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소 독감예방접종을 마치고

등록 2005.10.21 15:51수정 2005.10.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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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각 마을 이장님들께 안내방송을 해달라는 부탁전화를 하고, 오늘 아침부터 독감예방접종을 했다. 이장님들께 전화를 드리면서 73세 이상 어르신들이 대상이고, 아침 9시부터 시작한다는 내용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마음이 급하셨는지 아침 8시에 이미 진료소 앞에 와서 기다리는 분들이 있었다. 어제 저녁에 미리 준비해둔 번호표를 뽑게 하고 번호표 순서 대로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의자에 앉으면 접수하면서 예진표 작성하고, 혈압 재고, 체온 재고, 주사약 뽑아 주사 놓고, 주사 맞은 후 주의사항을 말씀드린다.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하다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중간중간 문제가 생긴다. 약이 조금 나와서 나이 제한을 한 것인데, 나이가 73세가 안 된 분들이 중간에 끼어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무료만 접종해야 하는데 유료접종 대상자가 끼어있는 경우도 있다. 이장님이 방송하는 소리 못들으셨느냐고 물어보면 73세 이상된 사람만 오라는 방송소리를 듣긴 들었지만, 자기는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서 먼저 맞으려고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약이 이번에 조금 나와서 그러니까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약이 다시 나오면 접종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돌려 보냈다. 몇몇 분들은 쉽게 수긍하고 돌아가시는 반면 몇 분들은 고집을 부리신다.

“이왕 왔으니까 그냥 놔줘요. ”
“호적에 나이가 줄어서 그래요. ”
“난 겨우내 감기를 싸고 있어서 꼭 먼저 맞아야 해요.”
“집이 멀어서 그러니까 먼저 놔줘요.”…

연세가 조금 모자라서 다음에 맞으시라는 얘기를 들은 아저씨 한 분은 지켜보고 있다가 뒤늦게 나타나서 “왜 비리가 생기느냐?”고 한 마디 하신다. 무슨 얘기인가 들어봤더니 아까 주사 맞은 아무개가 자기와 동갑이란다. 그런데 왜 누구는 주사를 맞고 누구는 못 맞느냐는 얘기다. 자기와 동갑인 사람이 앉아 있어 그 사람이 주사를 맞나 안 맞나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주사를 놔주니까 따지러 온 것이다.


호적이 잘못되었나 싶어 확인을 해보니 73세가 안 된 아저씨 한 분에게 주사를 놓아 드렸다. 주사를 맞으면서 나한테 나이 얘기를 하지 않으셨고, 나는 당연히 73세가 넘으시는 줄 알고 나이 확인을 미처 못한 것이다. 나이가 적은 줄 알았으면 이 아저씨도 다음에 맞으시라고 얘기했을 텐데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원래 올해부터 무료 접종 대상자는 63세 이상이다. 그런데 1차로 약이 대상자의 40 %인 100개 밖에 지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우리 진료소 형편에 맞게 73세로 나이 제한을 한 것이다. 관할구역의 인구 중 73세 이상이 150명쯤 되니까 이 정도면 준비된 약으로는 적당한 인원이겠다 싶어 정한 나이였다. 천식이나 암환자 등 꼭 접종이 필요한 사람들은 나이가 적더라도 미리 놓아드리지만 그렇지 않은 건강한 분들은 열흘쯤 뒤에 예방주사를 맞는다고 해도 큰 문제가 아니다.


이런저런 소란 속에서 그래도 오전 중에 예방접종이 다 끝났다. 준비된 약이 다 끝나갈 무렵 예방접종 받으러 오신 분들도 마무리가 되어 다행이었다. 뒤늦게 오신 분들이 있었으면 약이 없어서 돌아가셔야 했을텐데 올해는 다행히 그런 일이 없었다.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 인원제한을 한 보람이 있었다.

오늘로 1차 예방접종이 끝났다. 다음에 약이 나오면 또 한 번의 난리법석을 피우겠지만 그래도 올해 해야할 일의 반은 끝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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