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자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모처럼 한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 뭘 할까요?

등록 2005.10.21 16:06수정 2005.10.2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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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편과 나는 전에 없이 간혹 다툰다. 다투는 이유는 늘 한 가지, 시간의 배려에 대한 문제이다. 어젯밤엔 그 일로 인해 맘이 많이 상했다. 마음 한켠에선 이해하는 맘이 있고, 다른 한켠에선 이해하지 말라는 맘도 있다.


여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사실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때는 나도 가게를(남편과 같이 하는 장사가 아닌, 옷장사) 나가고 있어서, 서로 생활하는 시간이 그럭저럭 맞았다. 난 오전 11시쯤 되어 가게에 나갔고, 일이 끝나고 남편이 일하는 가게로 오면 밤 10시가 넘곤 했다. 그러면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장사 일도 돕고 하며 함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또 집이 바로 가게 근처였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힘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름이가 자라면서 어찌보면 문제도 아닌 문제가 생겼다. 나는 이제 옷가게가 아닌 일반 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집도 가게에서 한 시간이나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다. 여름이를 나 대신 돌봐주실 엄마집 옆으로 말이다. 그나마 여름이가 갓난아기였을 때는 아이 돌보는 것만으로도 이것저것 생각할 틈이 없었는데, 여름이가 제법 자란 지금은 몇 가지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우리 부부는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난 퇴근해서 집에 오면 이런저런 일들을 마치고, 여름이와 잠이 든다. 남편은 늘 내가 잠든 후, 새벽 서너 시가 되어야 들어온다. 그러면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까지 잠깐 남편의 얼굴을 보거나,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은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고 출근한다. 대부분이 이런 생활의 반복이다. 그나마 남편과 마주할 시간은 내가 쉬는 토요일 오전, 혹은 일요일 오전 시간이다.

사실 남편의 힘든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남편의 말처럼 어쩌면 내가 욕심이 많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난 여름이에게 많은 걸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많은 시간을 함께 했으면 하고 바란다. 남편이라고 그런 걸 바라지 않는 건 아닐 테지만, 요즘 부쩍 남편은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안그래도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이 바빠지니 시간 맞추는 것이 더 어려워진 것이다. 일이 많아지면서 낮에도 일찍 가게에 나가는 듯싶다. 뭔가 늘 뚝딱 거리며 만들고 꾸미고, 이것저것 음식도 만들어보고.

가게 창문 모습입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은 조명등 입니다
가게 창문 모습입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은 조명등 입니다김미영

빈 술병을 이용해서 남편이 직접 만든 조명등입니다.   이런걸 만드느라 바쁜걸까요?
빈 술병을 이용해서 남편이 직접 만든 조명등입니다. 이런걸 만드느라 바쁜걸까요?김미영

원래는 칸막이로 쓰던 창호문이었는데, 안에 조명을 넣어 가게의 분위기를 내는데 한몫하게 했습니다.
원래는 칸막이로 쓰던 창호문이었는데, 안에 조명을 넣어 가게의 분위기를 내는데 한몫하게 했습니다.김미영
어제는 모임이 늦게 끝나서 남편과 함께 들어가려고, 남편 가게로 갔다. 일을 도와주고 있는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동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언니, 이번주 토요일에 가게 쉰다는 것 같던데…."
"왜?"
"일일찻집 그런 거 있잖아요. 그거 한다는 것 같았는데…."
"그래? 난 몰랐는데… 물어봐야겠다."

남편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을 했을 텐데, 혹시 뭘 잘못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주방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에게 다가가 물었다.


"토요일에 쉬어?"
"응."
"왜?"
"일일찻집으로 빌려줬어."
"근데 왜 나한테는 말 안했어?"
"그냥… 뭐 딴 거 할까 해서…."
"나한테 말도 안하구?"
"응."
"진짜 너무하는 거 아냐?"
"아니 아직 결정한 거 아니야. 한참전에 이야기는 하고 갔는데 어젯밤에 다시 왔더라구. 계약한다고. 너한테 말할 시간도 없었어. 내가 가게 쉬면 너가 모르겠냐? 내가 미리 말하면 넌 또 하루 종일 뭐 계획 잡아 놓을 거 아냐."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너무 서운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하는데, 남편은 그 시간을 나 몰래 다른 데 쓰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데 쓰려고 맘을 먹었어도 꼭 그렇게 말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놀래주려고 말 안 한 거지.'

이렇게만 말했어도,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남편이 시간을 좀 가지고 싶어하는 것,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 하는 남편은 저녁시간에 누구도 맘 편하게 만난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하루도 편하게 집에서 쉰 적도 없으니까 말이다. 마음 속으로는 이렇게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난 왜 진정으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를 일이다.

결국 남편과 나와 여름이는 토요일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토요일엔 남편이 좀 편할 수 있도록 무리한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요즘 저는 가족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남편과 저의 입장이 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이 다시 같아지는 때는 언제쯤일까요?

덧붙이는 글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요즘 저는 가족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남편과 저의 입장이 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이 다시 같아지는 때는 언제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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