 시 한 편, 낮은 목소리로 암송한다면 그 사랑, 차향과 함께 더욱 깊어질 터.

천상병 선생을 다시 떠올리며

▲ 사진 위, 카메라를 향해 손 흔드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천상병 선생. 사진 아래는 부인과 함께 해맑게 웃던 시인의 생전 모습.
ⓒ사진제공 : <귀천>

기자는 <귀천> 방문 다음 날(15일) 춘천에서, 각자가 암송하는 시 한 편을 지인들과 돌아가며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기자는 천상병 선생의 시 '새'를 암송했다. 1959년 5월에 <사상계>에 발표 되었던 시다. 지난 30여 년 동안 기자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시인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느낌과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 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덧붙이는 글 | 혹시 먼 데서 <귀천>을 찾아가실 분들이 자리가 없어 서성일까봐 예약하시라고 전화번호 남깁니다.
☎ 02-734-2828

덧붙이는 글 혹시 먼 데서 <귀천>을 찾아가실 분들이 자리가 없어 서성일까봐 예약하시라고 전화번호 남깁니다.
☎ 02-734-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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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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