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남녀>의 도경(권오중 분).mbc
<비밀남녀>의 '도경(권오중 분)' 역시 남자 신데렐라를 꿈꾸는 그런 인물이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 입성해서 나름대로 잘 살아보자고 발버둥치는 그런 인물이다. 그런데 잘 살아보기 위한 방법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도 아니고 돈을 악착같이 모아서도 아니다.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행운을 잡으려는, 다소 허영에 들뜬 인물이다.
겉 멋만 잔뜩 든 인간이다. 남들 명품 입고 다니니까 그거 살 돈은 없지만 흉내는 내고 싶어서 짝퉁이라도 걸치고 다니면서 폼 잡는, 뭐 그렇고 그런 종류의 인간이다. 그러니 이 인간이 서울에서 남 보란 듯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으로 택한 것도 로또식이다. 처음에는 자기가 다니는 은행에서 횡령을 꾀했는데, 마음씨 좋은 상사를 만나 그래도 감옥행은 피하게 되고 직장에서 잘리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그래서 다음 방법으로 택한 게 멋진 여자, 돈 많고 명예도 있는 그런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남자 신데렐라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여자를 꼬실만한 특별한 방법도 없이 그냥 여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여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짠'하고 타잔처럼 나타나 구해준다는 그런 설정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한심한 인간 '도경'에 대해서 꽤 관대하다. 작가의 관대한 시선은 어떤 면에서 우리 사회가 그만큼 이런 인물도 받아들일 여유가 됐다는 뜻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도경이 점점 상대편 돈 많은 여자의 조건보다는 진실한 사랑에 눈을 떠가고, 시골에 있는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는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비도덕적인 인물 도경을 구제할 상황을 모색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리고 상대 편, 돈 많고 명예를 가진 여자 또한 도경에게 은근히 마음을 주고 있으니 신데렐라가 되려는 도경의 꿈은 실현 가능할 듯싶다.
우리 드라마는 지금까지 남자 신데렐라에 대해 인색했다. 도경처럼 쥐뿔도 없으면서 행운을 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여자 신데렐라들은 무수히 만들어내면서 남자들에 대해서 인색했던 것은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 영향 때문이었다. 힘을 가진 건 남성이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남자가 여자한테 눌리는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없다는, 또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견고한 남성우월주의가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가난한 집 아들이 부잣집 여자와 결혼하기 위한 설정으로 이 남자들은 항상 두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대체적으로 남자들은 수재여야 하고, 고시나 뭐 이런 큰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만 바라보며 일편단심인 한 여자의 사랑을 받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집 아들이지만 남자가 별로 꿀릴 것 없이 힘의 균형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가진 게 없으면 머리라도 좋아 배운 거라도 많아야 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잘 살아보려는, 달동네를 벗어나려는 야망만 가진 인간에게 10여 년 전에는 지금처럼 관대하지 않았다. 이런 인물에 대해 냉혹했다. <비밀남녀>의 도경과 하등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의 달>의 '홍식'은 신데렐라가 되려다 쓰레기통 옆에서 죽는 꼴이 됐다.