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은 내 인생', 그 의미에 천착해 보다

김훈 저 <개>를 읽고

등록 2005.10.18 22:24수정 2005.10.19 14:40
0
원고료로 응원
일단 그의 소설은 재미있다. 그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중심에는 무엇보다 그의 유려하면서도 끈적끈적한 문체가 있다. 하지만 이번 소설 <개>는 이전의 작품과는 내용상으로 크게 차이가 없지만 문체상으로 약간은 다른 느낌을 풍긴다. 또 주인공으로 사람이 아닌 동물이 등장한다는 점도 특이할 만 하다.

인간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상상


김훈은 다작의 소설가는 아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주목받아왔던 작가는 더더욱 아니다. 최근에서야 비로소 <칼의 노래> <현의 노래> <화장> 등을 통해 화려한 등단식을 마쳤다. 이전에는 때때로 수필 형식의 기행문을 통해 그의 글에 굶주린 일부 마니아 독자들을 만족시킨 언론인이자 작가로서 활동했다.

하지만 언론인의 길을 접고 소설쓰기에 매진하면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손쉽게 올라섰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내공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그의 소설들은 초지일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동반한다. 그 이해는 관념이나 상상속 인간이 아니라 우리 앞에 살아 움직이는 인간을 형상화한 데서 비롯했다. 우리는 <칼의 노래>에서 그 단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간 이순신을 애착과 집요하리만큼 강렬한 열정으로 빚어냈다.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인간에 대한 질척한 관심에서 시작한다. 그 관심은 관념의 유희나 허구속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딛고 있는 척박한 삶 속에 뿌리깊게 자리 잡는다.

"내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내가 달을 밝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내가 사람의 아름다움에 홀려 있을 때도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124p)

오죽했으면 개의 눈을 빌려 인간 삶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겠는가.


a 작품 <개> 겉표지

작품 <개> 겉표지 ⓒ 푸른숲

'개같은 내 인생' 하지만….

<개>는 다름 아닌 작가의 삶의 여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마치 한 폭의 서정시를 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전의 문체가 다소 화려하면서도 진중한 느낌을 주었다면, 이번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거의 운문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개'의 눈을 통해 우리 인간사를 바라보는 의인화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자칫 '개'라는 동물을 통해 우리 인간사를 비판이나 풍자의 잣대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인간에 대한 따뜻하고 아름다운 서정성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러기에 따뜻하고 진실한 삶의 조각들이 잘 드러난다.

'보리'라는 이름을 가진 진돗개는 다름 아닌 작가의 다른 모습이다. '보리'라는 개의 짧은 삶의 여정을 통해 작가는 진정 이 척박하고 메마른 우리네 삶의 모습에 단비를 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보리'라는 개의 눈에 비친 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시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런 소시민의 삶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행복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절망속에서도 피어나는 한 떨기 꽃과 같이….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바스락거렸고 습기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230p)

별 볼일 없는 삶이지만, 그 삶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작가는 '보리'라는 개를 통해 잔잔한 감동의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아름다운 시와 척박한 인생살이

작가는 이 작품에서 '보리'라는 개를 통해 우리의 고단한 인생살이를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그 화폭 속에는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진정한 삶의 의미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곳에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현재의 주인이 영원한 주인이다. 주인이 가끔 바뀔 수도 있는데, 어떻게 지금의 주인이 영원한 주인일 수가 있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개의 마음을 모르는 바보들이다. 개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일 뿐이다."(62p)

저자는 개의 입을 빌어 진정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런 소중한 삶의 가치를 과거나 미래에 얽매여 이야기하지 말자고 간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63p)

김훈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삶의 배경은 대부분 척박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척박하기 그지없는 삶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풍경은 대부분 아름다고 따사로워 보인다.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보리'라는 개의 눈에 비친 소시민들의 삶은 그야말로 내일을 기약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삶속에서 드러나는 풍경은 고통과 절망으로 에둘러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따뜻한 서정시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주인님의 몸에서 나는 경유 냄새는 고단하고도 힘찬 냄새였는데, 어딘지 쓸쓸한 슬픔도 느껴지는 냄새였다. 나는 그 경유냄새를 아침바다의 차갑고 싱싱한 안개냄새보다 더 사랑했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이 풍기는 냄새였고, 내가 지키고 따르고 사랑해야 하는 냄새였다."(69p)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푸른숲, 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