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값은 받아도 장관의 지휘권은 못 받는다." 천 장관의 수사지휘서에 대한 대한민국 검사들의 집단반발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검찰총장은 획~ 검사들의 뜻을 받들어 사표를 던졌다.
검사들의 조직적이고 완강한 반발 뒤에는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언론들의 강력한 응원이 있다. 이들은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해 '헌정사상 초유의 부당한 지휘권 발동이며, 검찰독립을 해치고,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폭거'라고 비난한다.
지휘권 행사 '헌정사상 초유'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말은 똑바로 하자. 천 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헌정사상 초유'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 구성 이래 법무부장관은 항상 지휘권을 행사해 왔다. 권위주의 시대에 법무부장관들은 행패에 가까울 정도로 '수사지휘'를 남발해왔다.
1999년 박상천 당시 법무부장관이 자민련 국회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려는 일선 검사와 부장검사에게 전화로 직접 수사중단을 지시한 것은 그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천 장관의 수사지휘가 과거와 다른 것은 '은밀하고, 무대포식'의 위법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적법한 방식이란 거다.
'적법하나 부당하다',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이 던진 이 오묘한 논리를 풀어보자. 검찰청법은 검찰사무의 최고감독권을 법무부장관에게 부여하고, 장관이 일반적으로 검사를,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을 통해 지휘·감독하도록 정하고 있다.
검사를 배출하는 사법연수원의 '검찰실무' 교재는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권에 대해 '검찰권 행사에 있어서 정치적 책임이 장관에게 있고, 장관이 검찰권 행사의 평준화, 일관성을 확보할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검찰청법은 법무부장관에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검찰의 권한남용을 통제하는 지휘감독권을 부여하는 한편, 감독권한을 무차별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검사들 '법대로 수사 못 하겠다'?
한나라당류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천 장관이 법에서 정한대로 너무나 정확하게 수사지휘를 했다는 점이다. 천 장관은 강 교수에 대한 구속수사 여부라는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수사지휘의 내용은 '적법하게 수사하라', 즉 형사소송법의 구속요건에 맞게 수사하라는 것이다. 법규정과 천 장관의 지휘서 내용을 아무리 반복해서 보아도 어디가 부당하고, 어떤 것이 외압인지 상식을 가지고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결국 검사들의 집단반발은 '법대로 수사 못 하겠다'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좌우할 권한까지 가진 법집행자들이 법을 지키지 못하겠단다. 법이 정한 구속요건이 안되더라도 형사소송법을 무시하고 무조건 구속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일제시대부터 뿌리내린 폐습과 군사정부시대 수사기관의 '막가파식' 수사관행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정신 멀쩡한 검사들이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과거 권위주의시대 반인권적 수사관행에 절어 있는 검사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군대식 조직문화에 따라 후배검사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민정부 이후 반인권적 수사관행으로 비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과거에 대해 더 큰 향수와 애착을 갖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법집행방식이 위법하고 반인권적일지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고, 이런 왜곡된 믿음을 항상 '자긍심, 자부심'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경향은 국가보안법 사건을 담당하는 공안부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천 장관은 '공안사건도 일반 법원칙에 따라 수사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검찰 구태, 반인권적 수사관행 바꿔야
검사들은 최고감독권자의 감독권 행사를 두고 '검찰독립의 침해'라고 반발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검사들은 '검찰독립'이 무슨 뜻인지를 전혀 모르거나 알면서도 기존의 폐습을 고수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검찰독립'은 아무데나 갖다 붙일 수 있는 껌딱지가 아니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으며 거꾸로 행사되는 검찰권력에 대해서는 엄중한 개혁의 칼을 들이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 장관의 수사지휘의 내용은 '법원칙에 따라 수사하라'는 것이다. 이는 위법하고, 반인권적인 수사관행을 없애겠다는 엄중한 경고이고, 검찰권 행사에 있어서 구태를 없애고 원칙을 바로 세우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시대가 바뀐 줄도 모르고 자신들의 권력이 무한한 줄만 아는 권위주의에 찌든 검찰이 스스로 반인권적 수사관행을 바꾸지 못하면 국민의 의지를 바탕으로 하는 '외부의 힘'에 의해 개혁당할 수밖에 없다.
검찰의 구태, 반인권적 수사관행은 비단 '불구속수사원칙 위반'으로 끝나지 않는다. 검찰의 얼굴이라 할 서울지검에서 조사받던 피의자가 맞아 죽은 사건이 불과 3년 전 일이고, 무죄추정원칙이란 헌법규정을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고소인마저도 죄인취급하며,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의 참여권을 무력하게 하는 등 헌법과 형사소송법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는 수사행태는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앞으로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역할이 막중하다. 법과 원칙을 어기는 모든 수사관행에 대해 원칙을 제시하는 수사지휘권을 계속하여 더욱 강도 높게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는 검사들이 검찰의 이름에 먹칠하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조치해야 한다.
강금실 장관 때도 검찰의 구태를 벗기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그들의 강고한 버티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천 장관은 보다 강력하고 지속적인 지휘권 행사로 반드시 폐습에 젖은 검찰의 수사행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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